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사회ㆍ문화적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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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어학 사회ㆍ문화적 비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사회 ㆍ 문화적 비평
Ⅰ. 들어가는 말
문학 비평의 유형 중 이번에 살펴볼 유형은 사회ㆍ문화적 비평이다. 문학을 포함하여 모든 예술은 사회와 연관을 맺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양상들 이를테면 세대 간의 갈등, 빈부의 대립, 사회 부조리와 모순 등은 문학에서 즐겨 쓰는 소재이다. 즉, 문학과 사회는 뗄 수 없는 연관을 가지고 있으며 작가는 사회현상을 단순히 반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롭게 해석하여 작가 의식을 부여한다. 사회 문화적 요소가 상호작용하여 문학 작품이 생겨났다는 점에 중점을 두어 연구하는 것이 문화 사회학적 비평가가 하는 일이며, 문학의 미적가치보다 사회적 효용을 더 중시한다.
문학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이전부터 논의되어 왔을 것이다. 본 발제에서 김선영의 의 요약을 맡으면서 사회ㆍ문화적 비평의 연원을 구체적으로 공부하는 것에 목적을 두어도 좋을 것이다. 편의상 한국 중국의 고전 문학론, 20세기 이전의 사회ㆍ문화적 비평가의 주장, 20세기 이후의 사회ㆍ문화적 비평가의 주장, 사회ㆍ문화적 비평의 장단점 등으로 나누어 요약하고자 한다. 덧붙여 발제문의 각주는 이해가 필요한 부분에 설명을 해 둔 것임을 밝힌다.
Ⅱ. 사회ㆍ문화적 비평 서설
1. 한국과 중국의 고전문학론
동양에서는 기원 전 10세기부터 7세기까지의 중국 시들이 정선 ㆍ수록된 『시경』이래로 문학이 사회 ㆍ문화적인 의미와 효과를 가진다는 인식이 존속되어 왔다. 『시경』의 대부분 시들은 은근히 백성을 가르쳐 선도하며 위정자의 잘못을 근심하고 풍자함으로써 시의 사회적 효용성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국풍(國風)이 백성을 교화하고 위정자를 풍자하여 사람의 마음을 은근히 흔들어 움직이게 하고, 소아(小雅)와 대아(大雅)가 위정자의 포악과 실정을 분노하고 근심하는 점에서 그것은 뒷받침 된다. 『시경』의 대부분 시들은 이처럼 은근히 풍속을 교화하고 사회를 풍자하는 것이다. 또 공자가 말한, “시 300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이다”라고 한 것도 시의 사회적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의 시와 시학의 이와 같은 견해는 우리의 시론과 문학관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최자(崔滋, 1188~1260)는 『보한집(補閑集』의 서(序)에서 “글이란 것은 도를 실행하는 문이니 실없는 거짓의 말을 쓰지 않는다”고 하여 문학의 재도적(載道的)기능을 내세우고 있다.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동인시화(東人詩話)』에서 “시라는 것은 잔재주에 지나지 않지만 혹 세상의 교화에도 관련이 있으므로 군자는 마땅히 여기서 취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라는 말로 시의 경시와 그 교화성을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조위(曺偉, 1454~1503)는 『두시언해』의 서(序)에서 시의 사회 교화성을 정통 유교주의자의 견지에서 역설하고 있다. 교재 p.61 8째 줄~11째 줄 참고
유인몽(柳寅夢, 1559~1623)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시는 풍속의 교화와 관련이 있으며 물건의 빛깔을 그대로 읊어서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 시의 풍속 교화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적 기능에 대한 다소 관념적인 유교적 견해는 19세기를 전후하여 좀더 현실적인 경향을 띠게 된다.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不愛君憂國 非詩也 不傷時憤俗 非詩也 不有美절 勸懲之義 非詩也”과 같은 시론처럼 현실에 대한 시의 강력한 역할을 주장하고 있다.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더욱 적극적인 현실참여 정신으로 나라시(國詩)의 개량을 역설하고 있다. 『천희당시화(天喜堂詩話』 교재 p.62 4째 줄~ 8째 줄 참고
에서 그는 시가 국가의 흥망에 강력히 작용한다는 견해를 표명한 바 있다. 신채호는 일제의 통감부 아래 반식민지로 전락한 약체 한국을 강화하고 독립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상무적(尙武的)인 나라시가 있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다산 정약용과 단재 신채호의 주장을 포함하여 문학의 사회 교화적 기능에 대한 중국이나 한국에서의 종래의 인식은 유교적 효용론에 기초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었다.
2. 20세기 이전의 서양 비평가들의 이론
서양인의 문학과 사회 ㆍ문화적 관계 내지 문학과 정치 ㆍ경제적 관계에 대한 인식은 다양하고 유연하다. 플라톤은 시인이 선량한 신에 관해 거짓말하고 미련한 인간을 묘사하며 인간의 행복과 미덕을 방해하는 하는 감정에 오히려 지배적인 자리를 준다는 이유 등으로 시인을 그의 에서 추방하고 있다. 비코는 속에서 예술과 관습은 사람들의 지리적 풍토적 환경의 산물인 동시에 그 시대의 사회발전단계의 산물로 해석하여 사회 ㆍ문화적 비평의 길을 열어 놓았다. 헤르더는 에서 시는 그 국민의 언어ㆍ풍속ㆍ습관에 반응하고, 기질과 풍토, 말의 억양까지 반응하여 끊임없이 그 형식을 바꾼다고 하였다. 헤겔은 1822년부터 23년까지 행한 역사철학 강의에서 문학을 사회의 표현으로 또 사회의 지배적인 관념의 반영으로 보았다.
오늘날 사회 ㆍ문화적 비평의 직접적 출처이며 20세기 사회 ㆍ문화적 비평가들은 테느, 마르크스, 엥겔스 등의 의해 만들어진 기초들 위에 자기의 위치를 설정하고 있다. 우선 테느의 이론은 문학의 발생이 세 원인으로 결정된다고 하였다. 1863년 의 서문에서 문학작품은 서로 침투하는 세 요인으로 인종, 환경, 시대로 보았다. 화학자로 비유하여 문학작품을 음미하고 있는 자기 자신은 과학자이며, 기계의 기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에드먼드 윌슨은 화학자와는 구별된다고 하였다. 테느도 자신이 믿고 있는 것처럼 단순한 기계의 기사는 아니었다. 실제로 문학을 사랑하였으며 도덕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테느가 내세운 문학의 삼대요소에 경제적 요소를 새로 추가하였다. 그들은 생계를 세우는 방식, 즉 경제적 생산의 방법에서 사회계급을 추출해 내고, 이 생산의 방법이라는 경제과정이 문화의 기초를 이루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문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 문학이란 문화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생산적 여러 관계 위에 세워진 사회의식의 상부구조라 하였다. 마르크스는 예술과 사회의식 사이에 너무 단순한 대응을 시사하는 것은 회피하였고, 훌륭한 예술이란 그 사회적 관계를 초월한다고 보았다. 엥겔스는 문학 작품을 단순하게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거나 작품에 생경한 경향성이 노출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마르크스주의 비평은 신중성과 너그러움을 가지고 있으나, 압도적 경향은 예술이란 물질적 현존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결정된다는 전망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