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 서경별곡을 모순구조에서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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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 서경별곡을 모순구조에서 바라보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작자
2.본문 내용과 해석.
3. 관서별곡의 문학사적 위치.
3.1 들어가며
3.2 들어가서
3.3 나오며
본문내용
1. 작자
가사문학의 효시자 - 기봉 백광홍(白光弘, 1522~1556)
선생은 우리 국문학사에 기행가사(紀行歌辭)의 효시를 남긴 분이다.
선생의 호는 기봉(岐峰)이고 안양면 기산리에서 태어났다. 본디 타고난 성품이 총명 영특하고 배움에 슬기로웠고 지혜로웠으며 우의가 돈독하였다. 어려서 일재 이항(一齎 李恒)에게 글을 배우고,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율곡 이이(栗谷 李理)․영천 신잠(靈川 申潛)․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석천 임억령(石川 林億齡)․송강 정철(松江 鄭澈)․송천 양응정(松川 梁應鼎)․고죽 최경창(高竹 崔慶昌) 등과 교류하고 종류하면서 문재와 학덕이 크게 완성되었다. 공은 1549년(명종4) 28세에 사마양시(司馬兩試)에 급제하고 1552(명종7) 31세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로 임명되었다.
그 당시 호남과 영남의 문신으로서 성균관에서 시재(試才) 겨루기를 하게 되자 기봉이 시부동지(時賦冬至)로 으뜸을 차지하여 선시(選時) 10권을 특사 받았고, 다음해에 호당(湖當)에 선발되었다. 1555년(명종10) 34세 때 평안도 평사(評事)가 되어 서도(西道)의 국경방비 지역에서 민폐를 보살피며 관서별곡(關西別曲)을 지었다.
1556년 (명종11) 나이 35세에 병환이 생겨 평안도 평사 자리를 내어놓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도중 전북 부안 사위의 집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다.
선생은 한시인(漢詩人)으로서 보다 관서별곡에 의해 가사문학가로 더 유명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함께 교류관계를 가졌던 고죽(孤竹)은 선생의 관서별곡을 접하고 다음과 같이 읊었다.
참고문헌
김용철, 「기행가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한국가사문학연구』, 태학사, 1996
이승남, 「조선 전기 사대부가사의 갈등구조와 표출양상 연구」, 동국대학교 대학원, 1996.
최강현, 「한국 기행문학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1981.
『기행가사자료선집 Ⅰ』 ,국학자료원,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