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hwp(성계급 사회주의)
린지 저먼 지음 / 장경선 옮김
서문
오늘날 여성의 생활은 이전 세대의 눈으로는 전혀 이해될 수 없을 만큼 크게 변화했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이 집을 벗어나 일을 하는 곳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바로 여기에서 매우 중요하고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현재 영국에서는 90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임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그 중 많은 사람이 기혼여성이다. 이와 같이 여성의 노동에서 일어난 변화와 함께 여성 생활의 다른 측면들, 즉 결혼과 어머니 역할. 그리고 가족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들은 여성해방의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여성이 평등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도 오늘날 사회 곳곳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의 상황은 매우 모순적인 것 같다. 여성의 완전한 법적정치적 평들을 가장 큰소리로 외쳐대던 이들의 대부분은 과거 수십 년에 걸쳐 여성의 생활에서 일어난 변화들을 끝내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여성과 관련된 일련의 신화가 만들어졌는데, 설령 그 신화가 역사상 사실이었던 적이 있더라도 지금의 현실과는 무관한 것이다. 특히 페미니스트 중에는 여성의 생활에서 가정중심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다. 가정중심성은 가정주부라는 여성의 일반적인 이미지에 부합되는 것이며, 이러한 관점은 토리당과 노동당의 정치꾼들, 광고업자나 대중매체가 묘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여성의 일차적이고 가장 중요한 역할은 가정주부이며, 경우에 따라 시간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반면에 남성은 생계 유지자로 받아들여진다.
일부 페미니스트는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이며, 고용주나 심지어 남성노동자들의 변덕에 따라 마음대로 처리될 수 있는 존재자를 잘못된 견해에 동조하기도 한다. 이러한 견해는 특히 마가렛 세처 정부의 초기에 유행했으며, 당시 결기침체와 복지비용의 삭감으로 대규모 여성의 실업이 발생할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집이 아닌 임노동의 세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세기 말에 여성 노동자의 경제활동 비율은 남성과 13퍼센트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것이며, 1980년 노동력의 40퍼센트를 차지했던 여성의 비율은 이후 44퍼센트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Labour Force Survey in Employment Gazette (Department of Employment : London), April 1989
1990년대에는 기술인력의 부족이 진전될 것이므로 더 많은 기혼여성이 노동에 참여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대다수 페미니스트의 견해와 매우 다른 관점에서 여성의 상황을 고찰하고자 한다. 오늘날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실제적인 상황과 그에 따르는 태도들을 살펴보겠다. 노동자가 됨으로써 여성의 생활에서 일어난 엄청난 변화는 그에 상응해 스스로에 대한 그들의 관념, 그리고 그러한 관념을 지탱해 주는 사회적 관념의 변화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성의 태도 변화는 분명히 그들의 경제적 역할의 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한 국가는 여성을 위해 특정한 개혁들을 법제화함으로써 그러한 관념들이 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7년의 낙태법과 1971년의 이혼에 관한 개정법, 자유롭고 널리 확산된 피임방법, 그리고 비록 불충분한 것이지만 동일 임금법과 성차별 방지법 등은 수많은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 시키고, 적어도 형식적으로나마 평등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었다. 노동에 대한 태도역시 변화되어 왔다. 미국의 한 연구에 의하면, 1957년 질문에 응답한 취업주부 중 취업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기를 희망한 사람은 25퍼센트였는데 1976년에는 겨우 3퍼센트로 나타나 큰 폭으로 하락했다. 최근 영국에서 행한 연구에서는 전일제로 근무하는 여성의 절반이 남편과 함께 집안일을 한다고 응답했다. Jean Martin and Ceridwen Roberts, Women and Employment : A lifetime perspective (Office of Populations, Censuses and Surveys : London 1984).
교육이 확대된 시기는 바로 노동에 유입된 여성의 수가 증가한 시기와 일치했다. 1953~54년에 대학에 다닌 여성은 1만 7,300명이었으나 1968~69년에는 5만 200명으로 증가했다. Social Trends 1970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여성과 관련된 사회적정치적 문제점의 인식에 공헌했다. 여성 문제의 인식은 그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서 숫자상으로는 매우 작지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 페미니스트 운동과, 다른 한쪽에서 일반적으로 평등사상을 수용했던 대중적 기반(교육과 여성잡지 등)을 통해 가능했다. 그러나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여성억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그 동안의 모든 변화와 개선책, 그리고 노동 참여에도 이것들은 노동계급 여성을 진정으로 해방시키는 열쇠가 아니었다. 여성억압은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분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억압의 한가운데에는 가족제도가 놓여 있다. 노동에서 여성의 역할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가족이다. 가족제도 때문에 여성은 계속해서 남성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받고, 직업은 성별에 따라 분리되며, 육아는 사회화되지 않고 개별 가족의 책임으로 남게 되었으며, 여성의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여러 수단과 함께 가족임금 사상이 지배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숨겨져 있다. 즉 여성에게는 두 가지 역할이 있는데, 하나는 노동의 세계에서의 사회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에서의 사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여성억압은 바로 이러한 모순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프롤레타리아트 가족이-그리고 그 결과로서 노동계급 여성의 억압이-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실현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업 혁명과 자본주의의 무제한적 발전에 따라 노동계급 가족에서 일어난 변화를 알 필요가 있다. 또한 오늘날에도 가족이 계속 존재하는 이유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책의 첫 부분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가족은 ‘가부장제’라는 정태적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생산양식에 따라 변화하는 역동적인 요구들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을 밝히고자 했다. 그러므로 가족은 계급이나 사회적 생산과 분리해서 이해될 수는 없는 것이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영국 노동운동에서 여성의 역할을 살펴보고, 노동자로서 여성에게 가해진 억압의 결과를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노동당과 현대 여성운동을 다룰 것이다. 노동계급 여성이 이러한 조직들에서 자신들을 대변하는 진정한 목소리를 결코 발견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 조직들은 노동계급 여성들의 이해관계를 진정으로 대변한 적이 있었는가? 마지막으로 노동계급의 절반을 이루고 있는 남성과 함께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노동계급 여성의 잠재력을 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변혁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만일 이러한 변혁이 일어난다면 여성은 남성과 함께 해방될 것인가? 한 마디로 여성억압을 해결할 수 있는 혁명적인 대안은 과연 무엇인가?
1부 변화하는 가족
1장 자본주의와 가족(p.24)
지난 200년 동안 여성의 생활에는 인류의 전 역사에 걸쳐 일어났던 변화보다 훨씬 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엄청난 규모의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노동과 가정생활, 교육, 심지어 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을 총체적으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여성 개개인의 생활이 어느 정도 개선되기는 했지만 여성억압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으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은 억압은 근본적인 사회변혁조차 언제나 여성에게 일과 교육, 또는 투표에서 진정한 평등권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므로 설령 이러한 불평등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여성억압이 지속되는 이유는 매우 복합적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억압은 자본주의하 가족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가족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이다. 가족은 그 자체 계급으로 분화된 사회의 산물이지만, 가족의 특수한 형태는 그 가족이 존재하고 있는 계급사회의 형태-특수한 생산양식-에 의존하다. 남성과 여성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재생산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생산과정이 너무나 새롭고 이전과 전혀 다른 노동방식을 창출하자 당대의 학자들은 극단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어떤 이들은 구사회의 종말을 한탄했으며,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청년 마르크스나 엥겔스, 공상적 사회주의자 등-자신들이 여성을 위한 새 시대의 여명을 목격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자본주의의 급속한 발전으로 세계의 경제적 부가 엄청나게 확장되었으며, 이에 따라 여성이 자유로워질 가능성이 펼쳐졌다. 초기 자본주의 사회는 이러한 약속을 일면 수행하기도 했고, 반면 저버리기도 했다. 사실상 여성의 생활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그들은 가내생산에서 공장으로 이동했다. 19세기 전반기에 이르러 새로이 등장한 산업 노동자 계급의 가족은 점차 약화되었다. 그러나 가족은 결코 소멸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은 끝까지 유지되었고 마침내 재확립되었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면 가족생활을 강조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심지어 찬양했는데, 이러한 ‘가족의 가치’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남아 있다. 자본주의적 가족과 전자본주의적 가족의 중요한 차이는 규모나 가족구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생산의 단위인지 아닌지 하는 점에 있다. 1750년 영국에서 남성이나 여성이 생계를 유지하는 가장 주된 방법은 땅을 경작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생활하고 있던 가족은 적어도 몇 가지 생산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으며, 그 곳에서 상품은 주로 소비를 위해 생산되었고 가끔씩 판매되기도 했다. 이러한 생산은 가족에서 여성의 역할을 규정했으며, 여성은 단기간의 생계는 물론 사실상 모든 생계를 남성 가장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옛 가족의 변화는 가족을 유지해 주는 생산의 형태에 따라 다양한 모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