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역사를 살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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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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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역사를 살다를 읽고
Ⅰ.새시대를 꿈꾸는 창조적 소수자
1. 기장 50년의 회고와 전망
한민족은 1945년 미완의 해방을 맞이하였다. 교회도 해방을 맞아 교회 재건의 새로운 과제에 직명 하였다. 해방 후 남북교회들은 각기 교회 재건을 추진하였다. 남한 교회를 남부교회로 하였고 조선신학교를 직영 신학교로 인준하였다. 하지만 보수 교권주의자들은 조신을 자유주의신학, 친일 교육기관으로 매도하였다. 이렇듯 남북 장로교회의 재건에 있어 가장 큰변수로 작용한 것이 북한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내려온 종교 지도자들과 본국으로 귀환하였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외국 선교사들이었다. 보수 교권주의자들과 외국 선교사들의 불법적인 총회 운용으로 38회 호헌 법통 총회로 한국 기독교 장로회는 시작되었고 새 역사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런 작은 교단에 케나다 선교회는 새 역사 창조의 동지로서 함께 하였다.
기장은 역사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였다. 이 시발점은 4.19혁명이었다. 권력과 유탁한 한국장로교회에 유탄을 던진 것이 4.19혁명이기 때문이다. 이미 진보적인 교회 지도자들은 4.19혁명을 한국장로교회에 던지는 심판이라고까지 하였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기장의 역사 참여는 박정희의 군부 독제에 대한 저항부터 시작되었다. 독제에 대한 저항과 민주화의 추구와 인권의 회복을 위해 기장은 역사적 소명, 예언자적 사명의 길 새 역사에 참여를 하였다. 또한 기장은 WCC 평화 통일 운동과 생명 연대 운동 등을 진행하여 생명 정의 평화의 운동을 기장 50년 동안 꾸준히 실천해왔다.
2. 함태영의 목민영성과 오늘
송암은 우리에게 잊혀진 존재이다. 이는 그의 겸손함과 소극적 성품 덕분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지역파벌주의와 기장에서도 송창근, 김재준 목사, 김대현 장로등에 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사적 교회사적 중요한 인물임엔 틀림없다. 우선 그는 3.1운동의 주역이었다. 민족 대표에 들지는 않았지만 기독교계의 중심 역할을 한 인물이다. 또한 그는 교회 개혁의 선구자였다. 그는 3.1운동이후 보수, 교권화된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처음으로 적극신앙단을 만들어 교회를 개혁하고자 하였따. 마지막으로 그는 민주적 사회 건설자였다.
그의 목민영성은 이러하다. 자주 적 영성이다. 또한 참여적 영성과 개혁운동, 화해적 영성과 정치운동이었다. 오늘날 목민영성은 우리에게 이런 교훈을 준다. 교회답지 못한 작금의 교회를 교회되게 개혁하라 그리고 더불어 사는 기쁨을 나누고 지구를 살리는 생태 평화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3. 금필헌과 3대 신앙
금필헌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돈이다. 돈은 살림살이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수단이고 도구일 뿐 결코 거룩하거나 속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거룩한 돈이 무엇일까? 금필헌에 얽힌 3대의 이야기는 성서에 나타난 예수의 교훈처럼 하나님과 돈을 함께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을 충서오디고 신실하게 섬긴 믿음의 일꾼들의 이야기이다. 돈을 소중히 여기되 돈을 사랑하지 않고 그것을 통해 이웃과 교회를 돌본 사랑의 일꾼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많은 돈을 소유하였으나 돈의 종이 되지 않고 그 돈을 투자해 미래에 주어질 하나님 나라의 보물을 비축한 소망의 일꾼들의 이야기이다.
4.성빈의 목회자 송창근
만우 송창근은 해방 이후 한국 교회에 재건과 민족 교육에 기대한바 늦은 비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1950년 8월 6.25전쟁 당시 납북되어 생애를 마감하였다. 그는 대립과 갈등을 넘어 폭발하는 인간관계를 화해와 일치 그리고 협력으로 만들어 내는 남다른 독특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만우에 영향을 준 스승들이 많다. 먼저 이동휘는 만우가 총을 들고 싸우는 독립군 보다 민족 계몽과 교육이 더 급선무라는 것을 가르쳤고 그로 인해서 만우는 목회자의 길을 걸어갔다. 목사가 된 만우는 함태영 목사에게 목회 수업을 받았다. 만우에게는 관포지교를 넘어서는 형제의 만남이고 신앙의 우정인 장공 김재준 목사와 이용도 목사인 친구들이 있었다. 또한 그에게는 교육적 대상이 아니고 함께 이루어가는 교육의 주체인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