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1차 세계대전의 지정학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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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과학 1차 세계대전의 지정학적 의미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차 세계대전의 지정학적 의미
차 례
Ⅰ. 序論
Ⅱ. 1차 세계대전의 발단
1. 1차 세계대전 이전의 국제적 긴장
1)독일의 세계정책
2)삼국동맹과 삼국협상
3) 3B정책과 3C정책의 대립
4) 제국주의와 열강의 아프리카 분할
2. 유럽의 화약고 : 발칸반도
1) 발칸유럽의 민족적 측면
2) 발칸유럽의 종교적 측면
3. 경제상황
Ⅲ. 1차 세계대전의 경과 및 전략구도
1. 전쟁 발발의 과정
2. 전쟁 초반(개전~일본의 참전)
1) 사라예보의 총성과 전쟁발발
2) 발칸전선
3) 일본의 참전
4) U보트의 활약
3. 전쟁 중반(1915년~미국참전)
1) 이탈리아의 참전
2) 가리포리 상륙
3) 연합군의 패퇴
4) 무제한 잠수함 작전
4. 전쟁 종반(미국참전~종전)
1) 무제한 잠수함 작전의 계속과 미국의 참전
2) 선단호위방식의 성공
3) 일본함대의 참전
4) 러시아혁명과 러시아군의 탈락
5) 미국군의 도착
6) 화평조건 14개항과 독일 동맹국의 항복
Ⅳ. 結論 : 지정학적 해석
1. 대립자 분석
1)삼국동맹 VS 삼국협상
①삼국동맹
②삼국협상
2)일본의 전쟁 참가
3)이탈리아의 연합국측 참전
4)미국의 참전
5)러시아의 이탈
2. 각국의 이익 분석
1) 영국
2) 프랑스
3) 미국
4) 러시아
5) 독일
1차 세계대전의 지정학적 의미
6)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3. 전쟁 결과 분석
1) 베르사유 체제
2) 1차 대전 후 국제질서 변화 양상
Ⅰ. 序論
1차 세계대전은 역사적 의미에서나 지정학적 의미에서나 매우 중요한 전쟁이다. 2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는 점, 최초의 현대전이라는 점, 최초의 세계전이라는 점 등의 의미뿐만 아니라 많은 당사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지정학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우리는 1차 세계대전의 지정학적 의미에 대하여 고찰해 보기로 한다.
연구에 앞서 우선 선행되어야 할 것이 1차 세계대전의 범위의 확정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크고 작은 국지전이 빈발하고 있었고, 그전과는 달리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어서 시작에 대해서는 각국마다 그 견해가 다르다. 우리는 그 중에서 통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1914년 6월 29일 사라예보 사건을 그 시작으로 보기로 한다. 그리고 종전에 관하여는 1918년 11월 11일 전 전선에 걸쳐 휴전을 선언한 시점으로 보는데 이견이 없다. 따라서 사라예보사건을 시작으로 하여 1918년 11월 11일 휴전을 선언한 시점까지를 1차 세계대전으로 보기로 한다.
본 연구를 시작함에 있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이 ‘과연 사라예보사건이 세계대전을 일으킬만큼 큰 사건인가?’하는 점이었다. 물론 황태자가 암살당한다는 것은 큰 일이다. 그러나 그 사건을 가지고 주변국들에서 그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간섭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시 유럽은 전쟁에 대하여 비윤리적이라는 생각이 없이 영토분쟁은 전쟁으로 해결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있었기 때문에 쉽사리 전쟁에 참전할 수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맹이라는 이유만으로 참전한 것은 아니고 무언가 자기들도 바라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연구하는 것을 주제로 잡았다. 즉, 전쟁자체의 분석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전쟁의 이면에 있는 지정학적인 의미를 파악해보기로 한다.
우선 2장에서는 전쟁이 발생하기 전 상황들을 분석하여 봄으로써 전쟁의 원인을 파악해보고, 3장에서는 개괄적으로 전재의 진행을 연표에 의거하여 서술하도록 한다. 그리고 4장에서는 전쟁의 참가국의 이해관계와 전쟁의 결과를 분석하여 그 지정학적 의미를 파악해보도록 한다.
Ⅱ. 1차 세계대전의 발단
1. 1차 세계대전 이전의 국제적 긴장
1) 독일의 세계 정책
1차 세계 대전의 가장 먼 원인은 빌헬름 1세와 비스마르크 수상에 의한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 제국의 통일에서 찾을 수 있다. 비스마르크는 통일된 제국의 안정을 현상유지 하기 위해 빈 회의의 대원칙인 공개외교를 통하지 않은 채 비밀외교나 조약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열강의 구도를 교묘하게 이용한 외교술로 평화를 유지했다. 또한 당대 최고의 육군력을 가진 프랑스를 고립시키기 위해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3제 동맹(1873)을 결성하고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와 3국 동맹(1882)을 결성했다. 비스마르크는 산업을 급속하게 육성하려면 전쟁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프랑스의 복수를 피하기 위해 삼제동맹(三帝同盟 독오러)를 결성했다. 베를린 회의에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와의 사이에 삼국동맹을 체결하고, 1887년에는 러시아와 조약국 한쪽이 다른 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중립을 지킨다는 비밀조약 (재보장조약)을 맺어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 후 세계 전쟁을 암시할만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다. 러시아의 남하 시도를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지원하면서 저지하자 3제 동맹은 붕괴되었고, 결정적으로 유럽의 국제적인 긴장을 격화시킨 가장 중요한 요인은 비스마르크 실각 후의 독일의 적극적인 세계정책의 추진과 이를 위한 군비 확장이었다. 1888년 황제로 등극한 빌헬름 2세는 1890년 비스마르크를 실각시키고 세계 정책(welt politic)을 취함으로서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고 이전의 현상유지적인 외교 노선을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외교 노선으로 바꾸었다. 빌헬름 2세는 평화외교를 선호하지 않았고 결국 러시아가 독일과의 동맹을 깨고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또 영-불 협상, 영-일 동맹, 러-불 동맹, 영-러 협약 등이 차차 맺어지면서 그 구도가 성립된다. 독일은 모로코문제 등을 계기로 영-불 협상을 깨려 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독일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의 동맹만을 지키는 상태였다. 독일은 비스마르크 시대에 있어서도 열강의 뒤를 따라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그리고 중국 등으로 진출하였으나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열강의 세계분할에 대한 참여였을 뿐 열강의 어느 특정 세력권이나 이권에 대한 도전은 아니었다. 그러나 독일은 1900년경 열강의 세계분할이 거의 완료되었을 때까지 기존 세력권이나 이권을 무시하면서 강력하게 세계정책을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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