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연애의 시대 연애의 시대 줄거리 연애의 시대 독후감 연애의 시대 느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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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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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연애의 시대
누군가를 마음에 담아 두고 그리는 일에 대해서야 굳이 그 기원을 찾아볼 수도 없고, 찾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연애’나 ‘사랑’이라는 말에 대해서라면 문제는 조금 달라진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태고 적부터 당연히 사람은 이렇게 살아왔으리라 생각하는 부분들 가운데는 의외로 ‘근대’이후 형성되어온 것이 아주 많다. ‘연애’나 ‘사랑’이라는 말도, 그리고 어쩌면 낭만적 연애와 자유연애에 근거를 둔 결혼이라는 관념도, 실은 근대가 만들어낸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1920년대 초반의 문화와 유행을 통해서 연애를 알아보면서, 우리나라 연애의 기원을 찾아가는 책인 것이다. ‘연애’라는 말이 언제 출현했는지 정확히 짚어내기는 어렵다. 1913년 이상협의 『눈물』에서도 “좋으면 평생의 행복이 되고 흉하면 생명까지 잃는, 불보다 뜨겁고 물보다 위태한 연애라 하는 것” 이 문제가 되고 있다. 초창기부터 ‘연애’는 주체가 느끼는 감정 자체보다 상대와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예외가 없지는 않다. 예컨대 1913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국의향』에는 “국향의 얼음같이 식었던 연애는 이제 다시 열렬한 기운을 회복하였더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때 ‘연애’란 감정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라고 보아야 하겠다.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김기진은 “연애라는 말은 근년에 비로소 쓰게 된 말”이라고 설명하였다. 78년 전만 해도 연애라는 말이 없었으나 그 후 자유연애라는 말의 약어로 널리 쓰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김기진, 「관능적 관계의 윤리적 의의 : 연애문제소고」, 『조선문사의 연애관』, 설화서관, 1926, p.16.
연애 라는 말은 Love 중에서도 남녀 사이의 사랑만을 번역한다. 신에 대한, 인류에 대한, 부모에 대한, 친구에 대한 사랑은 모두 ‘Love’ 이지만 ‘연애’는 아니다. 유럽에서는 그리스어를 라틴어로 번역할 때 ‘아가페’와 ‘에로스’가 Amor Dilectio Caritas 등으로 뒤섞이면서 혼란이 개시되었다고도 한다. ‘Love의 포괄성이란 혼란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이다.
‘연애’란 그 시대의 상황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1919년 31운동이 지나가고 난 후 곧, 교육열과 문화열이 팽창해 오르던 무렵 ‘연애’는 시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연애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했는가, 어떻게 사람들을 변화시켰는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920년대 후반이라는 시기의 새로운 조류, 새로운 갈등, 무엇보다 새로운 혼란을 『무정』만큼 잘 표현한 텍스트는 없다. 여학생과 기생이라는 두 존재를 극적으로 조명해낸 것도 『무정』이었다. 선형과 혼약이 이루어진 후일까지도 형식의 마음을 쇄락하게 만드는 것은 고운 적삼아래 비치는 살결, 은근히 풍기는 향내, 그리고 풍성한 까만 머리다. “처녀의 까만 머리와 쪽찐 서양 머리에 꽂은 널따란 옥색 리본”, 무엇보다 형식의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전형적인 여학생 복색이다. 앞머리를 쑥 내밀게 빗는 대신 가르마를 비스듬히 타고 뒷머리를 올린 트레머리 또한 서양 부인의 치장과 비슷한 모양새로 각광을 받았다. 둘을 통칭해 “양쪽쪘다”고도 했고 “하이칼라 트레머리”라고도 불렀다. 신소설 『박연폭포』(1913) 등을 통해 이 같은 머리형의 선구를 엿볼 수 있다.
『무정』이 발표된 1917년까지만 해도 여학생은 그리 일반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점차 대중적 확산을 준비하면서 여학생은 기왕의 복장을 조금씩 변형한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댕기머리는 줄어들고 트레머리가 유행했으며, 정강이께에 올라오는 짧은 통치마가 공식화되었고, 발에는 서양버선, 즉 양말에 굽 높은 구두를 신었다. 소란이 있긴 했었지만,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던 장옷도 벗어던졌다. 대신 양산을 펴서 얼굴을 가리고 손에는 꽃무늬 책보나 손가방을 들었다. 여학생의 복장이 대중적으로 각인되기 시작할 무렵, 거리에는 마찬가지 복색으로 차린 또 하나의 집단 기생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기생의 모습은 점차 여학생의 외양과 비슷해져갔다. 기생이 여학생을 모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여학생이 기생을 모방한 일도 없지 않았다.
정사 파트너로서의 기생 이전에 연애 파트너로서의 기생이 존재했을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무정』의 월화가 품었던 연정은 그것을 예비한 것이었다. 1920년대 초반 한국 근대 소설에 선보인 기생의 모습은 대체로 그러하였다. 유행을 선도하고, 순정을 키워내고, 목숨 건 사랑의 신화에까지 도전했던 1920년대 초의 기생, 이들은 여학생과 경쟁하고 동시에 여학생을 모방했지만 위태로운 줄타기가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1919년 31운동 이후 ‘개조’는 사상계의 유행이었다. 카펜터러셀 등 개조의 사상가들은 허위에서 실로, 소유 충동에서 창조 충동으로 세계의 기본 동기가 바뀌어가고 있다고 역설하였다. 又影生,「근대노동문제의 진의」, 『개벽』, 1호, 1920.6, p.69.
1920년대는 ‘신여성’의 시대였다. ‘신여성’의 의미가 명확히 규정된 적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1930년대에 접어든 이후 주요섭이 “신식 교육의 중등 정도를 마친 여자”를 신여성이라고, 그렇지 못한 여자를 구여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가장 적절하리라는 의견을 피력한 기록이 남아 있는 정도다. 주요섭, 「조선여자교육사」, 『신가정』, 16호, 1934.4.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것이 “사랑”이며, “사랑의 나타내는 온갖 형상 가운데 가장 고상하고 완전한 것”이 가정이라는 생각은, 1910년대 말이면 이미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김기전, 「甲子 그믐에 : 잡감의 二三」,『신여성』, 2권, 12호, 1924, p.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