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

 1  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1
 2  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2
 3  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3
 4  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4
 5  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5
 6  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6
 7  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7
 8  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8
 9  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9
 10  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10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역사적 상상과 문학적 언어의 만남
< 목 차 >
1. 서론
2. 본론
가. 1960년대 : 4.19의 충격과 좌절
나. 형식의 모더니즘
다. 내용의 리얼리즘
1) 민중의 소시민성 : 성찰과 희망
2) 반복되는 역사 : 절망적 방향으로
3. 결론
[참고 문헌]
서론
성춘복(成春福)은 1936년 12월 10일 부산에서 출생했으며, 성균관대학 국어국문학문과를 졸업했다. 그리고 1959년 신석초에 의해 「현대문학(現代文學)」에 『어항 속에서』, 『벽화(壁)』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이후 1966년 제1시집 『오지행(奧地行)』을 출간했고, 같은 해에 제2시집 『公園 파고다』를 발표하며 월탄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산조(散調)』(1970), 『복사꽃제(祭)』(1984), 『바깥 세상에 띄우나니』(1985) 등 다수의 시집을 상재했다. 배영애, “성춘복의 시세계 : 환상과 욕망의 숲에서 날아오르기”, 수련어문논집 제26·27합집, 2001.12, P.197
성춘복은 최근까지 시화집 『십삼월의 뜰』(2015)을 발표하는 등 문단 데뷔 이후 꾸준한 창작 활동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춘복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데, 성춘복의 시세계에 대해 의미 있는 언급을 한 논자는 배영애(2001)와 여지선(2011)뿐이다. 하지만 배영애에서는 본고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公園 파고다」에 대해 사회에 대한 시인의 현실인식이 드러난다 배영애, “성춘복의 시세계 : 환상과 욕망의 숲에서 날아오르기”, 수련어문논집 제26·27합집, 2001.12, PP.199-200
는 짧은 평가만 내릴 뿐, 더 이상의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 이유로 본고는 「公園 파고다」에 대한 여지선의 논의를 바탕으로 그 내용을 전개해 나가도록 할 것이다. 여지선은 「公園 파고다」를 신동엽의 「錦江」과 김종문의 「서울』과 비교하면서 제3의 장시로 명명한다. 내용면에서는 「錦江」의 리얼리즘적 성격을 띠고, 형식면에서는 「서울」의 모더니즘적 성격을 갖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성춘복의 「公園 파고다」가 어떠한 이유로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의 중간적 성격을 띠게 되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는 시가 발표된 1966년 한국 문단의 흐름과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다. 모더니즘의 경우, 1930년대 한국 시단에 처음 등장한 후 1960년대에 계승되어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점에서 그 적용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리얼리즘은 1960년대 중대한 문단적 사건인 문예지 『창작과 비평』의 창간과 관련이 깊다. 초창기의 『창작과 비평』은 문학의 사회 참여를 지지하면서 리얼리즘 등의 외국이론을 소개하고 확산하는 데에 주력했다. 이때 성춘복은 급격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현실의 객관적 투영에 용이한 리얼리즘을 발 빠르게 적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문학사적으로 1950년대와 1960년대를 가르는 기준인 4.19혁명과 그 좌절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기반으로 「公園 파고다」의 모더니즘적 형식과 리얼리즘적 내용에 대한 나름대로의 분석을 전개해 나가도록 하겠다.
2. 본론
가. 1960년대 : 4.19의 충격과 좌절
1960년대 전반은 ‘4.19혁명’과 ‘5.16군사정변’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큼직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 정치·사회적 혼란기였다. 먼저 4.19혁명은 장기집권을 위한 이승만 정권의 갖은 편법과 불법에 분격(奮激)하여 일어난 민중혁명이었다. 4.19혁명은 학생과 시민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으로서 한국 민주사의 정치·사회·문화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