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한국 고대의 묘제와 고령 지산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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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고대사]한국 고대의 묘제와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한국 고대의 묘제
1.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의 묘제
2. 삼국의 묘제

Ⅲ. 고령 지산동 고분군
1. 지산동 고분군의 구조
2. 대가야의 고분의 특징
3. 지산동 고분군을 통해 보는 대가야

Ⅳ.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무덤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구조와 형태가 다양하다. 무덤 안에 시신을 매장하는 방식도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 발전해 왔다. 그리고 무덤은 시신만을 묻는 것이 아니고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토기, 석기, 금속기, 구슬류 등의 유물을 넣기도 하는데, 이 또한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무덤은 당시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의지가 반영된 시설물이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의 사후관념(死後觀念), 매장방식(埋葬方式)과 같은 정신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생활용구의 종류와 기술적인 발달의 수준 등 물질적인 분야도 포함하고 있는데 이런 무덤의 구조와 축조방법을 총칭해서 묘제(墓制)라 부른다.
묘제를 통해 민족의 종교관과 세계관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땅 위에 살았던 우리의 조상들은 어떠한 종교관과 세계관을 가졌을까? 어떠한 형식으로 무덤을 축조했을까? 그리고 철의 나라 가야, 또한 가야인 들은 어떠한 종교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을까? 우리는 각 시대별 묘제를 통해 이 땅 위를 살아간 고대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가고자 한다.

Ⅱ. 한국 고대의 묘제
1.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의 묘제
1) 신석기시대의 묘제
신석기시대의 무덤은 얕게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한 후 그 위에 돌을 덮은 돌무지무덤과, 흙을 덮은 움무덤, 두벌 묻기 한 집단무덤이 조사되었다. 돌무지무덤은 연대도와 욕지도, 금곡동 율리 유적에서 발견되는데 연대도 유적은 남해안 지방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큰 집단무덤으로 11호까지 보고되었는데 대부분 바다를 바라보고 서쪽으로 누워 있다. 무덤은 적당한 크기로 움을 파서 굽혀묻기나 펴묻기를 하고 껴묻거리를 넣은 다음 그 위에 잔돌이나 흙, 조가비로 덮고 다시 큰 돌을 덮어주는 방법이 많이 쓰였다. 6호처럼 돌널무덤을 가진 경우도 있고 2호 무덤처럼 어머니와 신생아를 함께 묻은 것도 있는데, 껴묻거리 등으로 보아 대체로 남해안 신석기 전기에서 중기 초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여겨진다. 욕지도 유적에서는 머리가 바다를 바라보고 서쪽을 향하고 있다. 2호 무덤에는 두 사람이 묻혀 있는데 어른 남자의 귀 뼈는 잠수 때문에 변형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토기와 석기, 동물 뼈가 같이 출토되었으며 신석기 중기의 유적으로 보인다. 금곡동 율리의 무덤은 바위 그늘의 바깥 부분에 4개의 돌무지 시설로 폭이 넓고 잘 쌓은 것과 폭이 좁고 상태가 엉성한 것이 있다. 껴묻거리는 살림터의 것과 비슷하며 신석기시대 후기의 유적으로 보인다.
움무덤으로는 상노대도 산등유적과 범방유적에서 발견되었다. 먼저, 상노대도 산등유적에서는 조가비층 위에 동쪽을 향해 펴 묻은 13~15세 정도의 여자 뼈가 나왔는데 왼쪽 팔에는 3개의 팔찌를 차고 있었으며 시기는 신석기 중기 무렵으로 추정된다.
범방유적의 무덤은 묘광이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고, 출토된 인골의 상태가 불량하나 두개골은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젖니가 빠지지 않은 10세 안팎의 여성으로 다리를 X자로 하여 묻은 점이 특이하다. 껴묻거리로는 뼈 연모와 목걸이가 나왔다.
이들 무덤들은 대부분 바로 펴묻기를 하였으나 굽혀묻기를 한 것도 보이며, 특히 매장자가바라보는 방향을 바다 쪽으로 향하게 한 것이 대부분이다. 신석기시대의 무덤들은 무덤을 쓰는 방식이 정형화되지는 못했으나 대부분 특별한 장소에 쓰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그 밖에 남부지방의 무덤 가운데 특이한 것으로는 울진 후포리의 집단무덤과 진주 상촌리의 독무덤이 있다. 상촌리의 독무덤은 14호 집터의 어깨선 안쪽에서 2기가 확인되었는데 삼각형 모음 무늬를 가진 토기 안에서 사람 뼈가 출토되었다. 또 후포리 유적에서 조사된 두벌 묻기 한 집단무덤은 다른 지방에서도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화장 또한 행하여졌을 가능성이 연대도나 산등유적에서 확인된다.
참고문헌
◆단행본◆
1. 고령군 대가야박물관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고령문화사대계-역사편』 , 도서출판
2. 김세기, 2003, 『고분 자료로 본 대가야 연구』, 학연문화사
3. 김세기, 2006, 『대가야의 고분과 사후세계 - 대가야식 고분의 특징』,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4. 이건무, 2000, 『청동기 문
화』, 대원사
5. 이남석, 2002, 『백제묘제의 연구』, 서경문화사
6. 이남석, 2004, 『백제의 무덤 이야기』, 주류성
7. 이영문, 2002, 『한국 지석묘 사회 연구』, 학연문화사
8. 조영현, 2009, 『고령 지산동 제73, 74, 75호분 발굴조사』, 대가야학술총서, 계명대학교 한국학 연구원

◆논문◆
1. 강현숙, 1994, 「고구려 봉토석실분의 변천에 관하여』, 『한국고고학보』
2. 강현숙, 1999, 「고구려 고분 연구」,박사학위 논문
3. 박광춘, 2003 「삼국시대 묘제 변화 배경에 대한 연구」
4. 이영문, 1999, 「호남지역 청동기시대 묘제 연구의 성과와 과제」, 『호남고고학보』
5. 최명수, 2008,「신라의 발전과 묘제의 변천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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