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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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서평
「이동원 목사의 설교 세계」서평
이동원 목사의 성장배경을 통해 그가 어떤 배경 속에 자라오게 되었는지 보면서 놀랐다. 평범하지 않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이끌어 오셨는지 보게 되니 말이다. 환경을 탓하며 어긋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준비되어갔던 것이 지금의 이동원 목사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설교자로서 준비되어야 할 부분 중에 인문고전을 읽는 것과 사색하는 부분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에 대한 투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신학을 공부하면서 앞으로 그것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함이 개탄스럽다. 나의 지난 20대를 돌아보면서 왜 그 시절에 책을 읽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가 남는다.
또한 이동원 목사가 신학대학에 입학했지만 근본주의 신학에 의욕을 잃어버리고 중간에 그만두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에 한국에는 제대로 된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없었을 것이기에 학교를 그만 두고 목회의 현장에서 목회 수업을 받으며 현장 경험을 했다는 것이 지혜롭게 여겨진다. 잘못된 신학을 배우고 그것이 자리 잡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현재는 한국에 좋은 교수진들이 많기 때문에 얼마든지 신학을 바르게 공부할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하다.
이후 소개되는 이동원 목사의 미국 유학과 이민 목회 그리고 지구촌교회 개척 이야기는 그가 가는 사역지마다 큰 부흥을 경험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 가운데 대형교회로 성장하게 되었음을 고백하듯이 무소유 정신의 목회철학을 실천해 왔다고 한다. 자신이 이뤄냈다고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주위에서는 그 교회의 성장에 대해 목사의 설교 능력을 최상의 요인으로 꼽는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정년도 단축하고 조기 은퇴하여 후임목사를 세웠다는 것은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훌륭하고 용기있는 결정이라 할 수 있겠다. 부끄럽지만 어떤 목사들은 교회 정관을 개정해 조금이라도 더 담임목회를 이어가려고 하는 판국에 말이다. 목회의 철학을 갖고 그것을 자신의 삶으로 실천하는 정직함과 우직함이라면 참으로 그 목회자가 얼마나 진실한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겸손히 나아가는 선배 목회자로서, 한 명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이 되는 분이다. 성경 속 위대한 인물들도, 현실의 기라성 같은 목회자들도 그 끝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나 또한 새내기 목회 후보생으로서 이동원 목사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끝까지 겸손한 자가 되어 그 부르심의 자리에서 순종하고 복종하며 종과 같이 쓰임 받다 가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야겠다.
저자가 입이 마르지 않도록 칭찬하는 이동원 목사도 설교의 변천단계가 있었다고 한다. 처음 10년 동안은 다른 사람의 설교를 모방하는 수준이었다고 하니 스스로도 부끄럽게 여겨지는 설교자로서 희망이 생긴다. 그는 신학교에서 수학하면서 강해설교가 중요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로이드 존스, 아더핑크, 스펄전을 통해 설교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한다. 로이드 존스를 통해 본문에 근거한 설교를 배우게 되고, 아더핑크를 통해 성경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설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스펄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복음으로 연결되는 설교를 하게 된다. 나 또한 이러한 설교의 대가들이 말하는 이러한 내용들을 귀담아 들어야 하겠다. 그들이 그런 설교를 하기 까지 여러 배경 지식들이 쌓였고, 가지고 있는 능력도 다르겠지만, 그 원리들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발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변천과정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자신이 보다 나은 설교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이다. 자신이 배운 것을 가지고 시도해보고 그것이 잘못되었거나 부족하다고 여겨지면 다시 그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노력한 것이다. 나 또한 최근까지 강해설교가 무조건 최고라고 생각해오며 그렇지 못한 설교를 들을 때면 비판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아직 배우는 입장에서 그런 편협한 비판을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설교에 은혜 받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동원 목사의 설교가 제목설교에서 본문 중심의 강해 설교로 변화한 초반에는 아직까지 설교의 목적과 청중에 대한 적용 부분이 많이 다뤄지지 않는 상태였다고 한다. 이후에 본문 설명과 적용이 절반의 비율로 나타난다고 했다. 이처럼 설교에 있어서 적용의 부분이 중요함을 이야기 해준다. 그것이 강해의 진정한 의미라고 말한다. 처음에 강해설교를 이해할 때 본문을 중심으로 본문이 성경의 전체적인 흐름과 전후문맥 안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분명한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그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상당부분 본문설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만큼 적용의 부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롭게 도전받는다. 아무리 중요한 본문이고 내용일지라도 청중과 상관없는 이야기가 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칼 바르트가 주장했듯이 적용은 설교자의 역할이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로이드 존스의 주장― “설교자는 반드시 그들이 말하고 있는 내용을 청중에게 적용시켜야 한다” ―에 동의한다. 1~3학년 유년부 아이들을 담당하고 있는 전도사로서 적용없는 설교를 한다면 그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 성경의 진리를 알려준다 한들 아이들이 그것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생각할까? 매주 설교를 준비하면서 가장 고심하는 부분이 바로 이 적용의 부분이다. 본문은 분명한 진리를 전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전달할지를 그리고 어떻게 적용시켜줄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강해설교의 목적이 적용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만큼 적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동원 목사의 설교 변천 과정을 보아도 결국 청중을 염두에 두지 않는 설교는 진정한 의미에서 강해설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처럼 적용의 중요성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앞으로 적용을 잘 하기 위해 본문 분석만큼이나 청중분석에도 동일한 힘을 쏟아야겠다.
다음으로 책별 연속 강해설교에서 시리즈별 강해설교로 변화가 시도되었다고 한다. 강해설교라고 하면 당연히 성경의 한 권을 정해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편견이라고 한다. 책별로 연속 설교를 하는 것의 유익이 분명히 있지만 청중의 입장에서는 매주 비슷한 내용을 들어야하기 때문에 지루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시리즈별 설교를 한다면 이 역시 주제설교이지 강해설교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본문이 말하는 의미에 충실하면서 주제를 모을 수 있다면 이 또한 유익이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기간 동안 설교해야 할 주제가 정해져 있고, 매주 다른 본문에 기초하기 때문에 청중들이 지루하지 않고, 동일한 주제를 계속 선포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적용과 삶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으며, 여러 본문의 작은 퍼즐들이 조합되어 큰 그림을 완성시켜나가 연결성을 가지고, 여러 본문 속에 하나의 주제를 드러내기 때문에 청중들이 기억하기 쉬운 설교가 된다는 것이다. 시리즈 강해설교야 말로 청중들을 위해 변화된 강해설교의 형태로 한국교회 강단에 큰 바람을 불어왔다고 한다.
다음 변화는 설교의 서론부분의 변화인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연역적 방법에서 귀납적 방법으로의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가 나타난 데에는 이동원 목사의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강해설교에서 중요한 것이 설교가 사람들의 요구나 필요에 따라가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먼저 사람들의 필요를 알고 그 필요를 성경의 원리를 통해 채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가 적용된 것이 귀납적인 설교로 청중의 삶의 정황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실제로 설교를 할 때 본문부터 시작하면 청중이 듣기 힘들어 하지만 청중의 관심사를 이야기하고 그들의 현실적인 문제를 먼저 짚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청중의 관심과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귀납적인 설교는 전달력의 부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청중이 듣지 못한다면 그 설교의 내용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좋다고 한들 무슨 유익이 있을까 싶다. 전달이 잘 되기 위해서 청중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 중요하듯이 저들이 관심을 갖고 주의를 끌 수 있는 삶의 현장에서 설교를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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