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당 전쟁론 팽창전쟁전개와 결과 1차 포에니 전쟁

 1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당 전쟁론 팽창전쟁전개와 결과 1차 포에니 전쟁-1
 2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당 전쟁론 팽창전쟁전개와 결과 1차 포에니 전쟁-2
 3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당 전쟁론 팽창전쟁전개와 결과 1차 포에니 전쟁-3
 4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당 전쟁론 팽창전쟁전개와 결과 1차 포에니 전쟁-4
 5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당 전쟁론 팽창전쟁전개와 결과 1차 포에니 전쟁-5
 6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당 전쟁론 팽창전쟁전개와 결과 1차 포에니 전쟁-6
 7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당 전쟁론 팽창전쟁전개와 결과 1차 포에니 전쟁-7
 8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당 전쟁론 팽창전쟁전개와 결과 1차 포에니 전쟁-8
 9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당 전쟁론 팽창전쟁전개와 결과 1차 포에니 전쟁-9
 10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당 전쟁론 팽창전쟁전개와 결과 1차 포에니 전쟁-10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당 전쟁론 팽창전쟁전개와 결과 1차 포에니 전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로마공화정기의 제국주의적 팽창
1. 머리말
2. 정당 전쟁론
3. 팽창전쟁의 전개와 결과
(1) 제 1차 포에니 전쟁
(2) 제 2차 포에니 전쟁
(3) 제 3차 포에니 전쟁
4. 로마 제국주의의 동기
5. 맺음말
1. 머리말
기원전 265년 무렵 피사(Pisa) 이남의 이탈리아에는 로마에 의해 주도되는 이탈리아 연방이 수립되었다. 여기에는 로마의 시민이나 반시민 뿐 아니라, 법률상으로는 독립적이었던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도시들은 로마의 동맹자일 뿐이었으나 로마인들은 이들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이들을 통제하고 있었고, 또한 동맹군은 로마군과 더불어 로마가 결정한 전쟁을 치르고 그 혜택을 공유하였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이탈리아는 연방이라 부를 수 있는 상태로 통합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기원전 264년 시작된 해외팽창은 로마에 최초의 예속지(속주, provincia)를 가져다 주었고, 속주는 로마제국의 기본 단위가 되었다. 로마인들은 이때부터 대략 120년 정도 주요 지중해 세력들과 치열한 전쟁을 치루어 나갔고, 그 결과 기원전 146년 무렵에는 지중해 주변의 주요 지역들을 속주 한 대제국을 소유하게 되었다. 물론 공화정 말기와 제정기에도 전쟁과 영토의 확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이 단계에서 더 중요한 문제는 제국 획득에 관한 것이 아니라 통치와 유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는 로마가 제국을 획득하게 되는 기원전 264년에서 기원전 146년까지의 로마의 팽창주의를 살펴보겠다.
2. 정당 전쟁론
로마인들은 방어적 이유로 시작된 전쟁만을 인정하였으며, 나아가 상대국이 전쟁의 사유가 될 만한 가해 행위를 하였을지라도,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적절하고 타당한 절차를 밟아야만 그 전쟁은‘정당한 전쟁’으로 성립된다고 믿었다. 그와 같은 절차는 페티알레스(fetiales)라는 사제단에 의해 수행되었으므로‘페티알리스 법(ius fetiale)’이라 불리어진 일종의 종교법에 의거하였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이루어졌다. 우선 전쟁을 할 정도의 가해를 당하면 일단 한 명 혹은 두 명의 페티알레스가 가해국으로 가서 배상을 요구한다. 30일이 지난 후에도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신(神)들에게 증인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나서 원로원에서 전쟁 여부가 결정되고, 민회는 이를 승인한다. 그런 후 선전포고를 하게 되고, 규정된 양식에 따라 전쟁을 선언한 후 적의 영토에 창을 던짐으로써 완료된다.
라티움의 여러 국가들이 공유하던 이러한 원칙은 국제법이 존재하지 않던 시기에 공동체 상호간의 갈등을 완화해 주고, 사소한 국가 간의 분쟁이 전쟁으로 격화되는 것을 어느정도 억제해 주었다. 그러나 로마의 힘이 다른 공동체들보다 우월해지자 이런 기능은 점차 약화되었다. 상대에게 배상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가능한 한 전쟁의 가능성을 축소시키는 것보다는, 절차에 관한 형식적 요건을 갖추는 것이 중요해졌다. 로마인들이 전쟁시 상태측이 ‘부당하다’고 주장할 경우 이때의 정당성이란 윤리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형식적·법률적인 의미가 강했는데 이러한 의미에서 이는 승전을 얻기 위한 종교적 예방조처라 할 수도 있다. 법률적 정당성은 승리에 대한 확신과 적에 대한 우월감을 가져다 주었고 이러한 정신 하에서 페티알리스 법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또한 3세기 초 이래 페티알레스 법의 절차 자체도 단순화되고 더욱 형식적으로 되었다. 이로써 로마인들은 전쟁을 원할 경우 일단 조건부로 전쟁을 가결한 후 상대방이 수락하기 힘든 무리한 배상조건을 제시함으로써 전쟁의 구실을 마련할 수 있었다.
로마인들은 자기 자신과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서만 전쟁을 한다는 것을 자랑하곤 했는데 키케로(Cicero)는 에서 로마는 (동맹국에 대한) ‘신의를 위해’ 혹은 (조국의) ‘안녕을 위해’서가 아니면 전쟁을 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우리 민족은 동맹국들을 수호함으로써 전 세계에 대한 권력을 획득하였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로마의 정당전쟁론과 동맹국 방어론은 로마가 실제로 고상하고 윤리적인 동기에 의해서만 전쟁을 수행했음을 증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종종 전쟁을 시작하기 위한 그럴듯한 명분을 제공하곤 하였다.
3. 팽창 전쟁의 전개
(1) 제1차 포에니 전쟁 ( BC 264 ~ 241 )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