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식민지하 좌익의 역사인식과 국가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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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문과학 식민지하 좌익의 역사인식과 국가의식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국사학사
식민지하, 좌익의 역사인식과 국가의식
□ 방기중, 맑스주의 역사이론과 한국사인식 (1992)
□ 방기중, 백남운 (1994)
□ 도진순, 백남운의 지적 성숙과 연합적 민주주의 (1995)
< 백 남 운 >
1. 머리말
식민지하, 좌익의 역사인식과 국가의식을 체계화하는 과정으로 백남운의 성장배경과 사상 형성과정, 해방 후에 이르는 그의 학문적 성과와 활동전반에 대해 조사 정리해보겠다. 물론 백남운을 좌익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학자와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역할과 지위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연구가 반드시 필요한 작업임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특히 맑스주의에 기초한 그의 역사인식과 연합성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국가건설론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하겠다.
2. 성장배경
백남운은 1894년 2월 전북 고창군 출생으로 집안은 대대로 주자학 연마와 예학적 생활관을 중시한 노론 계열의 향반가였고, 부친 역시 노론 기호학파의 학통을 이은 유생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소년기를 보낸 백남운은 봉건적 주자가례와 한학을 배우며 성장하였다. 백남운이 봉건적 세계관을 완전히 벗어나 근대적 세계관을 형성하게 된 것은 1912년 수원농림학교에 진학하면서였다. 일제 강점 이후 모순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조선 농업의 기본문제와 민족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학문에 뜻을 품은 것 역시 이때였다. 그는 1915년 졸업과 함께 강화공립보통학교에 부임하여 2년간 교편생활을 하였으며, 1918년 사직하고 그해 10월 일본유학의 길에 올랐다.
3. 동경유학과 학문관의 확립
1919년 3월에 백남운은 동경고등상업학교(1920년부터 동경상과대학-6년제 개편) 입학하였다. 6년에 걸친 이 유학기간은 그의 사상적 토대와 학문세계의 골격이 형성되는 시기였다. 백남운이 유학한 1920년대는 일본과 조선을 막론하고 민족, 사상운동이 분출되는 격동의 시기였다. 그런데 이 시기 백남운은 민족운동과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며 학문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동경상대는 일본 역사학파 경제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자유주의 민주주의 사조와 사회개조를 주장하는 다이쇼 민주주의 운동(大正 Democracy) 의 산실이기도 하였다. 백남운은 역사학파 경제학 교수들의 특수성과 한국사회 정체성론 즉 일본 민족주의적 성향에 대한 비판을 모색하는 한편 사회주의 사상을 수용하여 맑스주의적 경제사관의 토대를 닦았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식민지적조선적 특질을 겪지 않은, 보편적 교리를 소화하는 입문적 단계였다.
1925년 백남운은 연희전문학교 상과의 전임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동경유학생활로 준비된 학문적 토대와 안정된 생활을 기반으로 활발한 저술활동과 교육 및 학회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맑스주의 원전을 두루 섭렵하며 유물변증법과 유물사관에 대한 이해를 심화해 나갔고 이를 한국사 연구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 문제에 관해 많은 고민을 하였다. 이처럼 1920년대 후반은 그의 학문과 사상이 확립되는 시기였다.
4. 맑스주의 역사이론과 한국사 인식
1) 사적유물론 인식의 특질
1920년대 후반 ‘조선경제사’의 체계화를 위한 천착과 방법론적 검토를 거친 뒤 백남운은 1933년 『조선사회경제사(朝鮮社會經濟史)』(東京, 改造社)를 출간하였다. 그가 설정한 과제는 크게 세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이었다. 하나는 조선사를 계급투쟁사로 체계화한다는 사적유물론의 전면적 전개, 다른 하나는 일제 관학 및 조선인 특수문화사관의 한국사인식 비판, 마지막 하나는 계급투쟁사의 첫째 작업으로 원시사회로부터 고대국가 성립에 이르기까지 조선사의 기점(起點)을 해명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