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시인에 대하여

 1  김종삼 시인에 대하여-1
 2  김종삼 시인에 대하여-2
 3  김종삼 시인에 대하여-3
 4  김종삼 시인에 대하여-4
 5  김종삼 시인에 대하여-5
 6  김종삼 시인에 대하여-6
 7  김종삼 시인에 대하여-7
 8  김종삼 시인에 대하여-8
 9  김종삼 시인에 대하여-9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김종삼 시인에 대하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김종삼 시인에 대하여
1. 생애
1921년 3월 19일 황해도 은율(殷栗)에서 아버지 김서영과 어머니 김신애 사이에서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호나 필명은 따로 없고, 주로 본명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아버지 는 평양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했으며, 어머니는 기독교 집안의 외동딸이었다. 아버지가 평양으로 이사한 후 김종삼은 은율에 남아 다른 형제들과 떨어져 외갓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형 김종문은 평양에서 자랐으며 후에 군인겸 시인이 된다. 동생 김종인은 일본에서 거주하다 최근에 사망했으며, 김종수는 결핵을 앓다가 22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김종삼의 시에서 막내 동생 종수의 죽음은 큰 부분을 차지한다.
1934년(13세) 3월, 평양의 광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 숭실중학교에 입학하였다가 1937년(16세)에 숭실중학교를 중퇴하였다. 1971년 현대시학사 작품상 수상소감에 따르면, 소학교때부터 낙제하기 일쑤였고, 중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였음을 토로하고 있다.
그 후 도일하여 1940년(19세) 3월, 도요시마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47년(26세) 2월, 극단 ‘극예술협회’에 입회하여 연출부에서 음악을 담당하였다. 이 무렵 시인 전봉건의 형인 전봉래 등과 교류하게 된다. 1953년(32세) 6.25전쟁 때 대구에서 시인 김윤성의 추천으로 《문예》지에 등단 절차를 밟으려 했으나 거부당하였다. 시에 ‘꽃’과 ‘이슬’을 쓰지 않았고, 시가 ‘난해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해 5월, 종합잡지 《신세계》에 〈원정(園丁)〉을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하게 된다.
1957년(36세) 김광림, 전봉건 등과 함께 3인 시집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1957)』를 발간한다. 그 후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다 1963년(42세) 현재의 KBS 제2 방송인 동아방송 총무국에 촉탁으로 입사하고, 1967년(46세) 4월, 동아방송 제작부에서 일반사원으로 취직하여 근무하는데, 배경음악을 담당한다. 1968년(47세) 김광림, 문덕수 등과 함께 3인 시집 『본적지(1968)』를 발간하였다. 그 후, 여러 시 작품을 발표하다가 1971년(50세) 10월, 시 작품 〈민간인〉〈연인의 마을〉〈67년 1월〉등으로 제2회 현대시학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1984년(63세) 12월 8일 간경화로 미아리 소재 성수병원에서 사망하였다. 유품으로 현대시학 작품상 상패, 혁대 1점, 도민증 1점, 볼펜 1점, 물통 1개, 모자 1점, 체크무늬 남방 1벌, 본인 시집 2권이 전부였다.
초기 시에서는 어구의 비약적 연결과 시어에 담긴 음악의 경지를 추구하는 순수시의 경향을 나타냈으며 이후 점차 현대인의 절망의식을 상징하는 정신적 방황의 세계를 추구하였으며, 과감한 생략을 통한 여백의 미를 중시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시집으로는 첫 개인시집 『십이음계(1969)』 이래 『시인학교((1977)』, 『북치는 소년(1979)』,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1982)』, 『평화롭게(1984)』 등이 있다.
2. 김종삼의 시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