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섹슈얼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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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국주의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제국주의와 섹슈얼리티
동양남성과 동양여성, 그리고 백인남성과 동양여성의 성적인 관계
일제시대 일본군 성 노예였던 이른바 일본군 “종군위안부”문제는 한민족 식민 역사의 상징이며 흔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살아 있는 고통의 역사이며 여성의 몸의 역사이다. 그러하기에 식민통치라는 억압의 역사를 극복하려는 시도는 식민주의 이후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지배자와 피지배자, 식민자와 피 식민자의 관계는 젠더화된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국가는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상징되고 여성의 순결성, 즉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침략 받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처녀성은 국가의 독자적 주체성, 주권을 상징하는 메타포로서 상상계에 자리잡는다. 따라서 빼앗긴 조국의 땅은 유린되고 짓 밝힌 여성의 몸으로 상징된다. 즉 식민자에 의한 피 식민 국가의 침략과 탈취는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 침입, 종속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식민 피 식민국가의 관계가 단지 은유적인 차원을 넘어서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제도적으로 그리고 강압적으로 여성의 몸을 식민화한 것이 바로 일본군 종군위안부이다. 특히 유괴, 인신매매, 강제 동원, 취업 사기를 통해 조선 여성을 일본군의 성 노예로 전락시켜 여성의 몸을 착취하고 유린한 것은 국가권력을 동원한 성 폭력이며 제국주의적 식민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일본 제국주의는 강제로 끌려간 여성을 일본천왕이 내리신 하사품으로 취급하였고 피 식민 여성을 식민 지배자 남성의 정욕을 채우는 육체로 보았다. 일본 종군 위안부는 여성의 몸에 대한 제국주의적 식민주의 침략을 상징하는 반면, 이들은 또한 남성중심적 유교문화와 민족주의의 희생자였다. 여성에 대한 순결, 정조관을 강조한 조선의 유교문화는 일본군 성 노예가 된 종군위안부들이 가족과 국가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상상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위안부로서의 자신의 과거를 안고 전쟁 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의식한 이 여성들은 가족과 국가의 범주에서 자의적으로 또는 타의에 의해 배제되었고 이들은 식민지배국의 성 폭력과 착취의 희생자이면서도 전후 이 땅에서 또는 타지를 배회하면서 지속적으로 식민화된 삶을 살도록 강요 받았다. 자신의 경험을 언어화하지 못하고 침묵을 강요 받은 이들은 제국주의적 식민주의뿐만 아니라 유교문화와 민족주의의 이중 희생자였다.
한편, [문서의_처음]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팽창의 역사는 정치적 지배, 경제적 수탈,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 백인 남성들의 식민지 여성에 대한 성적인 기회의 역사였다. 인도와 더불어 말레이 해협에 걸친 영국의 동남아 식민지배는 18세기 후반까지 원주민에 대한 이해와 친근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이족간의 결혼 및 성적 접촉을 장려했다. 그러나 1790년에 총독 웰러슬리는 강력한 프로테스탄트 정책과 산토 도망고의 폭동에 대한 공포로 원주민과의 분리정책을 강행했고 이어진 산업혁명은 영국인들의 지배와 우월감을 감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정체된 국가들을 낮춰보게 되었으며, 1880년 영국 본토에서 일어난 순수운동은 백인과 원주민의 성적접촉을 억제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19세기말과 금세기 초에는 백인의 정체성 상실, 개인적인 파탄, 인종적 퇴화, 그리고 정치적인 불안정 등의 이유로 이족간의 성적인 관계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제국의 이런저런 공식적인 정책과 현실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식민통치 기간 동안 공개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여러 형태의 원주민 여성에 대한 성적 기회가 백인 남성들에게 주어졌다. 다시 말하면 여성의 몸에 대한 역사는 영성의 몸을 둘러싼 다양한 이데올로기, 인종 차별주의적 제국주의, 식민주의, 남성 중심적 내셔널리즘 등 복합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위와 같은 두 가지 상관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한국계 미국여성작가 노라 옥자 켈러의 『종군위안부』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종군위안부』
순효가 아키코로.
주인공 순효는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뒤 12살 때, 큰언니의 지참금을 위해 암소처럼 팔려, 조국의 뿌리 깊은 가부장적 지배와 외세의 제국주의적 권력에 의해 이중으로 억압을 당하는 희생양으로 나온다. 구체적으로 종군위안부 여성에 대한 제국주의적 억압의 양상은 언어적, 물리적 폭력으로 나타난다. “아키코 41”이라는 이름의 종군위안부가 된 첫 날, 자신의 조국과 몸에 침범을 하지 말라고 소리 지르며 저항하다가 죽은 인적의 큰 옷을 입은 그녀의 모습은 일본군에게 우스꽝스럽게 비춰지고 조롱 받는다. 숫처녀이기에 경매로 가장 높은 가격에 팔렸으나 누구나 공짜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위안부들은 인본 군인들을 위해 봉사하는데 필요한 것만을 배웠고 그 이외 어떤 말을 알아들어도 안 되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이 언어에 타고난 재능이 있음을 말하면서도 선천적으로 지배당하게끔 타고난 식민지인이라는 것을 입증하려 하였다는 아키코의 말에서 식민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언어를 빼앗고 침묵을 강요했던 정책을 알 수 있다. 언어가 개인간의 유대를 강화하는 매체이기에 언어의 박탈은 전통과 문화로부터 멀게 하면서 비인간화하는 효과적인 수단인 것이었다. 그리고 아키코의 유산장면을 통해서도 드러나는데, 위안소의 일본인 의사는 낙태를 위해 쥐약과 막대기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쥐약을 받은 여자가 죽은 것을 본 적이 있는 아키코는 막대를 택하고 태아를 막대로 꺼내게 된다. 이때 의사는 일본과 조선 두 민족들간의 진화론적 차이와 생물학적 기벽으로 인해 한 민족의 여자는 지극히 순수하고 다른 한 민족의 여자는 너무나 성적으로 문란하다고 한다. 이것은 위안부 여성의 몸은 피 식민지 국민에 대한 제국의 태도를 반영함을 알 수 있으며 두 문화를 차별화하고 있다.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적인 성 착취에 동원된 종군 위안부 여성들에게 동물처럼 천박하다고 하면서 쥐들도 마음이 내키는 짝이 공급되는 한, 음식이나 물도 거부하면서 죽을 때까지 성행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철저하게 비인간화시킨다. 그리고 힘이 있는 한 수컷이 모든 암컷을 지배할 수 있도록 자연이 보장해 준 것은 우세한 종에게 다행스런 일이고 암컷은 항상 힘있는 수컷에게 반응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것은 피 식민지의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무력화시키는 제국주의 지배의 한 양상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게다가 조선과 일본의 여성이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지리상의 차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식민국가의 인종우월주의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진화론에 근거한 발언은 종군위안부 여성의 정체성을 동물적인 특성에 가까운 부정적인 개념으로 정의하면서 이른 바 백인이 말하는 “검둥이” 라는 용어를 생각나게 한다. 백인의 담론을 내면화한 이들의 눈에 종군위안부 여성은 오리엔탈리즘적인 색이 투영되어 있다. 식민지를 지배한 백인들이 하얗고 검은 피부색을 극단적인 이분법에 우.열, 선.악, 미.추, 인간.동물, 정상.비정상 의 의미를 실었었다. 이에 따라 유색인종 여성의 몸은 착취할 수 있는 열등한 식민지로 비춰졌다.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에 대해 성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흑인 여성은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고정 관념을 각인 시켰다. 이러한 시각이 일본 제국주의 정부가 여성을 순결한 모성과 창녀로 이분화하면서 조선 여성을 성적으로 문란한 창녀로 규정한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위안소 의사가 주장하는 것은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의 담론이다. 제국이 피식민지인의 언어를 억압하고 성 착취는 육체적 정신적 열등함을 증명하여 궁극적으로 식민통치를 합법화하기 위함이었고 나아가 자국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미국인 목사 브래들리와의 결혼.
일본 제국주의가 행한 이와 같은 억압적 식민 담론은 위안소를 벗어난 이후에도 서양인 선교사들과 목사 남편을 통해 다시 드러난다. 아키코가 위안소를 탈출할 때 선교사들이 구출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눈에 비친 아키코는 길을 잃은 짐승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키코 41”라는 명찰을 보고 앉아라, 먹어라 등의 간단한 일본어 명령에 반응을 보이자 영리한 동물에게 하는 것처럼 칭찬을 해 주기도 한다. 아키코에게 음식을 주는 선교사들은 키가 크고 피부는 우유 빛처럼 하얗고 용감하다는 등 긍정적인 면을 부각하고 브래들리는 잘 생기고 우월한 문화를 상징하며 모든 소녀들이 그를 좋아하는 것으로 묘사를 하고 있다. 이 브래들리에 투영되어 있는 제국 미국은 영원한 주체로 선교원의 소녀들은 미국에 대한 객체로, 타자로 굳혀버린다. 소녀들이 브래들리의 멋진 외모에 감탄하고 리본을 받기 위해 무릎을 꿇기까지 하는 장면에서 제국과 피 식민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관계를 알 수 있다. 반면에 아키코는 외로움과 비참을 느끼는 존재이며 갈 곳도 돌보아 줄 사람도 없는 불쌍한 아이로 묘사된다. 동양 여성은 돌봐 줘야 할 어린아이로 서양 남성은 이를 구원할 사도로 구별되는 것은 동양에 대한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선교사들과 브래들리의 말에 성서로부터의 인유가 많고 이것이 아키코를 억압하는 식민담론으로 이어진다. 모든 여성을 마리아라 부르게 하는데, 이것은 자신만 놓고 보면 별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하고 예수라는 남성의 생애에서 특별한 순간들을 명확히 하기 위한 것임을 보여준다. 즉 전형적인 남성 이데올로기에서 비롯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아키코는 막달라 마리아라 불리는데 성경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사람으로 나온다.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까닭에 몸과 마음과 영혼이 모두 파괴되어 인간이라 할 수 없는 폐인이었다. 이것은 길거리의 부도덕한 여자였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또 아키코가 어린 시절 전쟁을 통해 겪은 고난을 성경에서 가혹한 시련을 견뎌 내고 믿음을 굳게 지킨 욥과 동일시한다. 브래들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빌어 그녀를 더 큰 빚을 진 사람, 타락한 여자라 말한다. 후반부에서 창녀라는 직접적인 언급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억압적인 담론과 비교해서 자신은 평생 소중히 여겨지고 보살핌을 받았으므로 신이 시험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행운아라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키코를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고자 하는 위선적인 욕망을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서 파농(Frantz Fanon)이 지적을 따르면 크리스트교는 서구 제국의 식민지 팽창과 함께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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