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 야스쿠니 문제를 읽고 느낀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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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야스쿠니 문제’를 읽고 느낀 점
야스쿠니신사에 대해서 말할 때, 가장 먼저 정립되어야 할 것은 야스쿠니신사의 성격을 정의내리는 것일 것이다. 야스쿠니신사는 종교적인 성격도, 정치적인 성격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정부가 선택한 종교적인 성격의 야스쿠니신사가 순수하게 정치적인 성격을 배제하고 있다면 지금 와서 문제되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야스쿠니신사를 둘러싼 문제 가운데 가장 자주 제기되는 문제는 바로 유족의 문제일 것이다. 현재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인 전사자뿐만 아니라 한국과 대만의 전사자들 또한 함께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 또한 일본인 전사자의 유족들 중에서도 ‘반 야스쿠니’ 유족이 존재한다. 야스쿠니신사의 지극히 사적인 원칙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수많은 유족들의 분사 요구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죽은 가족을 앞에 두고 가장 먼저 찾아오는 감정은 슬픔일 것이다. 하지만 야스쿠니신사는 마음껏 슬퍼하는 것조차 억압한 채, 당신의 아들이, 당신의 남편이, 당신의 아버지가 국가를 위해서 싸우다 죽었기 때문에 신으로 모셔지는 기쁨을 느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왜곡된 인식은 전쟁에 나가 전사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겨서 일본 정부의 군국주의 형성의 협조가 되고 말았다.
야스쿠니신사는 군사시설일지언정 야스쿠니 신앙은 확실히 종교였다. 나라를 위해 스스로를 바치는 모든 일본인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국가라고 하는 ‘신=절대자’가 보증한다는 바로 그 체제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야스쿠니신사의 합사 기준에 함포사격 등으로 죽은 일본인 민간인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된다. 이들 또한 국가의 군국주의의 희생양임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신사에서 신으로 모셔지지 않는다는 점은 야스쿠니신사의 합사 기준이 천황을 정점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야스쿠니신사는 천황을 위해서 싸우다 죽은 사람들만을 신으로 모시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고인의 명복을 비는 종교시설의 성격보다 천황을 뒷받침하는 군사시설의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도쿄재판에서 전쟁범죄자로 판결 받은 A급전범들이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천황의 지휘아래 전쟁을 주도했던 인물들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아시아의 수많은 희생자들과 일본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의 입장에서 이들의 합사는 단순히 추모의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보기 어렵다.
일본에서는 총리의 신사참배 문제를 전통과 문화의 산물로 보려는 시각도 존재한다. 야스쿠니신사 공식 참배에 관한 여러 가지 소송에서 한 번도 합헌 판결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주장하는 바는 이렇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의 문제에는 헌법의 문제, 정치의 문제, 문화의 문제 이렇게 세 가지 측면이 있는데 심의는 거의 헌법 법전의 해석론만 다루고 있고 정작 중요한 문제인 문화의 문제는 빠져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라는 것은 한 국가의 온 국민이 함께 향유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신사는 자신의 기준에 부합되는 사람만 선별해서 신으로 모시는 신사이기 때문에 이는 결국 문화론을 넘어선 국가의 정치적 의지인 것이다. 더군다나 일본인 전사자일지라도 적으로 죽으면 함께 제사지내지 않는 것이 야스쿠니신사이다. 이는 한 나라의 문화론적 측면으로 설명되기엔 매우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신도(神道)’는 전통적인 일본 고유의 민족종교이다. 신도와 국가신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신도는 오랜 역사를 통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국가신도는 단기간에 만들어져서 사람들에게 강제된 것이라는 점이다. 국가신도는 일본 신도의 역사에서 보건대 그 발전의 결과로서 성립한 것이 아니다. 전통적인 신도에서 많은 소재를 받아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메이지 신정부가 강력한 정치적 의도 아래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일종의 이데올로기다. 원래 신도는 천여 년의 역사를 가진 불교와 합쳐져서 따로 떼어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밀접히 융합한 상태에 있었다. 거기에다 유교와 음양도 등의 이론까지 끼여 들어가 있었으므로 만일 신도의 자연적인 발전 결과를 중시한다면 신도를 이들 종교로부터 분리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것을 정책적인 목적을 위해 강제로 분리시키고(신불분리), 다양한 유래를 갖는 전국의 신사를 정리 재편하여 계열화시켰다. 그리고 이세신궁을 그 중심에 위치시켜서 천황과 신궁과의 관계를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 천황은 유일절대의 ‘현인신’으로 설정하여 ‘제정일치’의 복고적인 이념을 재구축하고자했다. 만세일계의 천황이라는 천황의 정통성을 강조하면서 국가신도와 종교적인 결합을 꾀하였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결코 종교적인 것이 아닌 정치적인 것이었다. 천황의 존재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던 민중들에게 정치적인 모습의 천황은 쉽게 흡수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민중들의 아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신도의 종교적인 모습을 이용하였던 것이다.
국가신도의 형성과 함께 다른 종교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같은 신도 안에서도 국가신도와 사상의 맥락이 다르면 다른 종교에게 가한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국가신도를 모든 종교 위에 위치시켰다. 신앙의 자유를 두었다 하지만 국가신도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타 종교는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야스쿠니신사는 단순한 종교법인이 아니라 정치력을 동반하고 국가신도를 바탕으로 한 국립 전몰자 현창 시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