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중국과 북한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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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과 북한의 관계 ]

1948년 9월 북한정권을 수립한 이래, 북한과 중국과는 지금까지 주변 4국중에서 어느 나라보다도 지속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해왔다.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구적인 변수는 양국간의 지정학적인 요소이다. 한반도(북한을 포함한)는 중국대륙과 연접해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중국과 북한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설명되곤 한다. 이것은 괵나라와 오나라의 예처럼 북한과 중국도 하나가 망하면 다른 하나가 온전치 못하게 된다는 뜻에서 이런 말을 쓴 것이다. 북한체제가 붕괴해 미국의 영향력이 북-중 국경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은 냉전시절의 중국엔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중국이 6·25전쟁 때 100만 대군으로 북한을 도운 것도, 90년대 이후 해마다 북한에 에너지와 식량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북한이 중국에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1945년 이후부터는 여기에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 연대가 작용하고 있다.
북한의 중국관계의 본격적인 시발은 1950년 5월 김일성이 북경을 방문하여 모택동과 만나 한반도 통일을 위해 한국전쟁을 모의하고 그 지원을 내락 받은 데서 비롯한다. 1950년 6월 남침초반에는 한반도의 남부지역을 거의 석권할 정도로 전세가 북한에 유리했으나 미군을 위시한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어 북한군이 한만국경지대에까지 패주하자 동년 10월 25일 중국은 대규모의 "의용군"을 극적으로 파병하였다. 중국의용군은 자급하면서 심지어 중국의용군내의 식량을 절약하여 그 여분을 북한주민에게 나눠주고 피복을 제공할 정도로 돈독한 "혈맹" 관계를 유지했다.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이후 중국은 이념적 토대 위에서 북한을 후원하는 유일한 나라이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사회주의국가 중 북한이 의지할 나라는 중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북관계는 세계사적인 탈냉전의 상황에서 이념보다는 경제적 실리를 중시하는 중국의 정책에 따라 1990년대 들어 커다란 곡절을 겪어왔다. 중국이 1991년부터 북한과의 교역 시 사회주의 블록경제의 틀 속에서 유지해온 구상무역을 포기하고 대신 경화결제를 요구하고 나선 데 이어 1992년 8월 남한과 외교 관계를 수립한 것이 북·중 관계를 악화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따라서 중·북관계는 그 동안 표면상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적잖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91년 10월 김일성 주석이 중국을 방문하고 1992년 양상쿤(楊尙昆)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한 이후 2000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공식 중국방문이 있기까지 8년여 동안 전통적으로 이루어져온 양국 최고수뇌간의 교환 방문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사례로 볼 때 이 기간 중 북·중 관계의 실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1998년 9월 김정일 체제를 공식 출범시키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정책의 우선 순위를 두어왔다.
중국과 남한이 1992년 수교를 시작하면서 올해는 외교 11년째 되는 해다. 북한은 중국이 북한에서 남한으로 눈을 돌린 것에 긴장하며 이를 견제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한중 수교는 북한의 개혁시장에 돌입하게 하는 촉진제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체제에 헛 점이 들어 나고 중국이 2체제 1국가의 정책을 펼친데는 국익을 우선시 하겠다는 국가 이념을 설립했다는 의미로 설치관계인 북한으로서는 따라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전 수출의 35%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시장의 잠식은 큰 경제적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시사프로그램에서는 남한기업의 북한에서의 아웃소싱 사례를 방영한 바 있다. 그 회사가 바로 우리나라의 금강제화였는데 이들은 구두 중에서도 유행을 타지않는 기본적인 구두의 생산기지를 중국이 아닌 북한에 둔 것이었다. 저임금의 많은 인력을 가진 북한으로서는 경제적인 잠재력을 가진 제 2의 중국이라 생각한다. 이런 경제적 접근에서 시작하여 단계적으로 교류를 한다면 정치적 교류 역시 가능 하리라 본다.

본론에서는 세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 외교적 측면, 경제적 측면 그리고 군사적 측면 이 세가지로, 외교적 측면에서는 통괄적인 외교의 흐름을 요약하고 시대적 그리고 지도자 별로 그 외교의 특성을 정리하였다. 두 번째 관점인 경제적 측면에서는 과거의 60년대에서 시작된 북한의 수출환경을 짚어보고 최근 상황까지 도표로 분석 제시하였다. 마지막으로 최근 들어 이슈화 되고 있는 북한의 핵 문제와 관련해 군사·외교 측면에서 볼 때 북한과의 유대관계를 정리하였다.
1. 외교적 측면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1950년 한국전쟁 때 중국이 북한을 군사원조 할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더욱이 중국은 소련과 공산권 맹주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대결구도를 펼쳤기 때문에 북한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일방적이고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경제분야에 있어서도 1980년의 중국∼북한간 총 교역이 67,757만 달러에 이르는 등 양자간에는 지속적인 관계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과는 1973년 6월 23일 평화통일 외교정책에 관한 특별선언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관계 진전이 없었다.
이런 북한과 중국의 관계 친밀은 1980년대에 들어와서도 정치·외교·안보·경제·기타 모든 면에서 더욱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정치·외교적으로는 두 나라의 고위층 인사들이 상대국을 방문하면서 관계 진전을 꾀했으며, 국제무대에 있어서도 중국은 북한의 입장을 무조건적으로 찬성하는 지지태도를 계속 보여 주었다. 안보면에 있어서도 중국은 중·조 상호원조조약의 지속 외에 북한에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무기를 제공했다. 그리고 1991년 한·미 팀 스피리트 훈련에 대한 공동비판 등 양국간 안보면에서의 협력체제를 계속 유지해 나갔다. 그러나 이와는 상대적으로 경제교류에 있어서는 그 증가율이 서서히 하락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0년에 들어오면서 중국의 북한에 대한 정치·외교적 입장은 사회주의 수호를 위한 공동협력 및 전통적 우호·협력관계의 불변입장을 표명하는 등 북한의 체제유지 지원자세를 견지했지만, 이전의 북한과의 친밀한 관계는 신 국제질서의 자국이익 우선의 원칙에 따라 많이 퇴색됐다.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1992년 8월 한·중 수교 등에서 보듯이, 소련붕괴 등 신 국제질서 형성에 즈음하여 중국은 과거 이념외교에서 벗어나 이익외교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 시도 외에도 이에 따른 북한과의 사회주의 연대의식이 감지되고 있으며 종래의 무비판적인 대북지지 태도를 지양하고 있다. 경제면에 있어서도 중·북한간 무역에 국제적 거래관행을 적용하고 원조성격의 경제협력을 축소해 나가는 등 종래의 일방적 지원 자세를 탈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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