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금작물의 도입에 따른 변화된 토지이용방법과 노동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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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금작물의 도입에 따른 변화된 토지이용방법과 노동형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환금작물의 도입에 따른
변화된 토지이용방법과 노동형태
▷환금작물
정부가 경제 개발 정책을 시행하면서 제주사회의 경제구조 또한 변화되었다. 각 마을마다 항만시설이 정비되었고, 육축사업이 시작되고, 밀감농사가 시험적으로 시작되었다. 황금작물은 고구마와 유채재배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두 작목은 제주도에 가장 적응적인 것으로 평가되었다. 쌀, 보리, 조의 재배면적은 감소했지만 고구마나 유채의 재배면적은 급격히 증가하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는 고구마와 유채재배의 절정기였다. 그러나 70년대부터는 밀감농사의 영향으로 이러한 작물들의 재배는 급속도로 줄었다. 초기의 이들 작목은 가격변동의 기제와 같은 환금작물경제의 기본구조를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하였고, 생산물의 유통구조와 이후에 전개될 밀감농사를 위한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여 본격적인 환금작물 농업을 전개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밀감농업은 오래부터 재배되고 있어서 제주사람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 종류도 다양해서 자신의 울타리에 누구나 한두 그루씩 심어 두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귤을 환금작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달밭마을은 해안지대에 위치함으로써 밀감과 화훼를 양대 산업으로 하고 있는데, 이러한 곳에서 조차 197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본격화 되었다. 달밭마을은 논농사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에 비해 부촌으로 인정되었고, 논농사로 인한 경제적 우세는 새로운 농업인 밀감농사를 받아들이는데 소극적이게 하였다. 게다가 밀감농사는 해안지대보다 중산 간에서 가능하다는 인식과 경사지가 아니면 밀감농사가 안 된다는 믿음도 밀감농사를 하는데 저해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달밭마을에서는 1970년대가 되어서 본격적으로 밀감농사가 시작이 되었다. 초기의 밀감농사는 상당히 수익성이 높았고, 달밭마을에서도 대부분의 농경지는 밀감과수원으로 개조되었다. 밀감농사는 대부분 자기 땅에서 하는데, 밀감나무는 한번 심으면 30년 정도씩 수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토지를 임대해서 농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밀감농사는 계절적으로 노동력이 편중되는 농업이고, 밀감농사를 위해서는 전정, 농약살포, 비료주기 등의 일이 요구되지만 그것보다는 밀감 따기에 많은 노동력이 요구된다. 11월이나 12월에 노동력이 부족해 이때가 되면 인건비가 과다하게 형성되었다. 우리 집도 귤 농사를 하는데, 이때가 되면 시험이 끝나자마자 바로 과수원에서 일을 해야 한다. 다른 일을 모두 제쳐두고 하루 종일 귤 수확에 힘을 보태야 하며, 다른 임노동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가서 일하게 되면 인건비가 줄어든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조금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친척들이 자발적으로 와서 귤 수확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우리 부모님은 나이가 다른 농사 자들 보다 어리기 때문에 손쉽게 수확을 하지만, 동네 어르신들께서는 다른 노동력을 빌지 않으면 수확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다른 과수원은 대부분 수확시기에 임노동을 통해 수확하는 것을 자주 본 적이 있다.
제주도에서 하우스 농업이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초기에는 주로 채소류를 재배하였고 80년대 초부터는 열대과일을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부터 하우스 농업이 본격화 되었다. 70년대부터 본격화된 밀감농사의 결과로 어느 정도 자본이 축적되고 환금작물경제에 관한 지식이 늘어났고, 밀감농사로 형성된 판매경로는 하우스 농업을 시작하는 무형의 자산이 되었다. 밀감농사로 맺어진 거래관계는 하우스농업에도 그대로 유지되면서 하우스농업은 밀감농사에 힘입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화훼농사는 백합으로 시작되었는데, 다른 꽃에 비해 손이 많이 가지만 재배하기는 상대적으로 쉬워 기술이 부족하던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재배되었고, 화훼재배에 대한 기술이 축적되면서 품종이 다양해졌다. 달밭마을에서는 밀감농사는 주로 부모세대가 하며, 하우스농사는 자식세대인 30-40대가 중심이 되어 하고 있다.
▷토지이용방법의 변화
밀감농사가 도입되면서 토지 이용방법이 변화되었는데, 중산간지대가 밀감농원으로 변하면서 밭의 중요성이 높아졌고 논의 생산성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이후 논은 대부분 마늘 재배지로 이용되었고, 노동력 부담과 저곡가 정책으로 인하여 쌀농사는 쇠퇴하고 말았다. 하우스 농업이 도입되면서 토지 이용방법이 또 한 번 변화하게 되었다. 달밭마을은 밀감농사 면적이 적어서 다른 마을에 비해 가난한 마을로 인정되었는데, 하우스 농업을 도입하면서 부촌으로 인정되었다. 하우스 농업은 수분이 높은 논에서 가능하였기 때문에 달밭마을이 인정을 받았으며 다시 논의 가치가 높아졌다. 해안지대의 논은 하우스로 변화되었고 작물이 하우스 안에서 자라기 때문에 자연재해의 피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