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문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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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
타임머신의 발명으로 우리가 되돌리고자 하는 삶의 한 부분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유아기, 초중고 시절로 갈수도 있으며 대학1학년생이 되어 ‘대학1학년생 때부터 취업준비하기’의 꿈을 실현할 수도 있다. 방송인 박미선 씨는 어느 TV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저와 똑같은 질문을 받고는 자신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답하였다. 그 시절에 겪었던 사회적불안감에서 오는 걱정과 고민들을 다시하고 싶지 않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청년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는 순간 무릎을 치며 크게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유년기를 거쳐 청소년기, 청년의 삶을 살면서 친구들과 쌓았던 우정과 나누었던 경험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함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친구들은 한편으론 나의 경쟁 상대이며 그들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만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삶을 살 수 있다. 아니, 그렇다고 사회는 말하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불안을 ‘만성화된 공포’라고 말하고 있다. 불안은 공포에 비해 지속시간은 길지만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한 것이 차이점이다. 이 ‘만성화된 공포’는 여러 신조어들을 쏟아냈다. 흔히 우리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2007년 전후 한국의 20대를 ‘88만원세대’라고 지칭한다. 취업시장에서 낙오된 자들은 ‘루저’라는 명명으로 스스로 아님 타인에 의해 정의 내려진다. 또한 취업시장에서 영광스런 1등급도장을 받으려면 높은 스펙은 필수이다. 고(高) 스펙은 곧 내가가진 능력의 정도와 같으며 이것은 곧 고(高) 연봉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논리가 성립된다. 이러한 논리는 사회가 조장하는 불안이 가져다준 결과이다. 위와 같은 신조어가 생기게 된 배경과 마치 진리인양 당연시 여겨지는 취업시장에서 살아남는 법칙들은 기성세대에서 이어져 내려온 것일 수도, 이시대의 청년들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여기서 집고 넘어가야할 부분은 전자인가 후자인가 하는 호불호를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88만원세대’라는 불명예스런 칭호를 달고 항상 불안과 걱정에 시달리며 현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 것일까? 하는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88만원세대’라는 말은 우석훈 교수가 2007년 8월 출간한 책 『88만원 세대』에서 처음 쓰였다. 비정규직 평균 급여 119만원에 20대 평균급여에 해당하는 73%를 곱한 금액이 88만원이라는 거다. 한국의 여러 세대 중 처음으로 승자독식 게임을 받아들인 세대가 지금의 현세대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승자독식이란 말은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의 책 『승자독식사회』에서 나온 말로 소수의 사람이나 소수의 회사가 사회의 거의 전부의 부를 차지하게 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현상을 표현하는 말이다. 결국 우리는 승자독식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취업전선에서 후퇴하지 않기 위해, 88만원세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더욱 안정적인 삶을 찾아 이상보다는 현실을 쫓게 되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선망의 대상이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과거 공무원은 ‘마땅히 하고자하는 일을 찾지 못하였을 때 선택하게 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하였다. 그러나 IMF이후 청년실업률이 급증하고 고용불안이 지속된 가운데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흐려지면서 안정적인 일터에 대한 욕구가 강해짐에 따라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 이른바 ‘공시생’이 급격히 증가하였다. 올해 들어 7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은 200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였으며 일반 수험생이 아닌 직장인들도 8.3%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문제는 불어난 공시생의 덩치에 비해 차지할 수 있는 의자의 수는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많은 대학생들이 휴학을 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에 오랜 시간 투자하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이 좌절하고 학교도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꿈이 아닌 안정된 노후와 삶을 쫓아서 적지 않은 청년들이 적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야말로 국가적 인력손실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 공무원시험에 불합격한 자가 있다고 하자. 그 또는 그녀는 다시 학교에 복학하여 남은 학기를 이수하고 또다시 취업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그 청년은 쉽사리 복학을 결정짓지 못한다. 자신이 ‘루저’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동기들도 자신을 그렇게 볼 것만 같다. ‘루저(Loser)는 일반적으로 “패자”를 뜻하는 말인데 영어권 국가의 누리꾼들이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신조어로 한국 청년들 사이에서도 흔히 쓰이는 단어다. 이건 비단 공시생뿐만이 아니라 취업시장에서 낙오된 청년들도 스스로를 ’루저‘로 단정 지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위험수위를 오르내리는 청년실업률이 말해주듯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한국 청년들을 ’루저‘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특유의 사회적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는데, 우리 민족은 반만년 이상을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면서 살아온 사회집단이다. 한민족이라는 이념아래 생겨난 공동체의식은 IMF때 벌인 금모으기 운동, 태안 기름유출 후 전 국민이 벌인 자발적 봉사 등 긍정적인 측면을 낳았지만, 강한 결속은 곧 한국인들이 집단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더 크게 느끼는 부정적 측면도 작용케 하였다. “취업에 성공하려면 높은 스펙을 쌓아라.”라고 외치는 사회에서 “아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경쟁구도 밖으로 밀려나 버린 패배자가 되는 것이다.
청년들이 저마다 외쳐대는 스펙이란 영어 ‘Specification’의 줄임말로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직장을 구할 때 요구되는 학벌, 학점, 토익점수 등의 평가요소를 말하는데 여기서도 승자독식의 법칙은 성립된다. 높은 학벌, 높은 토익점수, 토익스피킹이며 어학연수경험과 능숙한 외국어구사능력을 가진 소위 말하는 고스펙자 A는 취업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한다. 반면에 A보다는 낮은 학벌, A보다는 낮은 토익점수, 어학연수경험이 전무한 B는 ‘광탈’의 씁쓸함을 맛본다. ‘광탈’이란 3차로 이루어진 구직시험전형에서 1차전형인 서류통과에서부터 광속으로 탈락하는 것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대학생활의 낭만이나 꿈을 쫓기 보다는 학점을 구걸하고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다. 대학동기와의 대화 속에는 온통 스펙과 관련된 이야기뿐이다. 입학과 동시에 취업을 준비하지 않으면 취업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는 말을 진리로 여기며 사람들은 취업의 노예가 되어 기계처럼 생활한다. 스펙을 포기하는 일은 취업을 포기하는 것과 같으며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에 필요한 인재가 되고 싶은 우리는 잉여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불안을 조성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스펙을 요구하는 사회를 탓하겠는가, 아니면 조용히 스펙을 쌓겠는가?” 라는 물음에 “미동도 않는 사회를 탓하고 있느니 내가 움직인다.”고 상당수의 학생들은 답하였다.
『88만원세대』를 통해 우석훈 교수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청년들의 취업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몇 가지 제시하였다. 감원대신 감봉을 택해 일자리를 나누는 볼보주의 정책 도입, 정규직화 비율을 높이기 위한 예산확충, 2조대의 20대 창업지원금 확보, 지자체의 알바 보조금 지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안이 현실성을 확보하기란 어렵다. 이상과 현실은 항상 괴리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고용불안을 떠안게 한 기성세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어떠한가? 이것역시 심리적 위로감은 줄 수 있으나 그뿐이다. 기성세대 역시 상대적으로 양호하지만 극심한 경쟁 환경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고용불안을 떨쳐버리고 인간이라면 영원히 추구하게 되는 ‘행복’에 가치를 두고 청년시절을 보내고 싶다면, ‘행복’은 고사하고 엄습하는 불안만이라도 떨쳐버리고 싶다면 여기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 있다. 바로 20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너무 진부한 답변에 실망한기색이 역력한가? 당연한 반응이다. 나또한 그랬으니까. 기성세대들은 말한다. “삶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얻고자 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다.”고 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오는 패배감과 불안은 우리를 괴롭히겠지만 당당히 사회에 도전장을 던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냥 주저앉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썩은 동아줄인지 새 동아줄인지는 알 수 없으나 ‘희망’이라는 동아줄을 잡고 올라갈 것인가? 선택은 온전한 당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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