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국문]구비문학과 민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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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국어국문]구비문학과 민속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우리 집의 제사 절차

2. 산속 : 태몽(그리고 금기)

3. 지명유래 : 부평에 들러리 부개

4. 1960년대와 현대(2000년)에 나타난 대중가요의 서정

5. 유행담 : 무의식안의 욕망 표출 "만득이 시리즈"

본문내용
1. 우리 집의 제사 절차
처음으로 제상 위에 제수를 진설한 뒤, 지방을 써서 붙인다. 제주가 분향하고, 잔에 술을 붇고 향에 술잔을 두 번 돌린 다음에 집사에게 드린다. 집사는 술잔을 밥그릇 과 국그릇 사이 앞쪽에 놓는다. 빈 그릇에 담긴 숟가락과 젓가락을 세 번 두드린 다음에 제사의 모든 참사자들은 두 번 절을 한다. 그런 다음 고개를 숙여 잠시 있다가 참사자끼리 환담을 나눈 다음에 집사가 제사상위에 있는 술잔을 가져와 제주에게 주면, 제주는 빈 그릇에다 향을 세 번 덜어내어 따라 붇고 잔에 다시 술을 부어서 향에 두 번 돌린 다음에 집사에게 준다. 집사는 술잔을 받아 밥그릇과 국그릇사이에 놓은 다음 숟가락을 밥 위에 꽂아 놓는다. 젓가락과 숟가락을 두 번 두드린 다음에 모든 참사자가 두 번 절을 한다. 잠시 후에 국그릇은 주방으로 내가고, 물그릇을 떠와 집사가 국그릇이 있던 자리에 놓는다. 그 후에 숟가락을 빼내어 밥을 숟가락의 3분의 1정도 떠서 물그릇에 넣어 다진다. 그리고, 집사가 밥 뚜껑을 덮고 술잔을 다시 집어서 제주에게 주면 빈 그릇에 술을 세 번 따라 버리고 다시 술잔을 채운다. 향에 술잔을 두 번 돌린 다음에 집사에게 주면 집사는 술잔을 받아서 밥그릇 앞에 놓은 다음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고 1번 두드리면 참사자들은 모두 절을 하고 제사를 마친다.
2. 산속 : 태몽(그리고 금기)
어머니께서 태몽을 모르신다고 함.
3. 지명유래 : 부평에 들러리 부개
부평은 고려 충선왕(忠宣王) 2년 1310년에 지방간제를 개혁하여 전국의 목사(牧使) 고을을 없앨 때 이 곳 길주목(吉州牧)을 부평부(富平府)로 개칭하므로서 비롯된 것이다. 부평이란 읍호는 처음에 주부토(主夫吐)에서 장제(長堤), 수주(樹州), 안남(安南), 계양(桂陽), 길주(吉州), 부평(富平)으로 바뀌어 내려 왔다.
부평평야는 습지로서 원래부터 해수와 민물이 혼합하여 드나들었기 때문에 황무지였었는데 그 후 점차로 방죽을 막아 농경지로 개답한 곳이라고 한다. 따라서 주민들이 차차로 둑을 여기 저기 쌓게 되어 보뚝이 줄줄이 이어지게 됨으로써 '줄보뚝'이라는 땅 이름이 생기게 되었고, 그후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 주부토가 된 것이다. 결국 '줄보뚝'이란 뜻의 토박이 말 땅이름이 한자화하여 표기된 것으로 이해되며 또한 줄보뚝은 당시 부평평야 넓은 들에 줄줄이 막아진 방죽뚝이 많았기 때문에 생겨난 이름으로 보인다.
그 후 통일신라시대에는 경덕왕 16년에 주부토를 한주(漢州) 소속 장제군으로 개칭하였다. 장제란 긴 제방이란 뜻으로 긴 방죽뚝이 많은 골이란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하고 싶은 말
구비문학과 민속시간의 레포트로 제사절차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곳의 지명유래, 최희준과 조PD DJ DOC의 노래의 서정을 비교하였고, 만득이 시리즈를 채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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