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중국과 WTO

 1  인문어학 중국과 WTO-1
 2  인문어학 중국과 WTO-2
 3  인문어학 중국과 WTO-3
 4  인문어학 중국과 WTO-4
 5  인문어학 중국과 WTO-5
 6  인문어학 중국과 WTO-6
 7  인문어학 중국과 WTO-7
 8  인문어학 중국과 WTO-8
 9  인문어학 중국과 WTO-9
 10  인문어학 중국과 WTO-10
 11  인문어학 중국과 WTO-11
 12  인문어학 중국과 WTO-12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인문어학 중국과 WTO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중국과 WTO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세계경제질서를 규율해가고 있는 새로운 국제기구를 의미한다. WTO 설립은 산업·무역의 세계화와 함께 국경 없는 무한경쟁시대로 돌입하는 새로운 국제무역환경 기반을 조성하려는 목적을 두고 있다. 15년을 끌어오던 중국 또한 WTO가입(2001. 11. 10 카타르에서 개최된 WTO 제4차 각료회의에서 승인)이 드디어 확정됨으로써 중국의 개방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전 세계는 지금 인구 13억 명, 국민 총생산 세계 7위, 무역규모 10위의 잠재적 대형 시장이 21세기 어엿한 무역 국가로서 등장하게 되는 데 대해 저마다, 대책을 세우고 초강대국 중국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들과 경쟁하기 위한 전략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세계 질서 구축에 있어 일방적인 미국주도의 체제를 어느 정도 견제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중국의 위상과 가치는 더욱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 이미 미국 등의 선진국들은 몇 해전부터 중국시장으로 눈을 돌려 중국에 대한 투자를 추진하고 여러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웃나라 중국의 개방이 우리나라에도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호재로 작용하겠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경쟁력 강화는 우리나라의 입지를 악화시킬 수 있는 위협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WTO가입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 우리나라가 대처해야 할 방향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중국은 WTO에 가입하기 위해서 많은 세월과 노력을 쏟았다. 1992년 鄧小平의 남순강화와 1992년 중국공산당 제 14기 대표대회에서 결정한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개혁의 총목표화는 중국의 GATT가입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을 마련했으며, 이후 중국은 법제건설의 가속, 대외무역제도의 개혁, 관세인하, 비관세장벽의 완화 등을 단행하여 GATT 및 WTO 참가를 위해 충분한 준비를 했다. 중국은 1947년 GATT가 출범할 당시 23개의 원(原) 체약국의 하나였다. 그러나 1950년 중국에서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후 자연스럽게 GATT와 단절하게 되었다. 그 후 1982년에는 GATT의 옵서버자격을 획득하고 이때부터 중국은 본격적으로 GATT에 가입하기 위한 다각적인 접촉을 하기 시작하였다. 1986년 GATT 가입신청서를 제출한 이래 1987년 3월에는 GATT내의 중국의 GATT가입을 다룰 작업반(Working Party)이 설치되었고, 1994년 12월 20일 현재까지 19차례의 회의를 통해 가입협상을 계속하였다. 중국은 당초 1995년 1월 1일 이전에 가입을 완료하려는 목표를 세웠으나, 미국의 강경한 반대로 인해 번번히 실패하였다. 95년 WTO가 GATT를 계승하여 출범한 이후에도 중국은 WTO가입을 지속적으로 시도하였다. WTO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WTO총회에서 회원국의 2/3의 찬성을 얻어야 했다. 하지만 미국이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2/3의 찬성을 얻기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찬성이 필요하였다. 하지만 미국은 탈냉전시대에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중국의 GATT 및 WTO가입을 견제·지연시켜왔다. 따라서 중국의 미흡한 시장개방조치, 천안문사태, 인권문제, 지적재산권 침해 등을 들어 중국과의 가입협상에 난색을 표시했고 중국은 좌절을 계속 맞보아야 했던 것이다. 또한 중국도 鄧小平 사망전에는 가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적었으며 등소평사망 이후에도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과도한 대가를 지불하면서까지 조속한 가입을 추진할 세력이 없었다. 하지만 중국은 재작년 아시아 경제위기의 여파를 막아내고 홍수를 극복한 江澤民 현정부에 대한 신뢰감을 바탕으로 정치적 안정을 이루어 왔다. 따라서 江澤民정부에게는 WTO가입을 통해 중국의 세계적 위상과 경제적 지위가 오른다면 더할 나위 없을 상황이었다. 중국은 작년 이런 과정속에서 WTO 가입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고, 周鎔基 총리를 미국으로 파견하였다 周鎔基 총리는 미국에 지난 3∼4년에 걸친 협상에서 보다 훨씬 더 파격적인 시장개방안을 제시하게 된다. 99년 4월 드디어 중국의 WTO가입에 대한 미·중간의 중간 합의가 이루어졌고, 마침내 미 하원은 종래의 최혜국 대우(MFN)에 해당하는 PNTR 자격을 주기 위한 법안을 통과 시켰다. 이 법안은 상원과 클린턴대통령의 서명을 받았고 미국은 다른 나라와 무역거래를 할 때 적용하는 대우조건을 중국에 대해서도 변함없이 적용하게 되었다.
1986년에 GATT 가입신청이 좌절되었던 중국은 2001년 드디어 WTO가입국의 일원이 되었다.
중국이 이렇게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이유는 첫째, 중국의 국제적 지위와 대외신인도의 향상에 기여하게 되고, 중국의 정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지게 된다. 또한 평등한 조건 아래 세계경쟁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중국의 시장경제발전의 경제적 이익에 증대를 가져다 줄 것이다.
둘째, 세계 주요 교역 상대국들로부터 자동적으로 무차별원칙(어떤 나라에 부여한 가장 유리한 대우가 다른 나라에 대해서도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적용되는 것)에 따른 대우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는 중국의 수출에 막대한 유익을 가져다 줄 것이고, WTO의 백 여 개가 넘는 회원국들 모두 중국에 대해 호혜적인 대우를 하면,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미국에게 매년 한차례씩 힐책 당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중국의 대외교역을 좀 더 안정화시켜 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셋째, 이를 계기로 중국 기업들은 경쟁 메커니즘을 도입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은 개발도상국이 선진국들로부터 받는 특혜나 기술 도입, 그리고 분쟁해결 등에서 차별대우를 받지 않게 되고, 외국투자가들에 대해 중국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시행하여 해외자본을 도입, 기술과 기업관리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개개인의 기업경영인에게까지 좋은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다.
넷째, 회원국들의 정책 투명성으로 인하여 중국의 경제발전에 유리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다섯째, WTO의 정식 구성원으로 21세기 국제무역규정의 결정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고, 중국에게 불리한 상황의 무역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또한 무역규정에 참여함으로, 중국의 합법적인 권익을 반영할 수 있고, 국제무역분쟁의 발단을 WTO의 중재기관에서 해결함으로 불공정 처벌을 피할 수 있다.
여섯째, 중국의 수출관세가 낮아지고, 국민생활수준이 향상된다.
일곱째, 중국은 일본과 한국이 추구하던 경제자립 정책을 따를 수 없게 되었다. 한국과 일본은 수출지향적인 중공업 정책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국내외적으로 큰 대가도 치렀다. 국내적으로 경쟁에서 보호받는 기업이 생겼고, 결국에는 두 나라의 납세자들은 부실기업에 생각 없이 대출해준 은행들을 구하기 위해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편, 국제적으로 이들 나라의 엄청난 수출에 무역상대국들이 압력을 가해왔다. 중국의 규모 때문에 국제무역 상대국들은 일본과 한국의 사례처럼 중국이 수입은 제한하고, 수출은 장려하는 발전정책을 시행할까봐 우려한다. WTO와 그것의 경쟁을 찬성하는 정책은, 중국이 대기업 성장을 편들고 보호주의 정책을 펴고자 하는 유혹에 굴복하지 않도록 해줄 것이다. 중국은 이렇게 WTO가입 후 많은 기대를 바랬기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쳐 결국은 이뤄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