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서양체육교육의 역사적 이해

 1  감상문 서양체육교육의 역사적 이해-1
 2  감상문 서양체육교육의 역사적 이해-2
 3  감상문 서양체육교육의 역사적 이해-3
 4  감상문 서양체육교육의 역사적 이해-4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감상문 서양체육교육의 역사적 이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서양체육교육의 역사적 이해
Ⅰ. 들어가며
우리 나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역사를 공부할 때 정치사 중심의 굵직한 사건 위주로 암기하는 방법에 익숙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이 시험에 나오기 때문이다. 사회현상과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객관적인 사실 자체만 암기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힌두교 문화권에서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는 사실에서 한참동안 돼지고기인지 소고기인지 고민했다. 그것이 장기기억 되었더라도 기억의 한계는 그것을 소멸시키기 일보직전까지 갔나 보다. 그러고 나서 ‘아하~ 돼지고기는 이슬람문화였지~“라며 안도를 한다. 사실 그 자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사실만을 외우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는 자연환경과 삶의 모습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들의 삶 속에서 소가 주는 이로움을 발견하게 되고, 소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시작은 종교적 믿음이나 규율이 아닌 환경의 결과였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외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안목과 노력만 있다면 언제든지 파악할 수 있는 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책은 서양 체육의 역사에서 근대 체육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거나 의미있는 내용들 위주로 엮였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이 책을 읽고 우리 나라의 체육교육 현실과 비교해 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찾자”라는 기준을 잡았다. 생활사 중심의 이야기 전개에서 자연스럽게 역사적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고, 현재 한국 체육교육의 현실과 비교하여 귀감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물론 안타깝고 부러운 사건들이 많았지만 말이다.
Ⅱ. 서양체육교육의 역사적 이해
로마시대 원형경기장에서 치뤄진 비인간적이고 끔찍한 결투들은 대중의 즐거움을 위한 도살의 상업화 경향을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대중들의 욕구를 발산시키고, 대중들의 열정을 정치적 활동으로부터 제외시키기 위하여 게으른 사람들의 흥미를 만족시키기 위해 고안된 이러한 것들을 바라볼 때 단지 그 사실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왜’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시작할 때 로마시대의 사회적 상황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로마시대 갈렌의 이야기에서 르네상스 시대로 건너뛴 것을 보면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 일컬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중세 크리스트교는 신체를 멸시하였고, 때문에 체육은 수도원 학교의 교과 과정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중세는 종교 이외의 모든 것에서 발달을 찾아볼 수 없고 특히 영혼을 우월하게 여기고 신체를 죄악시했던 금욕주의 시대에 체육의 발달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갈렌의 의학과 체육과학에의 공헌이후(갈렌 201년 사망) 1,200년간 공백이 있었으며 진보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 단적으로 나타내준다.
영국의 스포츠와 체육교육에 대해 공부하고 그것의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현재의 정규게임 종목들이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독창적인 고안에 의해 시스템화되었기 때문이다. 농구, 배구, 미식축구 등은 미국에서 고안되었지만, 영국의 퍼블릭 스쿨에서의 학생들간의 경쟁 속에 자라난 스포츠의 모습을 간과할 수가 없다. 선수중심의 엘리트 스포츠보다는 모든 젊은이에게 체육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육성시켜 활동적인 삶의 방식을 어렸을 때부터 형성시키고 평생체육을 실현해야 한다. 운동습관은 학창시절에 가장 잘 형성되기 때문이다.(영국의 모리스에 의해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현재 세계인들의 잔치, 지구촌의 잔치라 불리는 근대 스포츠의 형성 초기 사건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재미를 주고,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세계화, 지구촌” 이라는 말은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지구에서는 쿠베르탱에 의해 근대 올림픽이 부활되고 4년에 한 번씩 올림픽을 치룬다. 그 외에도 아시안게임, 월드컵, 종목별 세계선수권 대회 등 인류는 한 장소에 모여 말그대로 지구촌 축제를 벌인다. 이미 세계는 하나의 마을이라는 이 ‘지구촌이라는 말은 다양성의 말살을 의미한다. 도대체 어떤 종목으로 마을의 축제를 벌일 것인가, 그 종목들은 각기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 스포츠 기능을 겨루다 보니 공식적이고 일반화된 종목이 필요에 의해, 육상이나 수영과 같은 스포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럽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한다.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그 스포츠들은 하루아침에 누군가에 의해 고안된 창작품이 아니다. 여가 활동 속에서 자연스레 환경에 맞게 조작하다 보니 사람들의 즐길거리가 되었고, 구트만이 말한 근대화의 속성을 얻으면서 규격화되고 규칙을 만들어 우열을 가릴 수 있는 스포츠가 된 것이다. A라는 식물이 있다. 세계적으로 서양의 토질에서 자란 그 식물을 인정해주기 때문에 한국토질에서는 잘 자라지 못하는 A식물을 갑자기 들여와 재배에 성공하려는 학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서양의 토질에서 적합한 식물을 갑자기 한국토질에서 키우려니 그 오랜 시간의 숙련과정을 어떻게 금방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처음엔 심자마자 죽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 우리의 식물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면 될 것이 아닌가, 문제는 세계에서 한국토질에 맞는 식물은 인정하지 않는 데에 있다. 한국의 것뿐만 아니라 여러 마지널 스포츠들이 이런 대우를 받고 있다. 여기서 세계의 다양성은 무시되고, 일부 독점 민족과 국가의 스포츠와 문화가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지구 곳곳에 날아가 박혀 고유의 멋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적어도 스포츠에서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화, 지구촌”이라는 허울좋은 말로 그들의 것이 아닌 수많은 다른 것들의 다양성은 사장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