[관광개발론] 문화적관광자원 -경주 마케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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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관광개발론] 문화적관광자원 -경주 마케팅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1. 경주 관광지 문화적자원 소개
2. 경주 마케팅요소 홍보방안
 
본론
1. 중국 베이징 문화적관광자원 소개
2. 중국의 관광현황과 관광정책 문제점 및 개선방안
3. SWOT분석 국내/ 국외
 
결론
1. 경주가 지향해야 할 마케팅방안 홍보요소 제안
2. 그외 국외 문화적자원 벤치마케팅

본문내용
[서론]
1.경주 관광지 문화적자원 소개
경주는 신라시대 수도였으며. 신라는 고구려, 백제를 병합하고 676년에는 삼국통일의 성업을 달성합니다. 통일국가 신라는 평화로움 속에서 눈부신 문화적 발전을 이룩해 갔습니다. 관광자원의 대표적으로는 불국사, 석굴암, 안압지, 포석정지. 첨성대 등이 있습니다.

(1) 불국사
경주시 동남 12km, 토함산 남록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절. 법흥왕22년(535) 개산(開山)이라 전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경덕왕10년(751)에 김대성(金大城)이 석굴암과 동시에 건설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는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또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불국사는 부처님의 화엄장엄세계인 불국토를 현세의 사바세계에 화현시킨 열정적인 신앙의 완성체이다. 석가탑과 다보탑을 비롯한 수많은 국보문화재와 보물문화재가 있고 매년 수백만의 내외국인 방문객들이 한국의 뛰어난 불교예술작품들이 자리한 불국사를 방문하고 있다.
과거의 뛰어난 불교문화재 뿐만 아니라 현재의 불국사는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계시고 한국불교의 지혜의 맥을 이어가는 중심적인 수행처이기도 하다.
또한 불국사는 한국의 불교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의 전시관으로서 세계에 한국불교와 한국의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1600년 한국불교 수행정진과 지혜의 도량으로서 오늘도 끊이지 않는 용맹정진의 푸르른 서기가 흐르고 있는 곳이 바로 불국사이다.


(2) 석굴암
통일신라시대에 경주 토함산(吐含山)에 세워진 한국의 대표적인 석굴사찰이다. 신라인들의 신앙과 염원, 뛰어난 건축미, 성숙한 조각기법 등을 보여주는 역사 유적으로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정식명칭은 석굴암석굴이며, 《삼국유사》에 나오는 원래 이름은 석불사이다. 임진왜란 이후 불국사에 예속되었고, 1910년경부터 일본인들이 석불암 대신 현재의 석굴암(石窟庵)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3) 안압지
월성(月城)의 북동쪽에 인접하였다. 《삼국사기》 674년(문무왕 14) 조(條)를 보면 궁성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花草)를 기르고 진금이수(珍禽異獸)를 양육하였다고 하였는데, 안압지는 바로 그때 판 못이며 임해전(臨海殿)에 딸린 것으로 추정된다. 1974년 이래의 준설공사와 고고학적 조사에 의하여 주목할 만한 유구(遺構)와 유물이 발견되었다. 동서 200m, 남북 180m의 구형(鉤形)으로 조성되었는데,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배치되었다.
연못 기슭과 섬에 실시된 호안공사(護岸工事)는 정교하고 도수로(導水路)와 배수로의 시설도 또한 교묘하다. 연못 바닥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와전류(瓦塼類)로서는 신라 특유의 우미(優美)한 무늬가 있는 것이 많은데, ‘儀鳳四年(679)’ 또는 ‘調露二年(680)’의 당나라 연호명(年號銘)이 있는 와전은 중요한 자료이다. 불교 예술품으로서 판상(板狀)의 금동여래삼존상(金銅如來三尊像)과 금동보살상(金銅菩薩像) 등의 우수한 작품이 있고, 유존(遺存)하는 예가 드문 목조의 배, 건축 부재, 목간(木簡) 등의 채취와 그 보존에 성공한 일은 귀중한 공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