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

 1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1
 2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2
 3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3
 4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4
 5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5
 6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6
 7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7
 8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8
 9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9
 10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10
 11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11
 12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12
 13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13
 14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14
 15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15
 16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16
 17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17
 18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18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인문어학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감사합니다
18
저희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발표하게 된 3조입니다.
1
저희는 역사는 역사가의 주관인가, 랑케의 실증주의 역사관, 역사와 신화의 차이, 일본의 역사왜곡 문제, 한국 내의 식민사관 문제, TV사극의 역사왜곡 문제순으로 발표하겠습니다.
2
존재의 의미와 가치의 세계를 반영: “역사를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철학자가 단지 전진과 발전, 총체성 속에서 무한을 추구하는 반면, 역사가는 모든 존재에서 무한한 무엇을 인식한다. 즉 어떤 조건에서도, 모든 존재에는 신으로부터 유래하는 영원한 무엇이 있다.”
6
순천대 박물관은 전남도와 순천시의 예산 지원으로 지난 2006년과 2008년에 이어 ‘순천 운평리 고분군’ 발굴 3차 조사를 실시했다.
순천 운평리 고분군은 전남 동부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고총이 있는 대규모 가야계 고분군이다.
조사결과 2기의 가야계 고총 고분과 6기의 목곽묘가 확인됐으며, 대가야계 순금제이식(純金製耳飾)·마구류(馬具類)·대도(大刀)·꺽쇠·토기류·옥 등 2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일본은 그동안 ‘임나사현’(任那四縣)에 근거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임나사현’중 하나인 순천의 ‘사타국’의 지배층 무덤에서 일본계 유물이 아니라 대가야계 유물이 대거 출토됨에 따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이 후대에 조작됐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11
독도는 한국영토입니다. 여기 한국영토라는 모든 자료를 올리겠습니다.
또한 일본의 주장과 그에대한 한국 정부의 반박문 모두 있으니 도움이 되실 것 입니다.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울진군 죽변에서는 약 217km, 울릉도에서는 약 87km 떨어져 있는 반면, 일본의 오키제도에서는 약 158km, 시마네현 히노미사끼에서는 약 211km 떨어져 있습니다.
독도의 위치
울릉도에서는 독도가 가시거리에 들어오지만 일본에서는 가시거리에 독도가 없습니다. 이것은 국경개념이 명확하지 않았던 고대사회에서 보이는 곳까지가 삶의 터전이었다는 한·일 양국의 공통된 인식(관습)에 근거하여 독도가 우산국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해저지명등재현황강원대지, 울릉대지, 우산해곡, 우산해저절벽, 온누리분지, 새날분지, 후포퇴, 김인우해산, 이규원해산, 안용복해산 등 동해 해저의 지명이 한국식으로 국제해저지명집에 등재된 것은 지난 1974년 국제등재 업무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동해 해저 10곳의 한국식 지명이 국제해저지명집에 실려 국제사회에서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독도가 우리 땅인 세 번째 이유입니다.
독도가우리땅인 역사적이유
삼국사기 3* 독도가 우리 조상들의 인식에서 명확하게 기억되어 있는 시점은 512년 6월 삼국사기 기록부터 1990년 10월 대한제국 칙령까지 이어지고 있다.
지증왕 13년 6월 여름 우산국이 귀복…복속되었다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우산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한 주변 섬들을 아우르고 있었던 나라입니다.
* 광무 4년이 바로 1900년, 10월에 관보 형태로 발표했습니다. 빨간색으로 칠해진 부분을 확대해서 볼까요? 제2조 군청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울릉도와 죽도, 석도를 관할한다. 여기에서 석도는 바로 독도를 의미합니다.
(대한제국 관보) 4대한제국에서 분명히 독도를 대한제국의 영토로 관할한다는 것을 못 박고 있습니다.독도가 울릉도에서 날씨가 맑은 날 육안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우리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5
정체성론은 한국이 여러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도 능동적으로 발전하지 못하였으며 당시의 조선사회가 10세기 말 고대 일본의 수준과 비슷하다고 보는 주장이다. 특히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데 필수적인 봉건사회가 형성되지 못하여 사회경제적 낙후를 면치 못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논리는 한국의 근대화를 위하여 일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침략미화론으로 이어졌다.
타율성론은 한국이 역사를 스스로의 주체적인 역량으로 전개시키지 못하고 중국이나 몽골, 만주, 일본 등 주변 외세의 간섭과 힘에 좌우되어 왔다는 논리이다. 한국사는 그 형성에서부터 중국 등의 식민지배에서 출발하였다고 보았는데, 이는 한민족의 적극적이고 자율적인 성향을 부정하고 타율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리는 한민족의 부수된 주변성으로 대표되는 반도적 성격론과 사대주의론에 관한 주장으로 더욱 강조되었다.
이와 함께 당파성론도 제기되었는데, 이 주장은 조선의 문화수준이 낮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처럼 발전하지 못한 까닭은 잘못된 민족성을 지닌 탓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파벌을 만들어 싸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당쟁과 사화를 그 예로 들었다.
[출처] 식민사관 [植民史觀 ] | 네이버 백과사전
16
17
모든 가치 판단과 형이상학적 사변을 철저히 거부하는 객관적 연구를 요구
역사가는 문헌 비판을 통한 1차 사료에 근거하여 “과거를 판단하는 것”을 삼가고 “실제 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역사를 자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철학자가 단지 전진과 발전, 총체성 속에서 무한을 추구하는 반면, 역사가는 모든 존재에서 무한한 무엇을 인식한다. 즉 어떤 조건에서도, 모든 존재에는 신으로부터 유래하는 영원한 무엇이 있다.”
존재의 의미와 가치의 세계를 반영
실증주의
랑케의 실증주의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