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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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등사]전등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강화도 전등사 초입(初入)까지

Ⅱ. 전등사, 그 속에 깃든 의미
1. 전등사
2. 대웅보전
3. 범종
4. 전등사 대조루(傳燈寺 對潮樓)
5. 전등사 약사전

Ⅲ. 전등사를 떠나며

본문내용
누구나 한번쯤은 강화도의 모습을 그린다. 그리고 강화 전등사의 모습을 상상한다. 처음엔 답사 기행문을 쓴다는 사실보단 그냥 여행이라는 사실에 설레임이 앞섰다. 더욱이 강화도를 찾아가는 길이 쉽지 않은 만큼 그 기대에 찬 마음으로 서울역을 출발해 서인천에서 친구 한명과 합류해 토요일인 탓에 다소 붐비는 도로를 따라 강화에 도착했다.
강도지(江道誌, 1696년 발간)에 의하면, 우리국토의 척추인 백두대간의 정기는 소용돌이치는 손돌목을 건너 강화로 연결된다. 전등사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635번지 정족산성 안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전등사로 들어가는 초입 바로 앞에는 투박한 모습으로 그리 무서워 보이지 않는 일반 장승과 외가리 모양으로 생긴 장승이 우뚝서 있었다. 내 앞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어린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들뜬 마음은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지만, 반겨주는 초겨울의 바람과 이제 막 깬 듯한 산중의 공기는 유적지의 정취를 고요히 감싸고 있었다.
Ⅱ. 전등사, 그 속에 깃든 의미
1. 전등사
전등사에 대한 창건설화를 보면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72) 아도화상이 진종사라 이름한데서 시작되었다. 아도화상이라는 사람은 신라의 일선군(지금 경북 선산)에 불교를 전파하기전, 강화 전등사의 개산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이름이 진종사였고, 이때 강화도는 백제땅으로서 아도화상은 태백산 줄기를 타지 않고 평양에서 이곳으로 곧장 내려와 신라로 들어갔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고려 고종 46년(1259) 삼랑성에 가궐을 짓고, 원종 5년(1264)에는 이곳에서 대불정오성도량(大佛頂五星道場)을 4개월간 설했다.ꡐ신증동국여지승람ꡑ에 의하면 충렬왕 8년(1282) 왕의 원비인 정화궁주 왕씨가 승려 인기(印奇)에게 송나라에 들어가 대장경을 가져오게 하여 이 절에 보관했다고 한다. 전등사라는 이름은 정화궁주가 불전에 옥으로 된 등잔을 올린 뒤 붙여진 이름이다.
전등사는 아담한 정취가 험준하지 않은 산새와 조화를 이루어 단아함과 안정감을 느낄수 있었다. 전등사의 가람 배치는 전형적인 산지가람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대조루를 지나 들어가면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요사가 있고, 서쪽에는 향로전, 약사전, 명부전, 극락암, 적묵당, 종각이 있다. 서북쪽 높은 곳에 삼성각이 있고 그 아래 장사각과 선원보각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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