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

 1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1
 2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2
 3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3
 4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4
 5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5
 6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6
 7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7
 8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8
 9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9
 10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10
 11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11
 12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12
 13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13
 14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14
 15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15
 16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16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한국고대사]대가야의 성립과 발전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대가야의 성립
1. 대가야의 건국과 성장
2. 대가야의 시작
3. 가야연맹과 대가야

Ⅲ. 대가야의 정치 체제와 대외관계
1. 정치 체제

Ⅳ. 대가야의 멸망
Ⅴ.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Ⅰ. 머리말
일반인들은 흔히 한국의 고대를 고조선ㆍ고구려·백제·신라ㆍ통일신라ㆍ후삼국의 흐름으로 이야기한다. 가야라는 국가가 분명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야사를 신라사의 일부로 보거나 철기를 토대로 하여 금관가야와 대가야가 있었고, 신라에 의해 망한 작고 힘없는 나라로 보는 견해가 강하다. 하지만 가야사는 고대사의 정치체제, 문화사를 거론하거나 고구려·백제·신라사를 이야기 할 때에도 반드시 언급되어져야만 각 국의 이해관계가 성립되는 등 빼놓고 거론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또한, 전기 가야연맹의 맹주국이었던 금관가야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어도 후기 가야연맹의 맹주국으로 존재하였던 대가야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도 중국이나 일본에서 자신의 역사라고 우기고 있는 만큼 우리는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 한반도에서 성립되었던 다른 국가들에 비해 역사는 짧았어도 나름의 체제는 모두 갖추고 있었던 가야연맹을 후기 가야연맹의 맹주국이었던 대가야를 성립과 발전과정을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대가야의 성립
1. 대가야의 건국과 성장
1) 건국
(1) 가락국 수로왕신화로 본 가야의 건국
가야 지역에는 두 개의 건국신화가 전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김해지방의 것이《삼국유사》소재 에 전하는 수로왕신화이다. 는 원래 고려 문종대 후반에 금관지주사로 있던 어떤 문인이 편찬한 것을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줄여서 실은 것인데, 그는 다음과 같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 등 9간이 추장으로서 백성을 다스리고 있었다. 후한 광무제 건무 18년임인 3월 첫째 뱀날에 북녘 구지에서 수상한 소리가 부르므로 사람 200~300인이 이곳에 모였다. 목소리의 지시대로 9간 등이 구지가를 부르면서 춤을 추자, 하늘에서 자줏빛 노끈이 내려왔다. 그 아래 붉은 천으로 덮힌 금합이 있으므로, 열어보니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12일이 지나서 6란이 동자로 화하였다. 이들은 하루하루 커서 10여 일을 지나 어른이 되어, 보름날에 즉위하였다. 처음 나타났으므로 이름을 수로라 하였다. 나라는 대가락이라 하고 또는 가야국이라고 하였으니, 곧 6가야의 하나이다. 나머지 다섯 사람은 각기 돌아가 5가야의 임금이 되었다. 그 후 왕은 도읍을 정하고, 탈해를 물리치고, 허왕후와 결혼하고, 제도를 정비하였다.
-《삼국유사》가락국기
수로왕 신화는 김해지방의 하나의 통합된 정치 집단이 형성되는 과정을 전하는 자료로서 주목된다. 이 기록은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가지 전승이 복합된 것으로서 그 성격을 속단할 수는 없으나, 9간 등의 무리가 구지봉에 하강한 황금알에서 화한 동자를 추대하여 수로왕을 삼았다는 줄거리는 일정한 역사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 줄거리에서 추론해보면 첫째, 수로왕 신화에서는 수로왕보다 9간의 이름과 그들의 행위가 신화초두에 먼저 나오는데, 이들은 김해지방에 산재하던 소단위 세력집단들인 9촌 추장들로서, 수로 강림 전부터 이미 존재하던 재지 세력이었다. 둘째, 9간이 구지봉에 모여 공동 제의를 벌이는 체제는 하늘에서 들려온 수상한 목소리에 따라 처음으로 연출된 것이라기보다, 수로왕의 출현이전부터 이 지역에 형성되어 있었다. 셋째, 수로왕 출현장면 묘사는 고조선 및 고구려 계통신화 같은 천강 및 난생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이는 가락국 지배계층의 신성 수식 관념이 한반도 북방계통 민족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넷째,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수로왕이 9간과 같은 재지 세력의 한사람인지, 아니면 당시 이주민인지 분명치 않으나 대체로 이주민의 명분을 가진 사람으로 추정된다. 다섯째, 천강의 명분을 지니는 수로를 9간이 합의하여 왕으로 추대하였으므로 결국 재지세력들이 합의에 의하여 왕권이 창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수로왕 신화는 김해 지방에 이미 소단위 재지권력집단들의 연합체인 ‘9촌 연합’ 이 존재하고 있는 상태에서 각각의 지배자인 9간이 합의하여 이주민 계통의 수로왕을 추대함으로써 가락국이라는 소국이 출연하게 되었음을 반영하는 시조 탄생 및 건국 신화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1.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2006, 『대가야 들여다보기』, 서울기획
2. 김영진, 2009,『(고조선에서 통일신라와 발해까지)한국사 인물 실록』, 문예마당
3. 김태식, 1993,『가야연맹사』, 일조각
4. 김태식, 2002,『미완의 문명 7백년 가야사(1권)』, 푸른역사, 83~129쪽 참조
5. 노중국, 김세기, 이희준, 주보돈, 『대가야 들여다보기』, 서울기획, 2006, 91~94, 100~117쪽 참조
6. 매일신문 특별취재팀, 2005, 『(잃어버린 왕국)대가야』, 창해
7. 박창희, 2006,『살아있는 가야사 이야기』, 이른아침
8. 백승충, 2001, 『한국고대사 속의 가야』, 혜안, 79~130쪽 참조
9. 백승충, 2006, 『대가야의 건국과 성장』,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0. 윤석호, 2008,『국내외 사서를 통해본 가야사』, 한성대학교출판부
11. 이용현, 2001, 『한국 고대사 속의 가야』, 한국민족문화연구소
12. 이중한, 1997,『새 가야사와 삼국유사』, 명문당
13. 이형기, 2006, 『대가야의 발전과 정치체제』,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35~51쪽 참조
14. 이형기, 2009,『대가야의 형성과 발전 연구』, 경인문화사
15. 일연국존 저, 노중국 역주, 2006, 『삼국유사』, 계명대학교출판부, 118~126쪽 참조
16. 조희승, 1994,『가야사 연구』, 백산자료원, 10, 53~222쪽 참조
17. 최종철 엮, 2006,『일본을 낳은 나라 금관가야 왕국』, 미래문화사
18. 한국고대사연구회, 1994,『가야사 연구』, 춘추각
19. 한국고대사학회, 2004, 『대가야의 성장과 발전』, 한국고대사학회

◆논문◆
1. 이문기, 1995, 「대가야의 대외관계」,『가야사 연구(대가야의 정치와 문화)』, 흥신인쇄소
2. 이형기, 1998,「성산가야연맹체의 성립과 그 추이-가야사에서의 지역 연맹체에 대한 일시론(민족문화연구소 창립 20 주년 기념호)」, 『민족문화논총, Vol.18,19』,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3. 이형기, 1997,「소가야 연맹체의 성립과 그 추이」, 『민족문화논총, Vol 17』,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사진 출처]
그림 1 광개토대왕릉비 http://100.naver.com/100.nhn?docid=18492(검색일 2012.4.16)
그림 2 대가야 세력권
http://blog.naver.com/gimhae4you?Redirect=Log&logNo=110085035410(검색일 2012.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