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유학사상 계몽의 빛 유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계몽의 빛, 유교
사유의 신대륙 (김윤지)
중국사유와 유럽사유의 만남은 유럽에서 일어난 중세적 사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혁명적 변화들과 관계가 있으며 예수회 선교사들의 문화적응적 선교관이 배경을 이루고 있다.
이 두 사유의 만남은 종교개혁과 인문화 과정을 통해 계몽으로 향하고 있었던 서구 지성사회에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 충격을 롤(Paul A. Rule)의 묘사로 표현 하자면 “아메리카가 유럽에 물리적인 ‘신대륙’이라면, 중국은 그들에게 근본적인 의미에서 가치체계와 신념이 전혀 다른 ‘사유의 신대륙’이었다.” 라고 표현 할 수 있다. 이 사유의 신대륙은 예수회 선교사들에게는 새로운 선교지였으며 유럽의 지성인들에게는 신지식의 원천이었다. 선교사들이 중국문화를 유럽에 소개함으로 말미암아 유럽으로 하여금 유교가 유럽계몽기의 지적 성숙에 기여하고 유교의 종교적 가치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지게 하였다.
처음 유교에 대해 발견하고 그것을 유럽인들에게 전한 사람은 예수회 회원들 가운데 미카엘 루지에리(Michele Ruggieri)와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였으며, 이들은 보유론적 적응주의적 선교방식을 가지고 유교에 대한 해석적인 삶을 살았다. 루지에리는 중국어를 배우고 교의서라고 할 수 있는 『천주성교실록(天主聖敎實錄)』을 저술하였고 유교의 사서(四書)를 라틴어로 번역하였다. 또한 마테오 리치는 사서(四書)와 육경(六經)을 번역 편찬하였으며, 이 고전들을 통해서 천주교의 기본 교리에 중요한 개념들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천주실의 집필의 자료 수집에도 도움이 되었다. 즉 마테오 리치는 신 유학에 의존 하기 보다는 본원유학 속에서 그리스도교와의 종합테제를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낯선 문화를 이해 하는 것에 있어 오해가 생기는 부분들이 있었다. 예수회 회원들은 중국의 철학적 전통을 연구하는 가운데 중국의 ‘상제上帝’와 ‘천天’이라는 개념을 더 높은 이성이라고 보았으며, 중국인들은 그 더 높은 이성의 힘을 인식하여 의존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가톨릭의 미사전례를 은밀히 접목시키려고 하였으며 조상숭배라는 개념까지도 적응주의적으로 적용하였다. 그러나 이는 가톨릭의 전통 교리를 위배하는 것이었고 결국 이것은 전례논쟁으로 발전하였다가 예수회 퇴거 명령으로 논쟁의 막을 내렸다.
유교와 계몽사상 (전수연)
중국문화에 대한 관심과 유교철학에 대한 논의가 계몽기 유럽에 불기 시작하였을 때, 계몽주의자들은 공자를 자신들의 후견인으로 숭배하며 연구하였다. 이들은 철학, 정치제도, 교육제도 등 중국의 문화와 제도에 매료되었고 유교를 그리스도교 가치관을 대신할 새로운 규범체계로 인식하였다. 그러한 그들의 계몽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유교 해석을 알아보고자 한다.
인간적인 영역, 특별히 고유한 자아에 관심을 기울인 몽테뉴(Michele Euquem de Montaigne)는 세계와 인간은 어떤 특정한 질서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형상이나 삶의 형식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이므로 개방적인 자세를 갖고 삶을 성찰하기를 요구하였다. 그에게 중국은 유럽인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인간의 다양한 삶 가운데 하나였다.
몽테뉴이후 말르브랑슈(Nicolas de Malebranche)는 지적사유에 깊이 개입하기 시작하였음을 그의 저작에서 밝히고 있다. 그는 유교를 스피노자주의 형식으로 제시하며 자신의 철학적 목표인 데카르트주의에 관한 자신의 독특한 해석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전략적으로 이용하였다.
베일(Piee Bayle)은 반 권위주의적 회의주의를 견지하면서 중국의 고대성을 인용하여 전통적인 성서 연대기를 전복시키고 낭트 칙령의 취소에 따른 종교적 불관용과 박해를 공격한 자유사상가였다. 베일은 무엇보다 진리를 억압하는 형이상학과 종교적 요소를 공격하였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교의 유신론이 도덕규범을 확립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행 조건이 되지 못함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베일과 동시대인인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의 중국에 관한 중요한 두 저작인 ‘현대중국’과 ‘중국의 자연신학론’에서 그는 중국이 계시보다는 이성에 바탕을 둔 자연종교를 형성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그는 서양의 계시종교와 중국의 윤리와 자연신학이 대등하게 조화를 이루는 보편적 종교의 토대를 마련하려고 했다. 라이프니츠의 이성적 낙관주의와 조화의 사상은 보편어인 잃어버린 아담의 언어를 되찾는 모색에서 드러난다. 단순하며 명백하고 통일된 언어체계를 찾으려는 그들은 수학적이고 실증적인 원리에 기초를 둔 논리적이고 과학적 언어를 재구성해보려는 학자들의 옹호를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