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자유시에 대한 기존 논의 검토와 문제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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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자유시에 대한 기존 논의 검토와 문제제기
1. 기존 논의 검토
자유시라고 하면 기존의 정형시와는 변별되는 것으로 새로운 시의 형태가 도래했음을 알리면서 동시에 근대와 현대의 구분기점에 대한 논의가 전개될 때 주로 등장하는 용어이다. 오세영은 『한국 현대시사의 쟁점』에서 근대시현대시의 개념과 기점에 대해 간략한 정리를 한 바 있다. 그는 근대문학이라는 문학사적 용어가 학계의 주된 논점이었고, 그 시기를 구분하려고 하는 ‘근대문학의 기점론’이 여러 연구자들을 통해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말한다. 그는 논자에 따라 많은 편차를 보여주고 있는 기점문제를 제기하면서 18세기 기점설에 자신의 의견을 보탠다고 언급한다.
그에 앞서 오세영은 서양에서 말하는 근대와 현대의 개념부터 정립하고 나서 한국에서 통용되는 근대와 현대의 개념을 검토하고, 아울러 자신이 왜 18세기에 근대문학의 기점을 삼는지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 근거로는 첫째는 자본주의 경제로의 이행을 알려주는 시기라는 것, 둘째는 사회경제상의 토대가 변하게 되면서 시대이념이나 민중의식 및 문학 예술 등의 전반적인 상황이 함께 변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18세기의 문학에 이미 근대성이 구현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는 우리 시문학사에서 근대시는 18세기의 사설시조에서 비롯된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그는 사설시조가 기존의 문학사에서 유래가 없는 혁신적 자유시형과 자유율을 지향했다는 것, 산문적 진술을 원용하면서 언어를 민중적인 것으로 해방시켰다는 것, 작품에 표현된 이념적 측면이 시대 비판이나 인간성 해방 등을 노래했다는 것, 인간의 삶을 조명하는 사실주의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우리의 근대시가 시조양식의 해체로 대두한 사설시조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여러 실험적인 시들이 자유시로 완성되는 과정 속에서 우리 근대문학의 자생적인 위치에 사설시조를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현대시의 기점은 1926~7년경 정지용 등이 이미지즘 계열의 모더니즘시를 발표한 이후로 잡고 있으며, 식민지 시대라는 특수한 역사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 시운동의 역동성을 증명해 주는 여러 계열의 시인들과 문학파들을 통해 서구 모더니즘을 수용하는 데에 많은 의의와 한계를 안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그는 모더니즘의 출현을 한국 현대시의 기점으로 파악하는 데에 주저할 것이 없는 중대한 사건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처럼 본격적인 현대시사를 정리하기에 앞서 총론에서 이 같이 시기구분과 대상에 대한 개념을 짚어보는 것은 우리가 근대와 현대를 혼용하고, 자유시의 등장시기를 모호하게 잡고 있는 데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한다. 이는 자유시가 언제 형성되었는지, 어떤 작가의 작품을 자유시의 효시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도 맞닿아 있는 것이다.
같은 책에서 이숭원은 초기 자유시 형성의 몇 가지 층위에 대해서 논하면서, 기존에 자유시의 효시로 평가받았던 주요한의 불놀이의 위상이 허구임을 지적한다. 그는 『소년』, 『청춘』, 『학지광』, 『태서문예신보』 등으로 자유시 형성의 기점이 소급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개화기에 나타난 정형성의 변화양상에서 자유시 형성의 기본 모티프를 검출해야 한다는 의견 등을 적극 수렴하면서도 자유시의 정착을 거론할 때에는 형식이나 언어 면에서의 새로움 뿐만 아니라 정서나 인식의 측면에서도 새로운 요소가 검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형성에서의 이탈이 곧 형식의 새로움이라든가 자유로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자유시로 가는 과정은 하나의 구속에서 벗어나 새로운 구속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파악하고 있다. 또한 그는 ‘개화가사→창가→신체시→자유시’와 같은 발전도식을 거부하고 이들 형식들이 직선적 혹은 계기적으로 계승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숭원은 역사적 특수성을 고려하였을 때 우리나라가 일본 자유시에 분명 영향을 받았고, 자유시가 형성되고 정착되는 과정에서 당대 발표되었던 근대적인 잡지들의 발표지면이 초기 자유시 제작자들에게 새로운 인식을 주고 모방의 충동을 유인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전통적인 가창의 형태에서 벗어나 시가 개체의 독자성을 확보해 나가면서 노래로부터 분리되고 또한 자기세계를 추구하는 전문적인 시인이 등장하게 되는 등 자유시로의 과정에는 외부의 자극뿐만 아니라 내부의 역량이 함께 영향을 끼친다.
이숭원은 당시의 상황을 내면화한 자유시 형태의 작품들에 주목하면서 『학지광』4호(1915)에 실린 소월 최승구의 벨지엄의 勇士와 『청춘』9호(1917)에 실린 현상윤의 웅커리로서 등의 작품을 열거한다. 또한 『태서문예신보』9호(1918)에 실린 김억의 봄은 간다나 『학우』창간호(1919)에 실린 주요한의 시편들을 정제된 형태미를 띤 자유시로 간주한다. 물론 위에 거론된 작품들이 일본 근대시를 번안했거나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자신의 정서를 자신의 말로 드러내려 했다는 것에서 내부적 역량이 한 축으로 작용하였으며, 이러한 사실이 바로 자유시의 정착에 의미 있는 근거로 작용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자유시는 흔히 근대적 변모의 단계에서 추구되던 개체의 해방과 자유의 신장이 문학 형태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말하자면 복잡한 삶의 양태와 복잡한 생활감정을 표현하기에는 기존의 정해진 틀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보편화될 때 비로소 자유시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자유시의 정착이 상당히 짧은 시간에 이뤄졌고, 자유시의 이념이 실현되기 힘든 현실 속에 자유시를 생산해내는 아이러니를 포함하고 있다 하겠다.
근대 자유시에 대한 구체적인 문제제기는 정우택의 『한국 근대 자유시의 이념과 형성』(소명출판, 2004)과 『한국 근대시인의 영혼과 형식』(깊은샘, 2004)이 있다. 그는 한국 근대시의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용어로 ‘개인’을 꼽았고, 이러한 개인의 위상과 의미를 통해 근대 자유시의 형성과정을 진단하였다. 그에 따르면 근대 자유시의 형성은 자유율의 실현이라는 형식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으며 이념적, 정서적, 문화 제도적 차원의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와 얽혀 있다. 자유시는 개인의 사상과 감정을 개성적인 목소리와 리듬으로 자유롭게 표출하는 양식이며, 근대시는 근대의 기획과 근대 극복을 동시에 내포하는 정신과 이념의 산물인 것이다. 여기서 주된 관점은 근대성일 텐데, 근대성을 논의할 때에는 주체 혹은 자아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근대적 개인으로서의 주체, 즉 근대적 인간은 기존의 전통과 권위,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자기의 이성과 의지로써 자유롭게 자신을 인식하려는 주체이다. 여기서 독자적인 개성, 자기 정체성, 개인의 가치 및 자유의 문제가 거론되는 것이다. 이는 신문학운동 내지 자유시 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는 특히 애국계몽기와 1910년대를 거치면서 ‘개인’의 발견과 계몽의 기획이라는 관점에서 자유시는 근대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기존의 논의가 음수율적 정형성으로부터의 탈피나 계몽주의로부터 벗어난 리리시즘의 표출, 가(歌)에서 시(詩)가 분리되는 과정으로 근대 자유시의 형성을 단조롭게 짚어 내려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러한 논의들이 근대 자유시 확립과정을 설명하는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총체적인 면모를 밝히는 데에는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근대 자유시가 형성되는 과정을 형식적 차원으로 파악하는 데에 그치거나 근대 자유시의 역동적인 면모를 단순화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자유시는 취약한 근대 주체가 근대적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과정에서 발생하였으며, 사회역사적인 분열과 갈등 속에서 형식을 부여함으로써 근대 주체로서의 자립을 기도하는 것이 근대 자유시가 형성된 내적 동인(動因)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근대 자유시의 형성과정은 현실을 체계적으로 통찰한 조직적사상적 역량을 구비하지 못했던 초기 근대 지식인들이 내적 갈등과 분열된 인식, 감수성을 통어할 수 있는 양식을 확립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정우택은 기존의 논의 대부분이 개화기의 창가나 최남선의 ‘신체시(新體詩)’를 논하다가 곧바로 1918년 『태서문예신보』로 건너뛰는 형태를 띠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편 1910년대의 시문학사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여러 가지 실증적인 작업이 꾸려지기도 하는데, 특히 『학지광』의 자료 발굴과 분석, 『청춘』의 시문학적 의의에 대한 분석, 국외 신문매체에 실린 작품들 및 1910년대 개별 시인에 대한 연구로까지 그 범위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근대시, 자유시의 형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통사적으로 체계화하지 못 했거나 일부분을 특화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 기존 논의의 한계라 하겠다. 그는 근대 자유시 형성에 대한 연구를 다음과 같이 유형별로 구분하여 그 경향을 살펴보았다.
우선 형태론적 접근 방법이다. 이는 자유시의 본질적 의의를 ‘경직된 음수율적 정형률로부터의 자유’로 규정하고 접근하는 방법으로 자수율의 제한을 벗어난 창가로부터 자유시가 형성되었다는 논의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자유시 또는 신시의 형성을 창가, 가사, 신시의 선후 전개과정으로 해명하고자 하는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것이 ‘창가→신시’의 전개과정과 분류방식이다. 이에 조지훈, 정한모, 김용직 등은 ‘개화기 가사→창가→신시’의 3분법을 제시하여 각각 문체의 변화나 창가의 분절현상 등에 주목하여 자유시의 특징과 구분요소에 대해 좀 더 밀착된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특이하게 송민호는 ‘개화시→개화가사→창가→신시’의 전개과정과 분류방식을 제안하였다. 이는 개화가사를 다시 개화시와 개화가사로 세분화한 것이다. 이처럼 기존의 논의들은 근대 자유시 형성과정을 율격(metre), 특히 음수율에 편중해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근대 자유시는 율격의 차원에서 자유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유시의 내재율은 음성적 자질 외에도 어법, 문체, 감정과 기분, 의식과 형태, 이미지 등을 통괄하는 내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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