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소설교육연구] 구운몽. 김씨열행록. 김학공전. 금방울전. 심청전. 임진록. 장끼전. 전우치전. 춘향전. 홍길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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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구운몽
2. 김씨열행록
3. 김학공전
4. 금방울전
5. 심청전
6. 임진록
7. 장끼전
8. 전우치전
9. 춘향전
10. 홍길동전
본문내용
1. 구운몽
가. 작자
작자 김만중(1637-1692, 인조15 - 숙종18)은 조선조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의 증손이요, 충렬공 익겸의 유복자이며, 광성부원군 만기의 아우로 숙종의 초비(初妃)인 인경왕후의 숙부이다. 그의 어머니는 해남부원군 윤두수의 4대손이며, 영의정을 지낸 문익공 방(昉)의 증손녀이고, 이조참판 지의 딸인 해평윤씨이다. 그는 어머니의 남다른 가정교육에 힘입어 성장하였다. 그의 아버지 익겸은 일찍이 정축호란(1637)때 강화도에서 순절하였기 때문에 형 만기와 함께 어머니 윤씨만을 의지하여 살아가야만 했다.
그런데 이 윤씨부인은 본래 가학(家學)이 있었기 때문에 두 형제들이 아비 없이 자라는 것에 대해 항상 걱정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한 모든 정성을 다 쏟았다. 그 좋은 예로 궁색한 살림 중에도 자식들에게 필요한 책을 구입할 때는 값의 고하를 묻지 않았고, 또 이웃에 사는 홍문관서리를 통해 책을 빌려 손수 등사하여 교본을 만들기도 하였으며, 《소학》·《사략 史略》·《당률 唐律》등을 직접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 같은 여러 가지 면들, 즉 연원 있는 부모의 가통과 어머니 윤씨의 희생적 가르침은 훗날 그의 생애와 사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상과 문학은 이전의 여느 문인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말년에 와서 불운한 유배생활로 일생을 끝마치게 되지만, 생애의 전반부와 중반부는 상당한 권력의 비호를 받는 득의의 시절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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