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감상문 하나님이 함께하신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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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독서 감상문 하나님이 함께하신 다윗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하나님이 함께하신 ‘다윗’
‘사랑받는 자’ 라는 뜻을 가진 ‘다윗’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이새의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난다. 사물엘 상 16장 1절부터 열왕기상 2장 12절 까지에 다윗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다윗은 아버지의 명령으로 양을 지키고 있을 때, 덤벼드는 사자나 곰을 쳐 죽여 임무에 대한 충실성과 용기를실증했다. 사울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베들레헴에 보내어 사울의 뒤를 이를 자로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였다. 여기서 기름 붓게 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셔서 그 후에 후계자로 택하셨음을 뜻한다. 이것은 다윗의 인생에 있어서 제 1의 전기이며,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크게 임하셨다. 그러나, 그는 일상자기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했으며, 우울병에 걸려 광적으로 발작을 일으키고는 했다. 그래서 사울이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다윗을 불러다가 음악으로 위안을 받고, 그의 인품도 또한 사랑하여 자기의 병기 드는 자로 삼았다. 이렇게 비롯된 다윗의 새 일은 그에게 대하여 좋은 훈련이기도 하였다. 그는 군사와 정치를 배우고, 유능한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궁중 생활의 좋은 면 뿐만 아니라 나쁜 면도 관찰했다. 그러나, 아직 다윗은 상루 옆에 늘 붙어 있지 않고 사울의 병증세가 나을 때는 베들레헴에 돌아와 양을 쳤다. 사울 왕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는 많은 재물과 딸을 주고, 그 아비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하게하겠다고 현상을 걸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모욕을 제거해 주시리라 확신하고, 이렇게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블레셋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다. 다윗은 사울의 만류를 뿌리치고 그의 결심을 표명하니, 사울은그에게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축복하고, 자기 군복과 놋투구, 그리고 갑옷을 입히고 칼을 채웠으나, 그는 이를 사양했다. 골리앗은 무거운 투구를 입고 있어 동작이 둔하여 접근하지 않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다윗은 매끄러운 돌다섯 개와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을 대적하러 나갔다. 하나님에게 대한 단순한 믿음을 가지고 대적에게 향한 것이다. 그는 골리앗의 머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고, 갑주는 자기 장막에, 칼은 성막에 바쳤다.다윗이 골리앗을 향하여 나갈 때, 또 승리자로서 돌아왔을 때, 그가 누구 아들인가라는 질문은 다윗의 가계에 대한 사울의 관심에 관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사울은 골리앗을 죽이는 자에게는 딸을 주고, 그 아비의 집은 면세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사울은 다윗이 자기 사위로서 부끄러울 것 없는 가문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골리앗에 승리한 것은 다윗 인생의 제 2의 전기였다. 이때부터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깊은 우정 관계를 맺게 되었다. 요나단은 그를 자기 생명같이 아끼고 사랑했다. 이 두 이야기를 조화시키려는 기도가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행해졌으나, 이렇다할 만족을 얻지 못했다. 여하튼 다윗은 그때부터 궁중에 있게 되고, 자기의 집으로 가는 것을 왕은 허락하지 않았다. 요나단은 그에게 겉옷˙군복˙칼˙활˙띠 등을 주었다. 다윗이 사울의 시키는 모든 일을 지혜롭게 잘 처리하니 왕은 그를 군대의 장으로 삼았다. 이렇게 그가 궁중에서 지위는얻었지만, 그의 명성때문에 사울의 질투를 받았다. 이스라엘 인들은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뛰놀며 화창했다. 이 말을 들은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주목하게 되었다. 나라를 자기보다 나은 자의 손에 주셨다는 사무엘의 예언이 다윗에게 실현된다고 본 사울은, 그것을 방해하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했다. 즉, 왕 자신을 위해 수금을 타는 다윗에게 창을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이 피하여 실패했다. 사울은 그를 두려워하여 멀리하기 위해 천부장으로 삼았다(삼상 18:13). 온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은 다윗을 사랑하였다.사울은 다윗의 아내로 주겠다던 맏딸 메랍을 아드리엘이라는 자에게 주어 그 약속을어겼다(삼상 18:17-19). 또 사울은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이용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블레셋 사람의 양피 100을 가져오면 딸을 주겠다고 말했다. 다윗도 미갈을사랑했으므로 그는 블레셋 사람 200을 죽이고 그 양피를 왕에게 바치고 사위가 되었다 다윗의 평판이 점점 높아짐에 따라 사울의 두려움도 커졌다. 이렇게 되니 다윗을 없애려는 살해 의도는 공공연하게 되었다. 사울에게 악신이 접하자, 수금타는 다윗에게 그는 또 창을 던졌으나, 이번에도 이를 피한 다윗은 그 밤에 집으로 도망쳐 갔다. 그리고 아내 미갈의 도움으로 창문에서 달아 내리움을 받아 성밖으로 도망쳤다(삼상 19:17).다윗은 그 길로 사무엘을 찾아 라마 땅 나욧으로 갔으나, 추격의 손길이 그 곳까지 미치었다(삼상 19:18-22). 그리하여 다윗은 요나단에게로 도망쳤다. 요나단은 다윗을 에셀 바위에 숨겨두고, 월삭제의 축연에 나가 다윗을 변명해 주다가 아버지 사울에게죽을 뻔 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놉의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가서 왕명이라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먹을 것과 칼을 얻었다. 여기서 다윗의 옛날 신앙과 용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그 곳에서 다윗은 사울의 대적인 아기스에게 보호를 구하여 가드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다윗을 사모하여 부하로 따랐다. 그 중에는 놉의 제사장 아비아달과 선지자 갓도 있었으므로 신앙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 다윗은 그일라의 위급함을 듣자, 자신의 위험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구출했으나, 그는 배신하여 다윗을 사울에게 내어주려고 하였다. 그 후에도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어 유대를 떠나 블레셋(가드)으로 다시 건너가 아기스 왕에게로 갔다. 그는 시글락이라는 한 성읍을 얻어 거기서 살았다. 그는 생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하여도 있지만) 아멜렉을 쳐서 우양을 노략질하고도 아기스에게는 유다를 쳤다고 거짓말을 함으로써 또 실수를 했다. 거기서 그는 1년 4개월지냈다블레셋사람과사울이 길보아에서 싸울 때에, 다윗은 다행히 참전을 면했다. 이 전쟁에서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그 부자를 위해 애가를 지었다.
사울의 죽음으로 다윗은 유대 사람에게 왕으로 추대되어 헤브론에서 살면서 유다를 다스렸다 때에 그의 나이는 30세였다. 그리고 그 후 이스보셋의 사망으로 다윗은 이스라엘 12지파 전체로부터 왕으로 추대를 받음과 동시에, 왕국 확립 사업에 착수하였다. 당시 이스라엘의 성읍 몇 개는 블레셋과 가나안 사람에게 빼앗겼었다. 다윗은 우선 여부스사람이 점령하고 있던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이것을 수도로 하였다. 이 도성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경계에 있으므로 양자의 반목을 완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 도성이 가나안 사람의 손에서 해방된 것은 남북의 교통을 편리하게 하고, 왕국의 결합을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 후 블레셋 사람이 두번씩이나 침입했으나, 다윗에게 완패하여 왕국은 평정되었다. 나라가 안정되자 다윗은 엘리 제사장 때에 블레셋에게 빼앗겨 기럇여아림에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왔다(삼하 6장).이때다윗은소를잡고 전 국민과 더불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노래 부르며 춤추었다. 다음에는 예배 의식을 성대히 정하고(대상 15,16장)웅장한성전건축을 계획하였다(삼하 7장,대상17장).나라의안전을공고히 하기 위하여 또 우상 종교로부터 더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계속적으로 주변 제국과 싸워 이를 정복하여(삼하8장, 10장, 12:26- 31) 그 국경은 옛날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까지 확장되었다(창 15:18). 또한 다윗은 사울의 유족을 찾아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왕자처럼 후대하여 옛 친구의 은혜를 갚는 것도 잊지 않았다(삼하 9:9-13). 다윗 왕권이 욱일승천의 기세로 융성하였으나, 한 큰 범죄로 그의 영혼은 급전직하 흑암의 무저갱으로 떨어지게되었고, 가정은 고통 당하게 되었다. 즉, 그가 헷 사람 우리아에 대해 큰 죄를 범했는데, 이것은 대암몬 전쟁때의 일이다. 다윗이 왕궁에서 낮잠을 자다 깨어나 충장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의 목욕하는 것을 보고 음욕이 일어 불러다가 간음하여 잉태케했다. 그는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일선에서 우리아를 소환시켜 그 아내와 동침시키려고 했으나, 충성스러운 우리아는 일선 장병을 생각하고 왕의 귀가 권유를 사양했다. 다윗은 음모가 실패하자 요압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아를 사지에 몰아넣도록 하여 죽게 했다. 그리고 밧세바를 아내로 취하였다.하나님께서는다윗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비유를 들어 죄를 핑계치 못하게 한 다음, 단도직입적으로 책망케했다. 이에다윗은즉시진심으로 회개하였다.하나님의징계는일부는 직접, 일부는 이후의 사건 중에 당연한 결과로써 나타났다. 불의의 씨인 아들이 죽고불법적인 욕정과 복수는 그의 가족을 파괴했다. 불효한 왕자의 야심은 내란으로까지 발전하고 이때의여파는그 후 다시 한번 세바의 반역으로 나타났다 .즉,이복남매암논이 다말을 욕보이고, 다말의 오빠 압살롬은 암몬을 죽이고 도망쳤다. 그 후 부왕의 용서를 받고 귀국한 압살롬은 인심을 얻어 왕인 아비에 반역했므로, 다윗은 예루살렘을 탈출하여 피난생활을 하게 되었고,압살롬은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그러나 다윗 군과 압살롬의 군이 싸울 때에 압살롬은 상수리나무에 머리가 걸려 살해되었다. 내란이 일단 끝나자, 다윗은 민심을 잘 수습하지 못한 채 환궁하였다. 국권이 회복되자,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병원수 증강을 위해 인구 조사를 하므로써 인본주의, 교만죄에 걸려 하나님의 징계를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갓을 통하여 7년 흉년, 3개월 대적에게 쫓김, 전국에3일간의 온역, 이 세 가지 중에서 택일하라고 할 때 그는 하나님께 징계 받기를 원해을 택했다. 그 결과 죽은 자가 7만 명에 달했다. 다윗의 치세는 솔로몬의 즉위 확정, 요압과 시므이에 대한 처벌 및 바실래의 후손에 대한 후대를 유언함으로써 끝났다. 그는 40년 치리했는데, 7년 반은 헤브론에서, 33년은 예루살렘에서 하고, 71세에 사망했다. 결론적으로 다윗은 일찍부터 이스라엘의 가인)으로서 명성을 떨쳤다. 히브리 전설에서는 시편의 태반은 상술한 바와 같이 다윗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음악을 애호한 것, 수금을 잘 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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