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진보사상에 바탕을 둔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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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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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진보사상에 바탕을 둔 진화론(進化論)
사실 기원전 그리스 시대에도 생물은 진화한다고 생각한 학자들이 있었다고 생각되지만, 18세기 중엽까지는 생물의 종(種, species)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곧 종의 안정성(安定性, stability), 불변성(不變性, immutability) 또는 고정성(固定性, fixity)을 믿었다. 즉, 모든 생물체는 서로 명확히 구별되는 종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 종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믿음은 사람들의 경험과 잘 부합되었다. 한 가지 종의 생물체가 그 자손으로 이어지면서 계속해서 같은 종을 낳는 것은 자연세계에서 관측되는 가장 확고한 규칙성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이런 생각이 크게 흔들려서, 종이 변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라나게 되었다. 여기서는 그 배경으로 몇 가지 살펴보고 진화론에 대해서 살펴 볼 것이다.
1.진화론의 역사와 배경
(1)18세기 이전의 생명의 기원설
기원전 5-6세기경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에 의해 철학적 사유(思惟)에 의한 만물의 기원론이 등장했는데 탈레스(Thales, BC 624-547?) 는 만물(생물)이 열, 공기, 태양의 도움으로 진흙에서 우연하게 발생하였다고 한다.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BC 585-528)는 만물이 공기로부터 만들어졌다고 생각했고,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BC 490-430)는 불, 공기, 물, 흙의 4원소의 결합 분리로 경험세계의 생멸의 사실을 설명하려 했고, 동물체의 여러 부분이 발생하여 지상에서 결합되었다고 했으며,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BC 500?-428)는 사람은 물고기 모양의 조상에서 유래하였다고 설명하는데 흔히 사람들은 이들의 설이 진화관념의 효시라고 여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주장했는데, 생물의 여러 부류(部類)가 완전의 정도에 따라 관계적으로 연쇄를 이루어 배열되어 있다는 자연의 단계(Scala naturae)를 설명하여, 이것이 근세에 와서 동물을 하등한 것과 고등한 것으로 분류하게 하고 진화사상을 낳게 한 토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자신에서는 진화의 관념을 찾을 수 없다.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BC 460-371)는 우주 만물이 원자(原子, atom)로 이루어졌고 이 원자의 운동에 의하여 자연의 모든 현상이 나타난다고 했다. 즉 우주 만상은 우연으로 이루어졌고 오직 원자에 기초한 물질만이 우주 만상을 이룬다는 유물론적 일원사상을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명의 자연 발생설 이후 오늘날처럼 과학이 발달하거나 현미경이 없던 중세 시대에는 생명의 자연 발생설이 무신론자들에게는 성경의 창조설 만큼이나 중요한 이론이었다. 진흙에서 벌레들이, 썩는 고기에서 구더기가, 쓰레기더미에서 쥐가 생기는 것을 본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생명체가 비 생명체에서 생긴다고 생각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론인지 모른다. 그 당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가설을 믿었으며 일부 신학자들도 여기에 동조를 하고 있었다.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도 축축한 흙에 햇빛을 쬐거나 부패할 때 생명이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자연 발생설에 대하여 17세기의 이탈리아의 레디(Redi, Francesco, 1626-1697)와 18세기 초의 스팔란자니(Spallanzani, 1729-1799)는 일련의 실험을 통하여 생물은 반드시 생물로 부터만 발생한다는 생물발생론(Theory of Biological Generation)을 발표하였다.
(2)창조론
다윈 이전의 생물학자들은 대부분 종이란 신이 정한 고정되고 영구불변한 집단이라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신이 직접 동식물의 종 하나하나를 창조하였으므로 그 하나하나의 종은 애초부
터 필수적으로 각각의 근본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이 특성들은 각 형이나 종의 최초의 개체 혹은 번식을 시작한 쌍이 원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이라는 전제가 학자들 세계에서 암묵적으로 가정되어 있었다. 종의 불변성에 대한 생각은 모든 생명이 며칠만에 창조되었고 이 다양한 종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기독교 신학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때문에 종의 불변에 대한 그러한 믿음은 신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기인한다. 즉 만약 생명체가 시간 경과를 통하여 점차 변화해서 한 종으로부터 새로운 종이 생겨날 수 있다면, 그리고 인간이 자연볍칙으로부터 예외가 아니라면, 인간은 다른 생명체로부터 생겨난 것일 수도 있게된다. 이것은 사람이 신과 비슷하게 창조되었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아리스토텔레스 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목사 아들로서 근대적인 생물 분류학의 개척자로 유명한 린네도 생물 종은 신이 창조한 그대로 영원불변이라고 주장했다. 캄브리아기 지층에서 생물학적인 전이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이나 연속적인 지층 사이에 급격한 전이가 일어났음을 암시해 주는 여러 현상, 또 척추동물들의 여러 강(어류,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이 화석 기록에 다량으로 출현한 데 반해 그 전이 단계에 해당되는 화석들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개별적이고 짧은 시간 내의 창조가 점진적인 진화보다 우세한 이론으로 대부분의 과학자들 사이에서 인식되었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던 전이적인 생명체의 미출현 문제가 시조새 화석의 발견으로 반박되어 지고, 성서에 나타난 짧은 시간의 생물 창조가 지질학과 고생물학의 발견으로 인해 지구의 긴 시간이 밝혀지면서 창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초기에 강력하게 창조와 종의 불변성을 주장하던 린네조차도 후반기에는 종과 종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변종이 등장하는 것을 인정하면서 원래 신이 몇 가지 기본적인 것을 창조하고 이후 퇴화와 교잡이 일어난 후 새로운 종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논리를 펴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3)모페르튀(Maupertuis, Piee Louis Moreau de, 1698-1759)
근세에 들어와서 진화사상이 어느 정도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엽 프랑스에서였다. P.L.M. 모페르튀는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저서 (1745)에서 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