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개혁가 다산 정약용 그의 교육사상 분석 오학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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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시대의 개혁가 다산 정약용 그의 교육사상 분석 오학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시대의 개혁가 다산 정약용
그의 교육사상 분석 - 오학론
머리말
-현재 교육현실의 고찰
본문
-생애 및 시대적 상황
-오학론 Ⅰ
-오학론 Ⅱ
-오학론 Ⅲ
-오학론 Ⅳ
-오학론 Ⅴ
맺음말
-정리
-반성
참고문헌
머리말
내가 생각하는 요즘의 교육이란 너무 형식에만 얽매이고 무조건 좋은 대학, 좋은 직장만을 위한 것에만 치우쳐져 있다보니 껍데기에만 충실하고 내실적인 측면에는 너무도 등한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論語에 제 4장인 八佾장에서도 보면 그 시대 사회가 너무 혼란하고 질서가 없다보니 공자님께서 내실(敬)은 다 없어지고 껍데기만 남아버린 禮에 대해 한탄하는 대목이 많이 나온다. 그러한 그 시대의 현실은 지금의 사회 현실과 너무나도 비슷하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의 교육은 무엇이 문제이고 지금의 상황과 그래도 조금이나마 비슷한 시대가 어느 시대일까를 고민하다가 정약용에 대해 고찰해보게 되었다.
원래 학문이나 모든 관념들이 처음에 세상에 등장하게 되면 신선하고 좋은 방향으로 세상을 이끌어 나가려는 모습을 보이지만 시간이 흘러가다보면 또 다른 학문이나 관념들이 생겨나게 되고, 예전의 학문은 또 그 새로운 학문에 맞서기 위해서, 또 그 입지를 굳히고 멸하지 않기 위해 점점 보수적인 경향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보수적 경향에 맞선 실학사상이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 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잘못된 교육관을 타파하기 위해 그 시대에서 본받을 점은 없는지 또 그 시대의 사람들이 원했던 것, 지배층이 원했던 것, 실학자들이 원했던 것, 또 그에 반해 현실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 지배층이 원하는 것 등을 생각해보고 비교해보면서 새로운 귀감거리를 얻을 건 없는가 하는 측면에서 다가가 보고자 했다. 그 시절과 지금이 완전 상황이 똑같다고는 볼 수 없지만 최대한 올바른 논리에 접근하여 작성해 보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나는 정약용 선생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정약용 선생님의 교육관이 잘 투영되어 있는 五學論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정약용 선생님께서 살던 시대적 상황과 지금의 시대적 상황을 접목시켜 그때 당시 정약용 선생님께서는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교육의 개혁에 관해 접근하셨는지 파악해보고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 과제가 있는지, 지금의 교육은 그 시대에 대해서 어떠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써보려 한다. 주로 五學論원문에 대한 분석을 전제하에 나의 의견을 위주로 서술하고자 한다.
본문
-시대적 상황 및 생애
정약용은 영조 3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미용이고 호는 다산이다. 다산은 어릴 때부터 재질이 뛰어나서, 10세 때에 자신의 시문집을 만들기도 하였다. 다산은 유형원, 이익의 사상과 학문을 계승하여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성리학의 공리공론을 배격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맡아 수행하였다. 1801년 청나라 신부 주문모를 끌어내어 역모를 꾀했다는 죄명으로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되었으며 18년이라는 긴 유배생활 속에서 독서와 저술에 힘을 쏟아 자신의 독자적인 학문 세계를 구축하였다. 다산은 자신의 나이 75세 때인 1836년(憲宗2) 2월 22일에 파란만장했던 생애를 마쳤다.
다산이 살던 시대는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의 英祖正祖純祖임금이 재위하던 기간으로서 조선후기 사회의 마지막 단계요, 조선 말기로 넘어가기 직전 역사적 변동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당시에는 안으로는 그동안 누적된 사회적 내부 모순이 극심하게 드러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이 모색되었던 시기요, 밖으로부터 서양문물이 전래되고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면서 조선사회의 전통체제를 근본적으로 동요시키는 외세의 영향이 가중되어 오던 시기였다. 정치적으로는 극심한 당쟁의 대립으로 분열의 골이 깊이 패였고, 관료의 부패와 혹독한 착취로 민생의 곤궁은 극한에 이르러 민란이 일어날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다산은 그가 살아가던 세상을 온통 썩고 부패한 시대라고 규정했다. 어느 것 하나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 탄식했다. “天下腐已久, 腐爛”라는 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다산은 전 생애를 통해서 이 병들고 썩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 온갖 방책을 강구하는 500권이 넘는 저술을 남겼다. 현실에 활용하면 부패와 타락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개혁안을 마련해두었으니, 그게 바로 다산의 개혁사상인 것이다. 200년이 지난 오늘의 세상도 마찬가지다. 썩고 병들지 않은 분야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정치권을 위시해서 재계, 금융계, 심지어 교육계에 이르기까지 어느 분야에 더러운 소리와 고약한 냄새가 들리지 않고 풍기지 않는 곳이 있는가.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을 새롭게 개혁하여 온전하게 할 수 있을까. 바로 교육이다. 다산선생님께서 많은 공적을 남기셨다는 건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주목해야 할 것은 교육에 대한 그의 개혁사상이다. 인류가 세상에 발을 디딘 이래로 서로 더불어 함께 문제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교육을 통해서였고, 그 교육은 점점 더 발전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결국 사회구성의 모체는 교육이요, 기초터전인 것이다. 따라서 이 기초터전인 교육의 개혁을 통해서 부패한 사회를 바꿀 수가 있다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다산의 교육 개혁 사상은 五學論이나 不可讀說 등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특히 오학론에서 다섯가지 학문의 폐단을 일일이 꼬집어 밝힘으로써 당시 학문과 교육체계에 대해 질타를 내질렀다. 어쩜 그렇게 결리는 부분만을 꼬집어내어 통렬하게 비판하였는지는 오학론을 직접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간단하게 개시해보자면 五學이란 性理學, 訓古學, 文章學, 科擧學, 術數學으로 이것들이 조선사회를 위약하게 만들고 있다고 보고 이 학문들의 퇴폐적 경향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性理學은 공리공담의 理氣說에 너무 편중해 있고, 訓古學은 경전의 자의와 훈독에 치중해있고, 文章學은 미사여구의 문자적 유희인 번거로운 문장에 너무 치중하였고, 科擧學은 공정하지 못하여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지 못했으며, 術數學은 도선이나 정감록 등으로 어리석은 백성을 현혹시켰다고 비판했다. 쉽게 풀어쓴 敎育哲學 및 敎育史 p.20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