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한국 공산주의운동사2 - 정전협정 체결, 공산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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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평] - 한국 공산주의운동사2 - 정전협정 체결, 공산주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국 공산주의운동사Ⅱ
로버트 A 스칼라피노와 이정식의 『한국공산주의운동사』는 1980년대 중반, 1986년부터 1987년 사이에 총 3권으로 간행되었다. 그 중 2권인 『한국공산주의운동사 Ⅱ』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직후부터 1953년 7월 27일 625전쟁의 정전협정이 체결된 무렵까지 발생한 한국의 공산주의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책자, 신문, 수기, 미군문서를 비롯한 국내외 자료, 북한에서 발행한 간행물 등의 서지자료와 인터뷰를 통한 방대한 양의 자료를 활용하여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에 대해서 풀어내고 있다.
다양한 자료를 이용하여 여러 사건들을 담담하게 풀어내어는 서술은 역사수필 같았지만 워낙 유명한 책인 만큼 읽히는 것과는 별개로 내용의 이해가 쉽지 않았다.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는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역사수업에서 일제강점기 이후의 내용은 수업을 들어본 적이 없었고, 그 이후는 부분은 스스로 공부해야 했다. 항상 수업은 삼국·고려·조선에 치중되어 있었다. 또한 한국사와 관련한 시험을 칠 때도 현대사 부분은 출제빈도가 낮았다. 대학에 와서 역사를 공부하면서 커리큘럼상 동·서양사에 치중하였고, 현대사부분은 동시대를 다루는 일은 언제나 부담스럽고 예민한 일이기에 언제나 비중을 작게 두었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읽으면서 단편적이고 일부 사건을 중심으로만 공부한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한국공산주의운동사 Ⅱ』에서 다루고 있는 1945년 광복이후부터 1953년 625전쟁의 정전협정 체결까지 알고 있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광복이후 여러 단체들이 민주공화국 건설을 위한 원칙을 발표하였지만,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하여 미군과 소련군이 38도선 이남과 이북에 진주하여 군정이 시작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 우리나라의 소위 사회지도층은 우익과 좌익으로 나뉘어 대립하였고 ‘신탁통치’를 중심으로 갈등이 심화되었다.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 결정안에 찬성한 좌익과 반대한 우익으로 대립하였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지만 정당사회단체선정 문제 등으로 결렬되었고 ‘좌우합작운동’이 추진되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미소공동위원회의 결렬은 유엔의 개입을 낳았고 1947년 11월 유엔 총회에서 유엔의 감시 하에 인구 비례에 의한 남북한 총선거를 통한 한국 통일안이 가결되었다. 소련은 반대하였고 유엔 소총회는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의 활동이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를 치르기로 하였다. 김구와 김규식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38도 이남지역에서만 510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제헌국회에서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였고,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언하였다. 38도 이북지역에서도 소련의 지지 속에서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하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조직되어 토지개혁 등을 실시하였고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냉전시대 속에서 복잡한 국제정세와 국내의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렇게 빈약한 배경지식은 이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배경지식이 될 수 있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출간된 『한국사 52』, 이 책의 앞부분인 『한국공산주의운동사Ⅰ』를 읽고 싶었지만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으로 『한국사 52』의 아주 일부분만 볼 수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한국공산주의운동사 Ⅱ』는 제목 그대로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서 최대한 객관화하여 통사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보인다. 방대한 양의 자료는 새로운 후속연구를 위한 촉매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자세한 각주는 후발 연구자들에 많은 도움을 가져다주었다. 방대한 자료가 주는 책의 내실 단단하게 해주는 부분도 있지만, 이 저자가 어떤 사관(史觀)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하였는지를 모호하게 만드는 부분도 발생한다. 제4장 미군정기의 한국 공산주의의 12. 평가를 보면 다음과 같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을 억제한 것은 미국이었다. 특히 해방 직후 첫 단계의 중요한 시기에 이 점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렇지 않았다면 공산당이 갖고 있던 약간의 조직력과 힘은, 특히 인민공화국과 같은 외곽단체의 베일 속에 싸여 있을 때, 몇 갑절의 성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좌익이 여운형, 박헌영 같은 지도자 밑에서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을 무렵 이승만, 김구 같은 소위 우익지도자들은 수만 리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만일 초기에 공산주의자들을 억제했던 것이 미국 세력이었다면, 얼마 후에 공산주의운동을 분쇄한 것은 미국과 한국인들의 연합세력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미군정의 지지 아래 움직였던 남한의 비(非)공산세력―이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공산주의자들 자신들도 여러 가지의 전술적, 전략적 과오를 범함으로써 자신들의 패배에 크게 기여했다. 그 중 많은―아마도 태반의―실책들은 남과 북에서의 공산주의운동에 관한 기본결정을 내린 소련군정측에서 그들에게 강요한 것들일 것이다. 그러나 실책 중의 여러 가지는 당내의 파벌싸움, 미비한 연락체계 및 이와 유사한 약점들의 소산이었다. 스칼라피노·이정식, 『한국공산주의운동사 Ⅱ』, 돌베개, p.397.
공산주의 세력을 비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소위 우익으로 불리는 자유민주주의진영에 대한 미묘한 긍정적 평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또한 저자가 어떠한 평가를 내렸다기보다는 사실을 짜임 있게 구성하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점이 단점으로 부각될 수도 있겠지만,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오히려 순기능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산주의라는 중심 주제를 가지고 글을 이끌어 나가기 때문에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건들은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주변 사건으로 비춰져 소략하게 설명하거나 생략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그 당시 김구의 활동은 그 시기를 이해하는 배경으로 수록된 내용보다 조금 더 다루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이렇게 방대한 양의 자료를 씨실과 날실을 짜듯이 하나의 기조로 만들어 내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주제에서 살짝 빗겨나간 다른 영역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들까지 포함시키다보면 많은 자료의 수록으로 산만해지는 경향을 더 가중시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