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이야기성서 창조세계의 보존과 환경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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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복지] 이야기성서 창조세계의 보존과 환경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이야기성서 / 창조세계의 보존과 환경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1. 성경적 언문(개역개정판)및 성경적 관점
2. 성경적 사례
3. 환경파괴의 실제 사례
4. 환경문제의 실태와 그 이유
5. 결 론
본문내용
창세기1장 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2장 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로마서8장 19~23절: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다같이 봉독-
1-1 잘못 인식 되어있고, 잘못 알고 있는 창1:28 ‘땅을 정복해라’
성경에선 인간은 하느님의 대리자이며, 더욱이 하느님 통치권의 대리자, 관리자라 본다.
그러므로 창조 보도는 인간이 어떠한 과제들을 성취해야 하는가를 말하기 위해 인간의 하느님의 형상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 즉 그의 대리자에게 모든 생물에 대한 지배권을 위탁한다. 관리자로서 인간이 성취해야 할 과제로 “정복하고 다스리라”(창1:28)라는 데서 나타난다. 이 구절은 소유와 정복을 추구하는 관심들을 정당화시키는 구절로 생각되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구절이기도 하다.(※인간중심적 성서해석) 즉, ‘이 구절이 문자 그대로 이해됨에 따라 과거에 일방적으로 인간에게 유리하게 해석되었고 그 결과 오늘날의 환경문제, 생태계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라는 식이다. 린 화이트(L. White)같은 이들은 단적으로 현대 생태계 문제와 위기는 ’자연에 대한 정통 그리스도교의 오만‘에서 기인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근세 이후의 인간들이 세계를 정복하는데 있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의 진로가 성서의 전거에 입각하고 있다고 믿었던 사실을 지적해 준다. 이들은 ‘정복하라(kabas)’는 말 이 (예속시키다, 노예로 삼다)등의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만 중점을 두고,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지 못한 채 ‘기독교는 자연을 지배하라고 가르쳐 왔으며, 이 가르침을 받은 인간들이 자연을 파괴적인 방식으로 다루어 온 것이 오늘날의 생태환경파괴의 주된 원인’ 주장하였다. 이러한 이해로 인해 자연계의 파괴가 ‘기독교의 무자비한 결과들’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1-2 성경 안의 환경과 자연에 대한 관점과 ‘땅을 정복해라’의 진정한 의미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6일, 같은 날에 생물, 육축, 짐승, 인간을 만드셨는데, 인간과 동물을 모두 흙을 재료로 하여 만드셨다.(창 2:17, 19). 본래 ‘아담’은 지구, 표토, 땅(adama)을 의미한다. 흙과 짐승과 인간의 연속성과 연대성을 보여준다. 창세기 2장의 창조이야기는 땅은 식물, 동물, 인간의 어머니요, 식물, 동물, 인간은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친족관계(kinship)임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부터 만물은 근본적으로 친척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으면서 동일한 생명의 그물망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
구약성서는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거나, 인간 중심적인 삶의 태도를 가지는 것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지혜문학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자연 환경을 보존하고 조화롭게 사는 것을 지혜로운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혜문학에는 동물이나 식물, 또는 자연현상을 통하여 신비스러운 가르침을 인간에게 전해 주기도 한다(잠 30:18-19, 욥 12:7-8, 35:11). 발람의 당나귀(민 22:22-35), 엘리야의 까마귀(왕상 17:1-6), 요담의 나무들에 대한 우화(삿 9:8-15), 나단의 부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삼하 7:1-4), 이사야와 에스겔에 나오는 짐승과 나무들의 비유(사 5:1-7, 겔 15:1-8, 17:1-10, 19:1-14, 31:1-18)들도 자연만물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지혜를 설명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경탄과 경외의 절정은 욥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욥기 38-41장까지 보면 하나님은 인간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많은 목적을 위하여 세상을 창조하셨고 인간은 그 창조의 신비를 다 헤아릴 수 없다. 지혜문학 전통에는 성례전적 우주론(sacramental cosmology)이 들어가 있다. 이 우주는 다름 아닌 하나님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통로이다. 성서는 자연을 신격화하여 자연신이나 다신론으로 빠지지 않지만, 자연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표현된 위대한 작품으로, 신비로운 것으로, 경탄해야 할 것으로 여긴다. 예언서에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연세계와 배역하는 인간이 대조적으로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렘 8:7)라고 한다.
신약성서는 자연에 대한 언급이 구약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지만 정신은 같은 기조위에 서 있다. 창조된 세계는 하나님의 작품이며 하나님은 하찮은 동물에게도 관심을 베풀며(마 6:30, 10:29, 눅 12:24), 예수는 들에 핀 백합, 공중의 새, 그리고 자연세계에 대한 많은 비유들을 언급했다(마 6:26, 28, 29, 8:27, 12:11, 24:32-34, 눅 13:15, 14:5, 15:4).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성서보다 훨씬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인간, 역사 그리고 자연을 통하여 이미 기록된 성서 이전부터 인간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만물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보인다. 그러므로 로마서 1:19-20에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라고 하였다. 우리는 신구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특별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었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만물에 드러난 자연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과 영광과 온전함을 알 수도 있다(행 14:17, 롬 1:20, 시 19:1, 104편).
성경에 보면 인간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은 구별되는 것이라 한다. 창조이야기에서 생명의 지위에 대한 언급은 피조물들을 존중해야 하지만 피조물들이 동일한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가르치는 것이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와의 윤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서 구별성을 인식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생명에 있어서의 특별한 지위를 부여 받은 것이다. 인간만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특별한 역할과 소명을 말하고 있다. 형상 개념을 생태학적으로 적용한다면 인간은 피조물을 대표하는 자로 생태계를 보호하고 섬기고 관리하는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존재, 즉 창조적인 능력을 지닌 특별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더불어 인간의 책임성을 말하고 있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오직 인간만이 생명을 경외할 수 있는 지혜를 부여 받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명에 대한 지식을 지니고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높은 지위에 따른 도덕적 의무’(noblesse oblige)가 부여되어 있다. 인간은 동물보다 훨씬 높은 존재이므로, 동물을 최대한 세심하게 보살필 수 있고, 아니 보살펴야 하며,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동물에게 선행을 베풀 수 있고 베풀어야 한다. 인간은 모든 생명의 지킴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