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개론]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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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을 읽고
책의 내용과는 많이 떨어진 생각과 내용일수도 있으나, 서두를 읽으며 상념이 들었다. 본인은 과거에 기독교, 천주교, 불교 대표적인 종교를 경험해본 바가 있다. 그러나 현재는 무교이다. 종교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종교는 우리의 삶에서 가까이 있었고 밀접해 있었다. 과거 자연의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된 터부로부터 자연물에 대한 숭배인 토테미즘, 모든 사물에는 영혼이 있다고 믿는 토테미즘 등 있다. 역사가 흐르며 종교 또한 발전을 이뤘는데, 원시종교에서 현재는 고등종교로 발전했다.
본인은 현재 무교임에도 불구하고, 부담 없이 보았던 영화한편 덕분에 종교에 관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맨 프롬 어스(The Man From Earth)라는 영화인데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한 남자가 인류가 시작된 1만 4천년동안 죽지 않고 생존해 있다는 설정으로 여러 종교를 종교인들의 심기에 안 거슬리게 조심스럽게 다룬다. 이를 계기로 본인은 종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으며 종교를 주제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또한 간혹 시청을 하였다. 현재 세계적인 종교는 기독교, 천주교, 불교, 이슬람교 등이 있는데, 이 종교들의 창시자 이자 초월자가 행하는 기적이나, 종교의 근원은 묘하게 서로 일치한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였다. 지난날의 역사를 잠시 돌이켜보면 종교로 인하여 특정 종교를 이단이라 칭하고 분쟁 또는 십자군전쟁 등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특정종교를 이단이라 단정 짓는 논리와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단순한 생각이 들었다.
현재 존재하는 대부분의 종교는 ‘구원’이라는 공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점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존재하였거나 신흥종교에도 해당되는데, 이점은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고 해도 변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목적아래 신도들이 모이며 종교의 지도자가 생긴다. 대부분의 종교들은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가치를 중요시여기며 그 어디에도 물질적인 풍요를 조건으로 하는 신앙내용은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종교인구는 전체국민의 80%이상으로 집계되는데, 통계만으로 놓고, 간단하게 네 사람 중 한사람은 기독교인인데,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어떤 일에서도, 본인은 도무지 종교인의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생각한다. 종교생활에 매진하시는 다른 분들에게 성급하게 일반화를 해서 성실하게 종교생활에 임하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지만 어디까지나 본인의 생각일 뿐이다. 일상 안에서 종교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전도하는 이들, 그저 예수 믿고 복 받으라며 종이를 건내는이들, 인상이 좋아 보인다며 하는일이 잘안되는 것은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지않아 그렇다며 제사비를 요구하는 이들 등. 그렇다면 앞서 나왔던 통계는 그저 숫자에 불구한 모두가 허구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찰도, 예배당도, 성당도 무수히 많이 세워져 있다. 오죽하면 서울의 야경사진을 보면 십자가가 수두룩하게 찍혀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본인은 그 종교들의 순기능이 거의 없다고 판단한다. 이유를 따지고 가면 본인은 설명할 수 없을뿐더러 끝도 없을 것 같다. 간단하게 표현하면 종교가 변질되었기 때문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표적인 변질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해야하는 종교가 보이는 것을 추구한 일이다. 종교가 보이는 것을 추구하게 된 것은 하나의 역세속화라 생각한다다. 세상이 자본주의사회, 물질만능주의, 성공주의로 바뀌면서 종교가 그 뒤를 따라간 것이라 생각한다. 교회의 집사나 목사, 유명한 사찰의 스님 등이 종교면세를 받으며 고급 승용차나 외제차를 굴리며 다닌다. 흔히 속세를 벗어나 정신수양과 교리에 매진하여야할 종교인들이 물질적인 것을 과시하는 모순적인 행동은 종교의 변질이 근본적인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창가학회는 승려가 없고 신도들만의 조직이라는 점이 차별과 상처받은 재일한국인들이 신도가 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라는 얕은 추측을 감히 해본다. 본인은 기이한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는데, 과거 직장생활을 할 때 4월초파일(부처님오신날)전날 동료들과 회식을 마치고 새벽에 택시를 타고 귀가를 하는 중, 집창촌 방향에서 술에 취한 듯 비틀비틀 거리면서 옷매무새를 고치며 걸어가는 스님을 목격했다. 참으로 기이한 장면이였다. 종교를 가지는 이유가 복을 받는 것에 있다하면 이미 그건 현대에 고등종교가 아닌 미신의 수준이라 생각한다. 불교를 예를 들어 싯다르타가 대웅전의 금불상이 되어 높이 모셔지고 그 아래에는 발복을 기원하는 불자들이 엎드려 있다. 사업번창, 건강, 아들의 합격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삼천배를 드린 후 구급차에 실려가는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신앙은 본인은 온전한 신앙은 아니라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훈련소 생활을 할 때 동기 중 한명이 자신은 모태신앙이며 집안자체가 기독교 집안이라 술, 담배 등을 전혀 하지 않고 충실한 신자라고 자칭하던 동기가 불교종교행사에서 햄버거를 나눠준다는 소식에 기독교를 나가지 않고 본인의 옆자리에서 웃으며 햄버거를 먹던 모습이 떠오르며 이것이야 말로 본인의 사리사욕에 따라 바뀔수도 있는 것이 신앙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 또한 매주 수혜에 따라 종교행사를 달리 참석했기에 비판은 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도 언급되었던 탁명환 신흥종교연구가의 생각과 얼추 비슷한 생각인데 종교의 힘을 정치의도구로 나타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종교계의 시국선언과 같은 일이 조금 더 무겁게 다뤄졌으면 한다.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된다 생각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종교활동은 심신이 지치고 피로하며 의지할 곳이 필요할 때 기댈 수 있는 안식처라 생각한다. 앞서 말했던 것들이 부정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안식처라는 성질은 향후 변함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교포들. 특히 재일교포, 즉 재일한국인들이 당시 겪었을 차별이나 슬픔, 고통을 본인은 감히 이해 할 수 없고, 공감할 수도 없다. 창기학회는 재일한국인들에게는 누구에게도 침범 받지 않는 안락한 안식처이자 스폰서. 든든한 조력자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현재 본인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식당에도 재중교포. 흔히 말하는 조선족(법률적인 의미로 재중교포와 조선족은 다르다.) 이모분이 근무를 같이 하고 있다. 그 이모는 가끔 중국인 단체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은 중국인이다, 한국인이다 두 가지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에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자 자신의 국적은 중국이지만 근본은 한국에 있다고 이야기 해주었다. 타지살이를 하고 있는 본인과 조금은 동질감이 들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본인은 종교활동을 하느냐 물어보았다. 그래서 한달 전 부터 근처 성당에 다니고 있다며, 자신과 같은 제주도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이 몇명 다니고 있어, 서로 언니 동생하며 의지하고 어울려 다닌다고 한다. 정신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