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길 시인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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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김종길 시인에 대하여
1. 김종길의 생애와 활동
김종길은 1926년 5월, 경북 안동군 임동면에서 부친 김문대 씨와 모친 이영희 씨( 의 동인이자 외숙인 이병갑의 누님)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나, 작가 이문열의 가문(동네)으로 부촌인 석보면 원리동에서 자란다. 그는 어린 5세 때부터 증조부에게 한문을 배웠다. “요즘 아이들이 취미삼아 게임에 빠져들듯이 난 한시에 흥미를 느꼈다”는 김 시인은 초등학교 시절 동네 어르신들이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답했을 정도로 문인의 꿈은 한결같았다. -2009년 7월 7일 문화저널21, 김종길의 인터뷰 중에서
한학에 밝은 증조부는 김종길이 한학에 젖기를 원했으나, 외가는 신교육을 베풀어 한학과 신학문 양자를 다 접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1928년) 어머니를 여의고 증조부, 증조모, 조모 세 노인이 그를 지극정성으로 돌보았다.
1934년 4월에 진보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한 김종길은 남달리 글짓기, 특히 운문 짓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1940년 대구사범대학교 심상과에 입학한다. 당시 대구사범대는 학생들의 사상문제로 일인들의 감시가 심했던 곳이었다. 이때 사상 문제로 고민하던 청년 김종길은 혼자서 글짓기, 독서, 동서양 시, 그 중에서도 폴 발레리 20세기 전반 프랑스의 시인·비평가·사상가. 말라르메의 전통을 확립하고 재건, 상징시의 정점을 이뤘다. 20세기 최대 산문가의 하나로 꼽힌다. 저서는《매혹》,《구시장》,《잡기장》,《영혼과 무용》,《외팔리노스》등이다. -두산백과
를 특히 공부한다. 무척 난해했지만, 일역본 발레리 전집을 독파하며 그는 본격적으로 문학에 눈을 뜨게 된다. 같은 해 동급생이었던 이근우(李根雨), 이상한(李相漢)등과 동인지 『은하대(銀河帶)』를 만들었다.
1945년 졸업 후 그해 9월까지 안동서부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11월에 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양주동, 김광섭, 변영로, 이하윤 등 당대 최고 학자들에게 배운다. 해방 직후, 외가에 가서 시인이었던 외삼촌 이병갑 우리 외가가 이문열과 같은 가문으로 둘째 외삼촌께서 이병갑 선생님이라고, 30년대《시학》동인을 하신 분이셨습니다. 서른둘에 돌아가셨습니다. 또한 외사촌 형이 혜화전문을 다녔습니다. 외가에 가면 당시의《문장》지를 읽을 수 있었고 서정주의『화사집』, 유치환의『청마시초』, 정지용의 시집 등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주변 환경이 그래서인지 우리 현대시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2007년 8월 12일 문학, 김종길의 인터뷰 중에서,
의 서재에서 우리말로 된 『문장』, 『시학』등의 문학잡지와 『청마시초』, 『화사집』, 정지용의 시집 등의 시집을 접하고 정독하여 우리말의 감각을 익히고 우리시의 우수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보들레르, 투르게니에프 19세기 러시아의 작가이자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3대 거장이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자유주의 인텔리겐치아 출신으로, 독일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뒤, 알렉산드르 푸시킨 , 니콜라이 고골 등 대표적인 러시아 진보 지식인들을 만난 후 서구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작인 , 등의 소설은 세련된 필체와 묘사로 유명하다. 중년기 이 후에는 로마노프 왕조의 구체제에 반대하는 소설을 다수 썼다.
의 영역본에도 흥미를 느낀다.
이듬해인 1946년 몇몇의 급우들과 이라는 동인지를 만드는가 하면, 5월에는 을 제작하기도 한 『주간소학생』지의 동시 현상모집에 응모한 동시「바다로 간 나비」가 입선하게 되면서, 박두진, 조지훈 등을 알게 된다. 4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문(門)」이 당선함으로써 일찍이 등단하여 당시 경향신문 주필이면서 시부문의 선자(選者)였던 정지용으로부터 상을 받았다.
김종길은 영문학에 흥미를 느껴 47년 8월 영시, 시론에 밝다는 선생을 찾아 고려대 2학년으로 편입한다. ……지금도 부끄러운 객기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그가 동대 국문과를 떠나면서 무애 선생의 《용비어천가》 연구 내용인 ‘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여 당신께 슬며시 올린다. 게다가 ‘보탬이 되시거든 활용하시기 바랍니다’고 부기했다 하니 그 당시의 건방진 치기 만만 또한 일품이었다고 하겠다. - 김강태, 커버스토리, 우리 시대 시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다, 1996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