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장 국어와 민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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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 6 장 국어와 민족문화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제 6 장 국어와 민족문화**********************

국어는 크게 두 가지 기준에 따라 분류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언어의 구조적 특징에 근거하는 기준이고, 또 하나는 언어의 기원가 역사에 근거하는 기준이다. 흔히 전자를 언어의 유형분류라 하고, 후자를 언어의 계통 분류라 한다.
국어이 유형론적 특질로는 음운특질, 어휘 특질, 문법특질이 있다. 음운 특질에 있어서는 예사소리, 된소리, 거센소리가 짝을 이루어 분화되어 있는 것이 자음의 특질로서 주목할 만한다. 또한 국어 음운에는 순치 마찰음과 같은 자음은 없으며, 유성음과 무성음이 변별되지 않는다. 또한 국어에는 말소리의 길이나 높이도 존재한다.
국어의 어휘는 고유어와 외래어로 구성되어 있ㄸ. 한자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중국에서 들어와 사용되고 있는데, 국어의 어휘 체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고유어가 표현하지 못하는 어휘의 빈자리를 대신해 줄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이미 존재하는 고유어를 위축시켜 버렸다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고유어는 감각어와 상징어가 크게 발달되어 있고, 의성어나 의태어의 발달이 두드러진다. 또한 우리말에는 친족 관계를 나타내는 어휘가 발달되어 있다. 외래어는 중국어, 몽골어, 여진어, 만주어, 일본어, 서양의 언어들에서 들어왔다.
국어에는 어미와 조사가 발달하여 있어서 대부분의 문법 기능은 이들에 의해 실현된다. 글고 국어에서 여러 개의 어미나 조사가 이어져 결합하는 현상은 교착어적인 특질을 잘 보여준다. 국어에는 단어 형성법이 발달되어 왔으며, 국어의 문장은 대체로 주어-목적어-서술어의 순으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국어의 어순은 비교적 자유롭다고 할 수 있곘따. 서술어는 주로 문장의 맨 뒤에 오지만 다른 성분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위치를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꾸미는 말이 대개 꾸밈을 받는 말 앞에 온다. 국어에서는 또한 높임법이 발달해 있다. 그리고 명사에 성 구별과 수의 개념이 없으며, 관계 대명사가 없고,형용사가 명사적인 성격이라기보다는 동사적인 성격을 지니며, 형용사에 비교급과 최상급이 없다.
오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어떤 언어는 계속적으로 분화를 거듭하여 여러가지 언어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이렇게 분화된 언어들은 하나의 언어에서 출발한 것이므로 공통점을 가질 수 있는데, 이러한 고나계에 있는 언어들을 서로 친족관계에 있다고 하며, 같은 어족에 속한다고 한다. 그리고 분화하기 이전의 모체일것으로 가정되는 언어를 공통조어라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언어를 어족이라는 개념으로 묶어 분류할 수 있는데 이것이 언어의 계통분류이다. 주로 국어는 알타이 어족에 속한다고 하는데, 알타이 어족이란 말은 이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의 원주지가 알타이 산맥 동쪽이엇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다. 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은 튀르크어, 몽골어, 만주-퉁구스어, 등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가설일 뿐 정확하지 않다. 이렇듯 각 언어들이 친족관계에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단서로는 음운 대응의 규칙을 발견되어야 한다는 점이며, 어원이 같은 단어가 많이 발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문법관계를 표시하는 문법형태소의 일치가 발견되어야 한다.
역사시대 이후 한반도와 ㅁ나주 일대에 자리를 잡은 우리 민족의 언어는 북방의 부여계 언어와 남방의 한계 언어로 나뉘어 있었는데, 삼국이 세워지면서 이들은 고구려어, 백제어 신라어로 발전되어 서로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지면서 제각기 발전했을 것으로 본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부터는 경주를 중심으로 언어가 통일되는 양상을 보였다. 고려가 건국되면서 언어의 중심지는 개성으로 옮겨갔다. 고구려어의 흔적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크게 보아 이언어는 신라어를 계승해서 발전했다. 조선이 건국됨녀서 언어의 중심이 직므이 서울로 옮겨졌으나 언어의 모습이 크케 달라지지는 않았따. 그래서 고려 건국부터 16세기 말까지의 국어를 중세국어라 한다. 중세 국어는 훈민정음 창제를 전후로 전기 중세국어, 후기 중세국어로 나뉜다. 17세기부터는 음운, 어휘, 문법에서 앞 시대의 국어와는 꽤 다른 못브을 보인다. 모음 체계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여러 문법 현상들이 소멸하기도 하고새로 생겨나기도 했다. 따라서 17세기 초기부터 19세기 말까지의 국어를 근대 국어라 한다. 그리고 개화기를 거쳐 20세기 이후 지금의 국어를 현대 국어라 한다.
음운체계가 역사적으로 변화한 과정을 자음체계, 모음체계, 그리고 운소체계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고대 국어인 10세기까지의 음운 체계를 엿볼 수 있는 것은 국어의 전통 한자음과 고유명사에 대한 한자 차자표기이다. 당시 한어의 세 자음 체계가 우리말에서 두 단계로 대응이 되고 있어 경음 계열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세 국어에 이르러 예사소리, 된소리, 거센소리의 세 계열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세국어에는 현대국어와는 달리 마찰음이 더 있었으나 모두 소멸했다. 중세 국어에 사용되었던 음소 중에서 가장 먼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순경음 ‘ㅂ’이었다. 이 문자는 1450년대에 소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음소는 일반적으로 반모음 ㅗ/ㅜ로 바뀌었고, 이 뒤에 모음 ‘’가 오면 이들은 ‘ㅗ’로 바뀌고, ‘ㅡ’가 있으면 이들은 ‘ㅜ’로 바뀌다. 그리고 ‘ㅣ’모음이 이어진 ㅣ의 경우에는 가 없어졌다. 은 1480년경에 소멸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일반저으로 으로 변화하지만, ㅆ이나 ㅋ으로 변화한 경우도 있다. 은 16세기 말에 소멸되었다. 의 소멸은 모음 ㅣ나 반모음ㅣ앞에서 먼저 소멸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ㅈ으로 변화한 것들도 있다. 이렇게 하여 15세기 국어에서 22자음 체계이던 것이 16세기 말에 이르러, 현대 국어와 같은, 19자음 체계가 형성되었다.
다음으로 15세기 국어의 모음체계를 살펴보자. 먼저 중세국어의 단모음에는 /ㅣ,ㅡ,ㅓ,ㅏ,ㅜ,ㅗ,/가 있었다. 훈민정음은 설, 구, 성의 세가지 기준으로 모음을 분류한다. 15세기 국어 중모음은 현대 국어와 다른 점이 있는데, 첫째, 이중모음에 /ㅑ,ㅕ,ㅛ,ㅠ,ㅘ,ㅝ/와 같은 상승적 이중 모음뿐만 아니라, /,ㅐ,ㅔ,ㅚ,ㅟ,ㅢ/와 같은 하강적 이중 모음도 있었다. 둘째는 이중 모음뿐만 아니라 삼중 모음도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역사적으로 소멸한다. 그래서 현대국어에서는 상승적 이중모음만 존재한다. 15세기 이후의 주요한 모음 체계의 변화는 의 소멸과 하강적 이중모음의 단모음화로 요약된다. 는 비어두 음절에서는 15세기에 이미 ㅡ로 바뀌기 시작하여 16세기 후반에 그 변화가 완성되었다. 어두 음절의 은 16세기 말부터 완만하게 없어지다가 18세기 후반에 완전히 국어 음운 체계에서 사라졌다. 따라서 국어는 18세기 말에 6모음 체계가 형성되었다. ‘’의 소멸에 이어 하강적 이중 모음들이 단모음으로 바뀌어 현대 국어의 모음 체계가 이루어졌다. 이 변화는 가 ㅏ로 변함에 따라 >ㅐ의 변화가 일어나고, 그 이후에 ㅐ,ㅔ가 단모음화 하였다. 그런데 이중 모음이 단모음으로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표기는 동일했기 때문에 단모음화의 정확한 시기는 알기가 어려우나, 대체로 가 소멸된 이후 즉 18세기 말로 추정된다. 그 이후 하강적 이중모음 /ㅚ,ㅟ/도 단모음으로 변화해서 19세기 이후에 현대국어와 같은 10모음 체계가 형성되었다.
중세 국어는 성조 언어였다. 성조는 글자 왼쪽에 점을 찍는 방점으로 표시하였다. 15세기 문헌에서 형태소 내부의 성조는 명사와 동사가 조금 다르다. 명사 형태소 내부의 성조는 대부분 고정적이어서 성조에 의해 의미가 분화되는 반면, 동사의 어간 형태소는 뒤에 오는 어미에 따라 유동적인 것이 있다. 성조는 16세기 중엽 이후 흔들리기 시작하여, 방점 표기가 없는 문헌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17세기 이후에는 모든 문헌에서 방점 표기가 사라졌기 때문에 방점이 없어진 17세기에 성조가 없어졌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