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신학사상사] 토착화 신학 논쟁 한국 토착화 신학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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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학사상사] 토착화 신학 논쟁 한국 토착화 신학의 흐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토착화 신학 논쟁
한국 토착화 신학의 흐름
들어가며
1960년대는 소위 ‘한국적 신학’이 등장하는 시기였다. 서구의 철학사상과 신학방법을 답습하며, 번역신학에 주력하다가 ‘복음’을 한국의 상황에서 해석하려는 토착화 신학이 등장하였다. 감리교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토착화 신학은 1963년으로 유동식과 전경연, 윤성범과 박봉랑의 논쟁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도 토착화에 관련된 논문은 있었으나 김광식, “한국토착화신학 형성사,” 「기독교사상」 35(1991. 6), 10; 장병일(張炳日)은 토착화론의 선구자라 할 수있다. 그는 「기독교사상」의 편집자였는데, 토착화에 지극한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윤성범의 제자인데 토착화와 관련된 논지를 먼저 내 놓았다. 「기독교사상」 1961년 12월호에 그는 “단군신화에 대한 신학적 이해- 창조설화의 토착화 소고”라는 논문을 발표해 토착화의 개념을 문제 삼았다. 이 후 일반적으로 토착화에 대한 신학적 정의를 내린 것과 토착화 논쟁의 도화선이 된 논문으로 1962년 10월 「감신학보」의 유동식의 것을 꼽는다.
1962년 「감신학보」에 실린 유동식의 “복음의 토착화와 한국에서의 선교적 과제”를 토착화 논쟁의 발화점으로 본다. 유동식, “복음의 토착화와 한국에서의 선교적 과제,” 「감신학보」, (1962. 10), 58. ;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 (서울: 다산, 2000), 288.
이듬해(63년)에 전경연이 이 논문에 답하고, 신학자 이외에도 많은 학자들이 논쟁에 참여함으로, 학술지 상에서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동시기에 윤성범과 박봉랑의 “단군신화 논쟁”도 시작되었다.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편. 『한국 기독교의 역사 Ⅲ』, 202; 유동식과 전경연의 논쟁이 토착화의 필요성 내지 방법론을 둘러싼 다소 추상적인 논쟁인데 비하여, 윤성범과 박봉랑의 논쟁은 단군신화의 해석을 둘러싼 논쟁으로 보며, 이것이 토착화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방향문제로 전환한 것이라 한다.
토착화의 필요성이나 방법론, 타당성 등을 놓고 다양한 시각으로 논쟁이 발생한 이후 윤성범의 ‘성의 신학’, 유동식의 ‘풍류신학’ 등 체계를 갖춘 ‘토착화 신학’(한국적 신학)이 등장하였다. 본 발제에서는 1960년대 이후 한국 신학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토착화 신학의 흐름을 보고자 한다. 토착화 신학의 논의에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최병헌, 윤성범, 유동식, 변선환, 김광식 등의 토착화 신학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그 전개를 고찰해 볼 것이다. ‘토착화’의 다양한 정의와 기독교가 정착하며 진행된 토착화의 실례(성서번역이나 예배방식 등)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을 것이다.
1. 최병헌(1858~1927)의 비교종교학적 토착화 신학 - 변증론
한국적 신학으로서 ‘토착화신학’의 본격적인 논의는 일반적으로 1960년대 이후를 말하지만, 토착화 신학의 전체적 맥락의 전개로 볼 때, 최병헌의 비교종교론을 그 시효로 볼 수 있다. 서정민, “한국교회 ‘토착화’와 ‘토착화 신학’에 대한 역사적 이해,” 「한국기독교와 역사」, 18(2003, 2), 161; 김광식, “한국토착화신학 형성사,” 「기독교사상」, 35(1991, 6), 7; 서동원. “토착화신학에 대한 역사적 고찰.” (광주가톨릭대학교대학원 조직신학전공 석사학위논문, 2001), 139.
김광식은 최병헌이 성서에 증언된 그리스도의 진리만이 절대적이라고 믿었으나 다른 종교를 덮어놓고 정죄하거나 배척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절대성을 주장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최병헌은 기독교 신앙의 명백한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타종교의 상대적인 진리도 부인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기독교를 비교우위에 두고 기독교 신앙을 변증한 것이다. 김광식, “한국토착화신학 형성사,” 8; 유동식은 최병헌이 종교 자체를 충분히 논의한 다음에 기독교의 입장에서 반성, 논평한다는 데 탁사 종교학의 특징이라고 지적한다. ; 유동식. 『한국신학의 광맥』(서울: 다산글방, 2000), 96.
유동식은 타종교를 대하는 개신교 선교의 입장을 1) 배타적 변증론, 2) 포괄적 성취론, 3) 다원적 대화론으로 설명하면서 최병헌의 신학을 ‘포괄적 성취론’이라고 보았다. 유동식, “한국의 종교적 상황과 종교신학의 과제,” 박상증 편저, 『한국교회와 에규메니칼 운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382 이하,; 변선환, “탁사 최병헌 목사의 토착화 사상,” 「기독교사상」 37(1993,3), 77에서 재인용.
“결국 최병헌이 기독교적 구원론과 인격적 하나님의 개념을 내세우는 입장에서 각 종교의 문제를 비판 반성하는 태도에서 출발한 것으로 기독교가 종교의 최고 위치에서 다른 종교들을 완성시킨다”는 입장이다. 서정민, “한국교회 ‘토착화’와 ‘토착화 신학’에 대한 역사적 이해,” 162; 서정민은 이러한 입장이 초기 감리교 신자들 뿐 아니라, 채필근, 박형룡 등의 장로교 신학자들에게도 나타남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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