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민중 신학 -서남동, 안병무의 입장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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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전통과 민중 신학.
-서남동, 안병무의 입장을 중심으로-
Ⅰ. 서 론
“민중신학”은 이제 하나의 신학사조를 가르키는 대명사가 되었다. 또한 민중신학은 한국을 대표하는 신학으로써 자리매김 하고 있다. 민중신학이 하나의 낱말이 된 것은 1979년의 일이었다.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많은 한국 지성인들의 관심의 초점은 ‘민중’과 그 낱말의 말하고 있는 실재의 역사적 현실과 그 의미였다. 그리고 1979년 열린 아시아 신학회의에서 이러한 한국의 새로운 신학적 흐름에 어떤 이름을 붙일지를 몰라 토의를 거듭했다. 그 결과는 민중을 위한 신학도 이나고 민중의 신학도 아니며 민중에 의한 신학도 아니기 때움네 또 어떻게 보면 민중 경험 민중문화 또는 ‘민중의 사회전기’에서 배우는 신학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민중신학이라는 낱말에 합의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현영학,「민중. 고난의 종. 희망」(민중신학논집2 - 1980년대 한국 민중신학의 전개, 1990) 11.
민중신학의 시작은 1975년 김찬국, 김동길의 출소를 기념한 3.1절 예배 강연에서 안병무는 복음의 민중적 성격을 들어 ‘민중’이라는 용어를 처음 신학해석의 핵심틀로 사용하였고, 그해 서남동도 《신학사상》 4월호에 ‘민중의 신학’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영적 구원보다는 정치적 구원이 신학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실제 민중신학은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가 시작된 1960년대에 태동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 아직 구체적으로 역사와 구원의 주체로서 ‘민중’이 고려된 것은 아니었지만 개발독재에서 지속적으로 소외된 기층민중들의 고난 현실과 그들의 저항에 접한 일단(一團)의 신학적, 신앙적 반성에서 출발한 까닭이다. 1970년 전태일 분신사건의 충격과 연이어 시작된 유신체제는 구체적으로 민중신학이 발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네이버 백과사전, 민중신학 참고
본 발제는 민중 신학이 가장 활발하게 퍼져나갔던 7-80년대를 중심으로 제 1세대 민중신학을 대표하는 안병무와 서남동의 사상을 중심으로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민중 신학과 그들의 입장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전통적인 신학관점에 대하여 그들은 무어라 말하고 있으며 무엇이 논쟁의 대상이 되었는지 또한 무엇이 전통적인 관점과 다르며 왜 공격의 대상이 되었는지 그들의 입장을 살펴보는데 목적을 둔다.
Ⅱ. 본 론
1. 서남동 - 한의 민중신학, 방외 신학.
민중신학이란 구체적인 신학의 화두를 처음 내놓은 사람은 서남동 이었다. 서남동은 1975년 민중의 시각에서 본 “예수, 교회사, 한국교회” 서남동, “예수, 교회사, 한국교회” 기독교 사상 1975. 2. 53-68
라는 논문을 발표 하였다. 이논문은 한국 신학계와 기독교계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에 의하면 “예수의 출현 자체가 적어도 누가 복음에 의하면 (1:46) 경제적 빈곤, 사회적.문화적 편견, 사싱리 은폐된 어둠 속에 사는 무지, 정치적 억압으로부터의 인간해방 작업” 서남동, “예수, 교회사, 한국교회” 기독교 사상 1975. 2. 53.
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 전통적 기독교는 이러한 예수, 그리고 그의 복음의 성격을 탈역사화, 탈 정치화 하였고, 개인적이고 종교적 차원에서 내면적이고 추상적으로만 해석하여 왔다. 다시 말해서 기족교가 콘스탄틴에 의해 국교화 되면서 갈릴리 가난한 민중 예수로부터 시작된 기독교가 로마 귀족들의 종교가 되었고, 이에 따라 성서의 해석과 교리화의 작업은 언제나 기득권을 유지하고 안주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루어 졌다고 보는 것이다. 백용기, “민중신학의 발전 과정과 방법론” 신학사상 제 95집 1996. 220-221
그런데 서남동의 이 논문에 대해 김형효가 “혼미한 시대의 진리에 대하여” 김형효, “혼미한 시대의 진리에 대하여” 문학사상 1975. 4.
란 비판의 논문을 발표 하였다. 그는 이 글에서 “서교수가 말한 그 ‘민중의 소리’에서 민중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전혀 실질적 내용이 없는 추상의 허구는 아닌지?” 위의 글.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