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비시 정부와 비시 체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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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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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1. 들어가며
2. 비시 정부의 성립과 전개
2.1 1919~1940 프랑스 제3공화정 시기와 서유럽 정세의 전개과정
2.2 프랑스 제 3공화정의 몰락
2.3 비시 정부의 주요 인물들
2.4 비시정부 시기(1940~1944)
3. 비시 체제를 보는 시각
3.1 ‘좋은 비시’와 ‘나쁜 비시’
3.2 대독협력체제로서의 비시정부 – 호프만
3.3 자발적 대독협력 - 팍스턴
4. 만주국과의 비교를 통한 비시 정부에 대한 고찰
4.1 페탱과 푸이의 비교
4.2 비시와 만주국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5. 마치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여러분…. 저는 1940년 7월에 프랑스 국민의 대표에게서 권력을 부여 받았습니다. (…) 저
는 이 권력을 프랑스 국민을 보호하는 데 썼습니다. 그것은 제 명예를 스스로 더럽히는 선택이었습니다. (…) 제 목에는 언제나 칼이 들이밀어져 있었습니다. 적의 강요 앞에서 국익을 지키기 위해, 저는 갖은 애를 써야만 했습니다. 역사는 제가 여러분을 지키고자 얼마나 애썼는지 밝혀줄 것입니다.”

1945년 7월 23일, 비시 체제의 수반이었던 아흔의 필리프 페탱이 프랑스의 최고재판소에 회부되었다. 그는 자신이 1940년 7월에 합법적으로 권력을 부여 받았으며, 드골이 해외에서 투쟁하는 동안 자신은 국내에서 프랑스 인민을 보호하면서 해방을 준비했다고 진술했다.
'비시 프랑스'는 프랑스 현대사에서 암울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독일이라는 외세에 의해 국토 절반 이상(1942년 11월부터는 전체)을 점령당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러한 지배가 프랑스인 수십만 명의 협력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비시정권은 독일 점령 하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특히 적극적인 대독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이에 해방 직후부터 거의 20여 년 동안 프랑스 사학계에서는 비시를 불명예와 동일시했으며 독일 점령 하의 프랑스 인들이 레지스탕스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는 "레지스탕스 신화"가 유행한 동시에 비시 체제가 프랑스 역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단절에 해당했다는 주장이 우세했다. 다시 말해 비시는 독일점령으로 인해 탄생된 우연적인 정치사건으로서, 오늘날의 프랑스 정치와는 무관한 대독협력자들의 괴뢰정부로 인식되었으며, 페탱이 내세운 민족혁명은 독일에 의해 강요된 정치이데올로기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비시 체제의 성립은 합법적이었으며, 당시 프랑스인들은 베르됭 전투의 영웅이었던 페탱을 제 3공화정의 무능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프랑스를 재건할 인물로 인식하며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심지어 초기 레지스탕스 중에는 비시 정부와 페탱에 우호적인 인물이 반 페탱 레지스탕스보다 많았다. 또한 페탱이 내세운 민족혁명의 기치도 나치 독일의 강요로 인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프랑스(Nouvelle France)'를 위한 비시 체제의 자생적인 움직임이었다. 이렇게 비시 체제가 단순히 나치 독일에 협력적인, 독일의 '꼭두각시 정부'가 아니라 프랑스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으며 프랑스의 갱생을 위해 노력한 독자적인 체제라는 주장은 1970년대 미국 사학계에서 등장했다. 특히 이러한 주장의 선두에 선 로버트 팍스턴의 연구는 프랑스 사학계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며 '팍스턴 혁명'이라 불리기도 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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