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남도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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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 연혁
BC 108년 한사군이 설치되면서 진번군에 속했다가 대방군이 되었으며, 314년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 668년 고구려 멸망 후 당(唐)의 안동도호부에 속했으나 676년 궁예의 후고구려 영토가 되었다가 918년 고려에 통합되었다. 995년 전국을 10도로 나눌 때 경기도와 함께 관내도가 되었으며, 그 후 경기도와 분리되어 서해도로 개칭되었다. 1270년 원(元)의 동녕부에 속했다가 1290년 회복되었으며 조선 태조 때에 풍해도라고 했다. 1895년 도를 폐지하고 23부로 개편하면서 해주부에 속했다가, 1896년 13도 개편 때 다시 황해도가 되었다. 1945년 8·15해방 당시의 행정구역은 해주시·사리원시·송림시와 벽성군·옹진군·장연군·송화군·은율군·안악군·신천군·재령군·황주군·봉산군·서흥군·수안군·신계군·곡산군·금천군·평산군·연백군 등 3개시 17개군 8개읍 185개면이었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 이후 옹진군과 연백군이 북한의 관할지가 되었다. 1952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안악군과 재령군의 일부를 분리하여 은천군과 신원군을 신설했으며, 연백군은 폐지하고 연안군과 배천군을 신설했다. 송화군의 일부를 분리하여 삼천군을 신설하고 벽성군의 일부로 청단군을 신설했으며, 장연군의 일부 중 서부지역은 용연군을, 남부지역은 신천군의 일부를 병합하여 태탄군을 신설했다. 평산군의 남서부를 분리하여 평천군을, 옹진군의 남동부를 분리하여 강령군을 신설했다. 1954년 황해도를 남북으로 분리하면서 재령강과 예성강 서쪽 지역이 황해북도와 나누어져 황해남도가 되었으며, 1967년 송화군의 일부를 분리하여 과일군을 신설했다. 『2006 북한연감』연합뉴스, 2006
2. 행정구역
동쪽은 황해북도, 남동쪽은 개성직할시, 서쪽과 남쪽은 서해와 접해 있으며, 북쪽은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남포직할시와 면해 있다. 행정구역은 해주시와 벽성군·강령군·옹진군·태탄군·장연군·용연군·삼천군·송화군·과일군·은율군·은천군·안악군·신천군·재령군·신원군·청단군·연안군·평천군·배천군 등 1개시 19개군으로 되어 있다. 도소재지는 해주시이다.
1) 해주시
고구려 이전에는 고죽(孤竹)이라 불렸으며, 고구려 때는 내미홀(內米忽)·지성(池城)·장지(長池)라 했고, 통일신라 때 폭지(瀑池)라 개칭했다. 고려 태조가 해주로 명명했다고 전해지며, 양주와 더불어 수도 개성의 좌우보를 삼았다. 조선시대에는 해주군을 유지했으며, 1895년(고종 32) 부제 실시로 해주부(海州府)가 설치되었고, 그후 도제 실시로 황해도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40년 해주항이 개항장으로 되었으며, 8·15해방이 되면서 시로 승격되었다. 당시의 행정구역은 중동·상동·북본동·남본동·북우동·남우동·동영동·서락동·북행동·남행동·광석동·청풍동·연하동·왕신리·석계리·동애리·용당리·오산리·읍청리·동양리·율동리 등 13개동 8개리로 되어있었다. 북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954년 황해도가 남도와 북도로 분리될 때 황해남도에 속하면서 도소재지가 되었다. 1961년 3월에는 청단군의 영양리와 벽성군의 신광리가 편입되었으며, 용당리를 분리하여 용당동과 서애동을 신설하고, 승마동의 일부를 분리하여 대곡동을 신설했다. 그리고 구제동 일부를 양사동으로, 석천동 일부를 청풍동으로 각각 편입시켰다. 1965년 1월에는 석미리·결성리가 각각 동으로 개칭되었고 석천리가 석천동에 편입되었으며 청단군의 작천리·장방리가편입되었다. 1967년 10월에는 작천리 일부가 분리되어
학현동이 신설되었으며, 왕신리가 동으로 개칭되었다. 1982년 10월에는 왕신동·청풍동·태봉동·학원동이 폐지되었고, 새거리동·산성동이 신설되었다.
2) 강령군
고구려 시대에 ‘부진이’ 라고 부르다가 고려초에 영강현이라 했고, 현종 9년(1018)에 옹진에 예속되었다. 공민왕 6년(1357)에는 문화현에 속하기도 했다. 조선 태종 14년(1414)에 장연과 합병하여 연강이라 하다가 곧 령강이라 했다. 조선 세종 10년(1428)에 영강, 백령을 합하여 강령현이 되었다. 1910년에 군을 폐하고 장연으로 합했다. 광복 후 38도선 이남 지역으로 대한민국에 속했으며
전쟁중이던 1952년 옛 옹진군의 동부 지역에 해당하는 송림면, 동강면, 룡연면, 봉구면을 따로 떼어 신설한 군이 되기도 했다. 1954년 10월 옹진군의 순위리, 어화도리가 강령군에 편입되었다.
3) 배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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