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환(吳章煥)론 - 오장환의 시적 경향 & 존재의 근원으로의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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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오장환(吳章煥)론 - 오장환의 시적 경향 & 존재의 근원으로의 회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Ⅰ. 오장환의 생애
오장환은 1918년 5월 15일 충청북도 보은군에서 농업을 하는 아버지 오학근과 어머니 한학수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22세 차이가 나는 둘째 부인으로, 본처가 죽은 후 정식으로 혼인 신고가 되고, 오장환은 호적에 서자에서 적출로 오르게 된다. (오장환은 처음에 적자로 잘못 신고되었다가 다시 서자로 정정, 큰어머니 사망 후에 적자로 바뀜)성장 환경에서 어머니가 후처라는 사실이 그를 콤플렉스에 빠지게 하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특수한 가정 환경요인은 시대 상황과 연관되면서 유교 관습에 대한 그리고 전통적 세계관에 대한 부정의식을 표출하는 하나의 기저로 작용한다. (양혜경, 『한국 현대시의 공간화 전략』78~79쪽)
그는 고향에서 유년을 보내고, 1927년(당시 10세)에 해주오씨의 집성촌이 있는 경기도 안성군 읍내면 서리로 이사를 한다. 그리고 19세 되던 해인 1936년에 서울로 다시 이사를 하는데 이러한 잦은 이사와 서출이라는 가정환경은 오장환의 성격과 시세계의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짐작된다.
오장환은 1930년 안성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1년에 상경하여 중동학교 속성과를 수료하고, 이듬해 휘문 고등 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 무렵부터 오장환은 시작 활동이 비로소 시작되었고, 시인 정지용과의 만남도 이루어졌다. 그는 휘문고보 3학년 때인 1933년 11월에 그의 첫 번째 시 「목욕간」을 《조선문학》에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장시 「전쟁」도 이 때 쓴 것이다. 이어서 다음해에 ≪조선문학≫에 연작시 「카메라·룸」을 발표하였다. 그 후 1935년에는 휘문고보 3학년 2학기를 마치고 동경유학을 위해 자퇴를했다. 기록상의 자퇴 사유는 동경유학을 위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학업성적의 부진이 보다 큰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퇴 후, 동경에서 1935년 4월부터 1940년 까지 간헐적으로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되며, 지산중학교를 수료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시인부락》, 《낭만》의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서정주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는 1937년 3월에 다시 일본 명치대학에 입학하였고, 《자오선》동인으로 참여하여 시작 활동을 하였다. 그해 8월, 첫 시집 『성벽』이 자비로 풍림사에서 간행되었고, 다음해 아버지의 사망으로 중퇴하고 귀국한다. 물려받은 유산을 기반으로 남만서방을 경영하였고 여기서 그의 두 번째 시집인 『헌사』를 비롯하여 김광균의 첫 시집 『와사등』과 서정주의 『화사집』등을 간행했다는 의의를 지닌다.
그는 나이 28세 되던 해 신장병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광복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의 시집 『병든 서울』의 시편들은 8·15를 계기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1946년 그는 2월에 결성된 ‘조선문학가동맹’에 참여하여 활동하였고, 역시집인 『에세-닌 시집』을 간행하였다. 오장환은 보들레르, 베를레르, 랭보, 말라르메 등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들을 위시하여 엘리엇, 니체, 리드 뿐만 아니라 특히 에세닌 시에 심취해 있었다. 오장환의 향토성을 소재로 한 고향시편들 상당수가 에세닌의 시와 연관되는데 에세닌 시의 번역이 이를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김학동, 『오장환 평전』 170~175쪽)
1947년 6월, 1937년 7월에서부터 1945년 8월 사이에 쓴 작품들을 묶어 시집 『나 사는 곳』으로 간행하였다. 좌익계 문예 운동에 가담한 오장환은 1948년 북한의 북조선 문학예술 총동맹의 기관지인 《문학예술》 4월호에 실린 「2월의 노래」에 의해 그의 월북이 확인되었다.
월북 후 1950년 전반기까지 작품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쪽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던 점과 극도로 악화되었던 병세로 1951년 6월경 신장병으로 사망하였다.
Ⅱ. 오장환의 시적 경향
1930년대, 리얼리즘 퇴조 경향이 완연해지면서 모더니즘, 순수문학이 주류를 이루게 되어 30년대의 시단은 어느 시대보다 문학의 다양성을 드러낸 시기이다. 이러한 문단 상황은 오장환의 작품 세계와 밀접하게 직결된다. 그는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그리고 생명 존중 사상과 순수 서정시 추구를 통해 당시 문단의 시적 경향을 반영한다.
오장환의 삶과 시 창작은 일제 말에서 해방정국에 이르는 격동의 상황 속에서 밀접한 상관관계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즉 서자라는 신분적 제약과 도시에서의 타향살이, 이에 따른 사상적 지향이 그의 시작품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의 시는 과거의 관습과 전통의 계승을 부정하고 서구적 취향에 나아갔다가, 다시 고향을 발견하는 도정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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