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리오타르의 숭고와 현대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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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학 리오타르의 숭고와 현대 예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미학
리오타르의 숭고와 현대 예술
들어가며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우선 아름다움과 아름다운 것의 차이는 무엇인지 해명되어야 한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들이 추상화 작용을 거쳐 생성된 것일 테다. 따라서 아름다움에 대한 규명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한다. 아름다운 것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 주변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펼쳐져 있다. 물론 ‘과연 진짜 아름다운가?’ 라는 질문 앞에서도 여전히 아름답게 남을 수 있는 것들의 수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갈수록 증대되기보다 줄어든다고 볼 수 있다. 감히 이렇게 단정 지을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필자의 경험에서 아름답다고 기억되는 것은 대부분 자연의 풍광이다. 물론 미술관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하튼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건 대부분 자연적 대상들이었고, 그것들은 계속 위험에 처해있다. 인류와 사회의 발전이라는 핑계로 자연은 보존 대상이 아니라 개발 대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손으로 변형된 자연의 아름다움(인공미)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잘 가꿔진 정원의 모습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하지만 인간이 감히 만들어 낼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풍경(자연미) 앞에서 인간의 작품(인공미, 예술미)들은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처음으로 제주도 성산일출봉을 올랐을 때 그 풍광과 거기서 오는 감정은 아직도 남아있다. 웅장하고 장엄한 자연의 광경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숭고인지를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거대한 자연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숭고를 중심으로 글을 써보리라 결심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숭고와 아름다움의 개념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숭고한 아름다움은 가능하다.
처음엔 칸트의 숭고 개념을 공부해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자료조사를 위해 진중권이 쓴 『현대미학강의』를 읽다가 리오타르라는 철학자를 만났다. 그가 주로 다루고 개념이 바로 숭고였고 그래서 반가웠다. 리오타르와의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되어서 그의 숭고론에 관해서 글을 쓰게 됐다. 그리고 리오타르를 공부하면서 그의 숭고론이 현대예술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 『현대미학강의』를 보면, 서로 대립하며 보족하는 리오타르의 숭고와 장 보드리야르의 시뮐라크르, 두 개념은 현대 예술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게 하는 핵심적인 개념들이다.
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도 난해한 현대예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서 리오타르의 숭고를 가지고 현대예술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실제 작품들을 예시로 삼아 살펴보겠다.
먼저 미학사에서 숭고와 관련된 논의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다루겠다. 특히 영국의 경험론 전통 속에 있는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를 살펴보자. 그리고 근대 철학의 완성자이자 독일관념론의 출발인 칸트가 그의 미학에서 숭고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보자. 버크와 칸트의 숭고를 살펴보는 이유는 리오타르가 이 둘로 대변되는 근대미학 숭고론의 영향 속에 있기 때문이다. 다음엔 본격적으로 리오타르의 숭고에 관해서 살펴볼 것이다. 크게 두 가지, 즉 숭고에 대한 부정적 묘사와 사건성의 체험이라는 작은 장들로 나뉘어 이야기는 진행된다. 마지막으로는 리오타르의 숭고를 가지고 어떻게 현대예술을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보고 실제로 현대예술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특히 미국에서 활동한 화가 바넷 뉴먼의 작품들을 예시로 삼겠다.
미학사에서 ‘숭고’ 개념
버크 먼로.C.비어슬리, 『미학사』, 이성훈, 안원현(역), 이론과 실천, 1987, pp 221-225
근대 숭고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 1729/1/12 ~ 1797/7/9)는 『숭고와 아름다움의 관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 아름다움과 숭고에 관해 설명한다. 버크의 숭고 개념을 살펴보기에 앞서 쾌에 대한 그의 구분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는 쾌를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하나는 절대적 쾌이고 다른 하나는 유적 쾌이다. 상대적인 쾌인 유적 쾌는 고통의 제거나 감소에서 오는 쾌이다. 버크에 따르면 아름다움은 절대적 쾌랑 관련이 있으며 숭고는 유적 쾌랑 관련이 있다. 버크는 유적 쾌를 촉발하는 모든 것을 숭고라고 본다.
버크에게 숭고는 즐거운 공포이다. 즐거움과 공포라는 전혀 다른 두 감정의 혼합이 바로 숭고의 감정이다. 여기서 즐거움이 의미하는 바는 공포가 사라지면서 생기는 안도감과 기쁨이다. 그러면 공포는 무엇일까? 공포의 본질적 특성은 그것 때문에 생명을 박탈당할 정도까지의 위험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공포는 쾌의 감정이 아니라 불쾌의 감정이다. 바크는 공포를 세 가지로 구분한다. 먼저 즉각적 공포가 있다. 대상 그 자체가 직접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간접적 공포가 있다. 직접적인 공포의 대상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추적 공포가 있다. 대상이 공포와 유사한 방식으로 작용하는 어떤 특성이 있기 때문에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다. 세 가지의 공포는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조건이 된다. 우리는 공포를 느끼고 그것 때문에 고통스러워진다. 하지만 공포가 불러일으키는 고통스러움을 통제하고 감소시키면 유적 쾌를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