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 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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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국가의 기억, 미망인의 기억, 할머니의 기억
-「전쟁미망인, 한국현대사의 침묵을 깨다」를 읽고-
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고들 말한다. 전쟁의 한복판에는 전쟁 당사자보다 비무장 약자들이 더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전쟁의 ‘목적’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이들에게는 승리와 패배의 개념 역시 무의미하다.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만이 구분될 뿐이다. 우스운 것은 앞서 말한 전쟁의 ‘명분’이 항상 약자와 소수자 보호라고 주장된다는 점이다. 물론,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실상 이들이다. 이임하 작가는 이를 ‘전쟁의 아이러니’라고 표현하였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트라우마인 6.25 전쟁 역시 비슷한 양상을 지닌다. 결과적으로 전쟁의 폭력은 ‘빨갱이’의 책임으로 치부되었으나, 약자에게 가해진 폭력의 주체는 비단 북한과 중국 뿐만은 아니었으며, 폭력의 형태 역시 무기를 이용한 직접적 타격만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서울을 수호하겠다고 호언한 이승만은 그 시각 이미 대전으로 피신해 있었으며, 한강 인도교는 이튿날 새벽 국군의 손에 폭파되었다. 국가의 말을 철썩 같이 믿고 기다린 이들에게 서울수복 후 돌아온 것은 누군가에게 밥 한 끼 해준 것을 빌미로 씌워진 ‘국가반역죄’였다. 전국 각지의 길거리에서는 무고한 민간인이 무수히 학살당했다. 국가가 강제로 동원해간 남편이며 아들은 소식이 막막했고, 가장을 잃은 가족들의 생계 역시 막막했다. 이념을 위시한 사회 분위기에 이웃은 생활의 공동체라기보다 감시의 그물이 되었다.
이처럼 전쟁의 책임은 국가에 있으며, 국가 역시 전쟁 중 약자들을 탄압한 폭력 중 하나이기에 전후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 역시 국가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 사회에서, 전쟁의 고통과 피해를 뒤돌아보고 그것을 넘어서려는 작업이 과연 얼마나 진행되었는가? 오히려 다양한 전쟁경험을 억누르고, 오직 하나의 경험만을 공식 기억과 기록으로 남기려 하지 않았는가? 작가는 한국전쟁 기념사와 같은 공식적인 기록이 대개 북의 침략은 자유를 위협하는 행위이므로 세계가 침략자를 분쇄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당면한 과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끝맺는다는 점을 꼬집었다. 이는 학교 교육에서 역시 마찬가지라 느껴진다. ‘북한의 남침-유엔군의 개입-9.28 서울수복-중공군 개입-1.4 후퇴-휴전 협정 조인’. 건조한 도식 속에서 강조되는 것은 국가와 주요 군의 움직임뿐이며, 희생자들이 가지는 다양한 폭력의 기억은 사망자와 부상자 수를 기록한 표에서 숫자로 뭉뚱그려질 뿐이다.
이를 보면, 공식화된 역사의 기억에는 항상 지배집단의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는 듯하다. 전쟁에서 약자들이 입은 상처에 이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보면, 공식화된 역사적 기록의 한계를 읽을 수 있다. 편향되고, 왜곡되었으며, 억압되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해줄 수 있을 만한 것으로 주목받은 것이 바로 구술사이다. 구술사는 해당 역사적 경험의 주체가 된 개개인의 목소리에 주목한다. 앞서 읽었던 에 표현된 바와 같이, 구술은 ‘가장 아래에서부터의 기록’이자 ‘가장 어두운 곳으로부터의 기록’이다. 따라서 구술사를 이용하면, 공식 역사에서 일부 지배층의 특정 목적을 위해 소외되거나 억압되어온 약자와 소수자의 경험들을 역사의 전면으로 드러낼 수 있다.
따라서 작가는 전쟁에서 최약층이라 할 수있는 ‘미망인’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구술을 택했다. 역사 속에서 여성은 주체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했던 까닭에 전후 처리 과정에서도 아무도 그들에게 ‘전쟁과 생활’에 대해 묻지 않았다. 작가는 전쟁미망인에게 녹음기를 가져갔고, 녹음 내용을 여과 없이 서술한 책을 통해 전쟁의 참담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전쟁 중 가족과 이웃공동체는 어떻게 파괴되었는지, 폭력은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작동하였는지, 전쟁 후에는 트라우마적 폭력이 어떻게 재생산되었는지. 미망인들은 비로소 오랜 침묵을 깨고 나왔다.
첫 장에서, 책은 군경미망인과 피학살자미망인, 상이군인미망인이 겪은 전쟁경험에 대해 묘사한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고, 국군이 수세에 밀리자 국가는 무작정 개인을 동원했다. 전쟁미망인은 이 순간, 즉 남편과의 이별의 순간을 가장 또렷이 기억했다. 동원으로 인한 남은 가족의 생활고는 처음부터 고려되지 않았으며, 군이나 노무자, 국민방위군으로 차출된 남편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여성들은 남은 가족을 이끌고 힘든 피란길에 올랐다. 대개 피난에는 성적 존재로서의 주체는 존재하지 않아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피난에 대한 이야기는 한결같이 비슷하다. 그러나 전쟁미망인에게 피난은 무성적 존재가 아니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임신과 출산을 체험한 몸은 분명한 여성의 존재였으나, 그렇다고 어머니나 아내로서의 느낌은 아니었다. 세상을 경험하는 몸적 주체였을 뿐이다.
2장에서는 이후 가장 없이 생계유지를 위해 직접 경제전선에 뛰어든 전재미망인의 다양한 사례가 나타난다. 미망인의 자녀들은 이 시기의 어머니를 독선적이리만치 강인한 모습으로 묘사한다. 농촌거주 미망인은 농업노동에 종사했는데, 주로 남성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논농사에 나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이들을 ‘치마를 둘러서 여자지 남자 하는 일 혼자 다했다’고 기억했다.
또한, 여성이 소비자가 아닌 판매자로서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든 것 역시 이 시기였다. 특별한 기술이나 자본을 가지지 못한 미망인들은 땔감을 줍고 채소를 따다 행상을 벌였고, 밑천이 모이면 바리바리 옷을 이고 나와 좌판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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