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장성군 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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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장성군』을 읽고
이번 학기 강의에서 주식회사를 배운 까닭일까. ‘주식회사’라는 단어에 이끌려『주식회사 장성군』을 읽게 되었다. 읽기 전까지 나는 장성이 어디인지 몰랐다. 심지어 지역 이름인지 조차도. 물론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장성이 어디인지 모를 것이다. 장성군은 전라남도 최북단에 위치한 작은 농촌마을로 처음 듣는 사람들이 강원도 탄광촌인 ‘장성’으로 착각할 정도로 이름 없는 지방도시이다. 이처럼 이름 없는 작은 도시가 지방자치제도가 도입된 10여년이 지난 요즘 지방자치제의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성공 요인은 바로 행정과 기업의 경영 마인드를 접목시키는 것에 있다. 이 같은 기업 마인드 도입의 일등 공신은 바로 김흥식 군수라고 말할 수 있다.
공무원 사회는 자칫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십상이다. 흔히 우물 안 개구리에 비유할 정도로 변화에 둔감하며 도전적인 일에 소극적이다. 장성군도 여느 지자체처럼 이와 같은 문제점에 봉착했다. 하지만 김흥식 군수는 기업을 운영했던 경험을 살려 ‘군정의 경영화’, ‘행정의 서비스화’ 등을 기치로 삼고 조직을 개편하기 시작했다. 연공서열이나 성별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이 있다면 과감히 기용했다. 또 행정기관 최초로 목표 관리제도 도입, 부서 개편 및 신설 등으로 기업형 인사관리시스템을 도입하여 변화를 도모했다.
특히 김흥식 군수는 다른 무엇보다도 교육을 중요시 여겼다. 모든 CEO가 그렇듯이 기업인으로서 잔뼈가 굵은 그는 교육이 단순 지출이 아니라 중장기적 안목에서의 큰 투자라고 보았다. 그렇게 ‘장성 아카데미’를 설립하게 되었다. 물론 ‘시골 농촌에 누가 강의를 하러 오나’, ‘교육에 너무 많은 지출을 하는 것 아니냐’ 등의 우려와 반대가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매주 금요일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와 사회 유명 인사들을 초빙하여 장성군 주민들과 공무원들이 강연을 들을 수 있도록 하였다. 함께 강연을 듣는 덕분에 군민들과 공무원들 사이에는 전보다 더욱 두터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의식 수준도 향상되어 지식·정보화 사회에 걸맞은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처럼 교육에 대한 투자는 작은 시골 장성군이 매년 공공정책 부문의 각종 평가에서 입상할 수 있게 된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생각건대 장성아카데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김흥식 군수라는 ‘리더’ 덕분이 아닐까 싶다. 교육에 대한 열정, 자신감 그리고 한번 추진한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 그에게서 리더로서의 진정한 카리스마를 엿볼 수 있었다. 물론 성공에는 그의 뜻대로 지지해준 공무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혁신을 맛볼 수 있었지만 말이다. 내가 만일 공무원으로 근무하게 된다면 제일 먼저 장성군에서 일하고 싶어졌다.
또 글로벌 마인드를 키워주기 위해 공무원들을 해외 곳곳에 배낭연수를 보내주었다. 재정자립도 98%나 되는 서울시 공무원들도 여권 소지 비율이 20% 안팎인데 재정자립도 16% 정도에 불과한 시골 공무원들의 여권 소지비율은 100%다. 김흥식 군수의 추진력이 실로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민간 기업에 위탁 교육을 받도록 하였다. 기업 연수원에서 공무원들을 교육하여 그가 추구하는 ‘행정의 서비스화’를 실현토록 하였다. 일반 기업에서도 매년 하기 힘든 일을 공무원 사회에서 하고 있다는 점이 실로 놀라웠다. 특히 사기업에서나 볼 수 있는 고객과 서비스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한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러한 장성군의 사례는 아직까지 경직된 우리나라의 공직 사회를 변화시키는 초석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 것은 장성군이 문화 콘텐츠 산업 육성에 힘썼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은 지자체마다 브랜드 메이킹을 통한 문화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해 혈안이다. 하지만 90년대만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김흥식 군수는 브랜드가 있어야 기억에 남는다는 생각 하에 이전까지는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브랜드 메이킹을 제안하고 과감히 시행하였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홍길동 캐릭터’다.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허구의 인물인줄만 알았던 홍길동 캐릭터를 실존 인물로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강릉시와 홍길동의 고향을 두고 마찰을 빚었으나 장성군의 신속·전문적인 대응이 장성군의 홍길동을 만들 수 있게 하였다. 그가 그토록 강조하던 교육의 성과가 바로 여기서 들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홍길동 캐릭터 제작을 통해 대규모 홍길동 테마파크를 조성하였고 이와 관련된 사업들을 활발히 추진하였다. 물론 처음 시작할 때는 홍길동의 도적과 서출의 이미지로 선비와 유림의 고장인 장성과 맞지 않다는 거부감들을 표출하였다. 하지만 김흥식 군수의 확고한 결단은 군민들과 공무원들을 설득하였고 성공리에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하였다. 홍길동 캐릭터를 이용하여 장성 홍길동 축제를 비롯한 각종 대회나 상품 등을 만들어냈다. 또 지역적인 특색을 살려 장성의 유명한 오색 애기단풍을 이용한 백양사 단풍축제 및 연계된 문화·관광사업을 추진하였다. 이 당시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이야 문화 콘텐츠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많이들 투자하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지만 약 15년 전 누가 이런 깨어있는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다시금 김흥식 군수의 리더로서 자질이 출중하다는 것을 깨닫는 대목이었다.
이밖에도 농업 육성에 힘을 쏟았다. 장성군 역시 농업이 주인 군이다. 세계 자유 무역화와 쌀 시장의 개방화는 국내 농업에 커다란 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장성군은 ‘농업 인재 육성’과 ‘농업 환경 조성’을 통하여 위기를 극복하려 하였다. 그 결과 1997년부터 농정 업무 종합 평가에서 8년 연속, 쌀 생산 대책 평가에서 9년 연속 수상을 통해 종합 약 45억을 보조받았다. 위기 상황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 먹을거리 시장에 부는 웰빙 바람을 잘 캐치하여 농업 정책의 기본방향을 친환경으로 바꾸었다. 덕분에 쌀, 사과 등 고품질의 상품을 생산하여 비싼 가격으로 팔 수 있게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