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 판소리 춘향가의 성장과 재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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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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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판소리「춘향가」의 성장과 재창조
목 차
1. 서 론
2. 「춘향가」의 형성과 발전 과정
3. 「춘향가」의 현대적 재창조
3-1. 비공연예술의 재창조
3-2. 공연예술의 재창조
4. 결 론
1. 서 론
우리나라 판소리와 고전소설을 대표하는 「춘향가」는 문학적 음악적 그리고 연극적 층위 등 판소리의 모든 층위에서 그 예술성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의 질적 수준에서도 여타의 판소리와 비교할 바가 아니어서, 근대이행기의 사회적 문제를 현실적 상황 속에서 해결 제시함으로써 미래에 대한 확고한 전망을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미학적 완성도에 있어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높은 성취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전반적인 평가이다.
판소리 일반이 거의 그렇듯이 기실「춘향가」역시 복잡한 존재 양태를 보이고 있다. 판소리「춘향가」는 본래 노래로 부르던 것이었다. 물론 그 노래도 여러 가지의 설화가 변개 수용되면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판소리 「춘향가」가 인기를 끌게 되자, 소리 대신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이 만들어졌는가 하면, 판소리 「춘향가」를 듣고 그 내용을 시화(詩化)한 것, 판소리 「춘향가」로부터 받은 감동을 쓴 작품들도 다수 존재한다. 물론 새롭게 창작된 것도 있다. 개화기시대부터는 창극으로 만들어져 공연이 되기도 하였다. 영화 기술이 들어오면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오페라나 뮤지컬로 공연이 되기도 하는 등 「춘향가」는 어느 한 사람이 쉽게 정리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군집이 되어버렸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춘향가」의 형성과 그 성장과정에 대하여 살펴 보고 기존의 관련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 그 수용 양상을 살펴보면서 내용상 큰 변화 없이 원전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비공연예술분야의 시나 소설에서의 변용과 공연예술분야의 창극, 연극, 오페라, 뮤지컬, 무용 등에서의 변이를 정리하여 근 현대적으로 재창조되면서 어떠한 의의를 갖는지 고찰해 보려고 한다.
2. 「춘향가」의 형성과 발전 과정
「춘향가」는 실제 인물설이나 중국 문학 영향설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근원 설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는 견해가 정설로 굳어진 지 오래되었다. 한 남자에 대해 정조를 지킨다는 열녀 설화, 원통하게 죽은 여인의 넋을 달랜다는 신원(伸寃) 설화, 암행어사가 권력자나 부자의 횡포를 징치(懲治)하고 약자의 한(恨)을 풀어준다는 암행어사 설화, 기생과 양반 자제가 사랑한다는 염정 설화, 관리가 평민의 여자를 빼앗으려 한다는 관탈민녀형(官奪民女型) 설화 등이「춘향가」의 근원 설화로 탐색되었다. 이외에도 몽상(夢祥) 설화, 한시(漢詩) 설화, 신물 교환 설화, 수기(手記) 설화 등도 근원 설화로 제시된 바 있다.
기실 이 설화들이 「춘향가」의 형성에 일정한 몫을 담당했을지라도 이들을 모두 근원 설화로 볼 수는 없다. 「춘향가」의 서사적 골격을 제대로 갖춘 설화를 근원 설화로 보아야 할 터인데, 그에 적실하게 부합되는 단일한 설화가 없으니 문제가 된다. 현재로서는 대체로 관탈민녀형 설화를 중심축으로 하고 여타의 다양한 설화들을 종속 설화로 수용하여 이루어졌다고 이해하면 무방할 듯하다. 판소리학회 엮음, 『판소리의 세계』, 문학과 지성사, 2000, p.214.
한편, 판소리의 무가기원설(巫歌起源說)에 주목하여 「춘향가」는 ‘근원 설화 → 춘향가’의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춘향굿 단계 → 춘향소리굿 단계 → 춘향소리 단계’라는 여러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는 견해도 제시되었다. 설성경, 『의 형성과 계통』, 정음사, 1986, p.13~25.
「춘향가」가 민중 예술의 하나로 소리판에 그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사실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단지 만화(晩華) 유진한(柳振漢)이 호남을 여행하면서 광대들이 공연하던 것을 듣고 지은 「가사 춘향가 이백구」(1754년, 영조30년)를 통해 대체적인 등장시기를 짐작할 뿐이다. 이 작품이 「춘향가」의 기본 줄거리를 두루 갖추고 있으므로 18세기 중엽에는 이미 골격을 갖춘 「춘향가」가 호남 지역에서 널리 불렸으며, 양반층의 관심을 끌 만큼 독자적인 예술성을 일정하게 확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동욱, 『증보 연구』, 연세대학교 출판부, 1976, p.74~81.
위의 사실을 주지할 때, 「춘향가」는 이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등장하였음을 추측할 수 있고, 그것은 대체로 17세기 후반인 숙종 연간의 일로 짐작된다. 이러한 「춘향가」의 성장과 발전은 역대 판소리 명창들이 창조한 다양한 더늠을 중심축으로 이루어졌다. 판소리 창자(唱者)가 특출나게 잘 부르는 대목이 바로 이 더늠인데, 이는 창자의 예술적 열정과 역량이 조합되면서 하나의 능력으로 융화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더늠은 피눈물로 피워올린 한 송이 찬란한 꽃이요, 예술 정신의 결정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춘향가」는 다음과 같은 뛰어난 더늠의 적층적 집적체이다. 장자백의 ‘광한루경’, 김세종의 ‘천자 뒤풀이’, 이석순의 ‘춘향방 사벽도’, 김창록의 ‘팔도 담배가’, 송광록의 ‘긴사랑가’, 고수관의 ‘자진사랑가’, 박만순의 ‘사랑가’, 모흥갑, 박유전, 성민주, 유공력의 ‘이별가’, 정정렬의 ‘신연맞이’, 진채선의 ‘기생 점고’ 전상국의 ‘공방망부사’, 장수철의 ‘군로사령’, 조기홍의 ‘십장가’, 염계달의 ‘남원 한량’, 송흥록, 이날치, 한경석, 송재현, 임방울의 ‘옥중 망부사’, 박만순의 ‘옥중 몽유가’, 오끗준의 ‘봉사 해몽’, 성창렬의 ‘장원 급제’, 송업봉의 ‘어사 남행’, 황호통의 ‘만복사 불공’, 황해천의 ‘농부가’, 강재만의 ‘어사와 방자 상봉’, 임창학의 ‘어사 출도’ 등이 「춘향가」의 예술 세계를 풍요롭게 했던 주옥같은 더늠들이다. 판소리학회, 위의 책,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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