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군사정권이후의 브라질 현대정치사 198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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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군사정권이후의 브라질 현대정치사(1985-2004)
군사정권이후의 브라질 현대정치사(1985-2004)
Ⅰ. Neves, Tancredo de Almeida, 1985
Ⅰ-1.네베스의 선출배경
1910년 미나스제라이스주에서 출생하였고, 미나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변호사 및 지방검사를 거쳐 1934년 시의원, 1947년 미나스제라이스 주의회 의
원, 1951년 연방하원의원에 선출되고, 쿠비츠세크 정부의 재무장관으로 등용
이었다. 1952~1954년까지 바르가스 정부의 법무장관을 지내고, 브라질은행장을
역임하였다. 1960년 미나스제라이스 주지사 선거에서 낙선하였으나, 1961년
9월 신설된 총리로 지명되어 1964년 무혈쿠데타로 실각할 때까지 재임하였다.
온건한 중도정책을 견지하여 쿠데타 이후에도 계속 하원의원을 지내 5선 의원이
되었다. 1965년 브라질민주운동당을 창당, 1979년 상원의원, 1982년 미나스제
라이스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1984년 8월 군부가 헌법개정을 주장하며 85년 선거에 민주사회당 후보로 하원
의원인 파울루 살림 말루프를 지명하자 84년 직선제를 주장하던 주세 사르네이
등 52명이 당을 탈당하며 자유전선 ( Partido Frente Liberal : PFL )을 결성, 네
비스는 자유전선과 제휴하여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었다.
85년 1월에 간접선거에서 네비스가 승리하여 21년 간의 군정에서 민정으로 이양
되었다. 그러나 네비스는 85년 4월 21일 취임직전에 사망하여 부통령인 조세 사
르네이가 의회투표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Ⅱ. Jose Sarney ,1985 ~ 1990
Ⅱ-1. 사르네이의 선출배경
1930년 피니에로스에서 출생하였고, 1953년 마라숀 주립법과대학을 졸업하였
다. 신문기자·변호사로 활약하다가 1956년 연방 하원의원이 되었으며 1965년 마
라숀 주지사에 취임하고, 1970년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1979년 사회민주
당(PDS) 총재로 추대되었으나, 1984년 탈당하고 새로이 자유 전선당(PFL)을 결
성하였다. 85년 그는 네비스의 사망으로 의회투표를 거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
다.
Ⅱ-2.사르네이의 정책
그가 집권한 후 노동자들은 3개월 단위의 임금 재조정, 실질 임금 인상 및 주 40
시간 근무를 요구하면서 수없이 파업을 단행하였다. 그는 86년 3월 경제 안정을
위해 크루자두 계획을 발표하고 우선 화폐 개혁을 통해 화폐 단위를 크루제이루 (
Cruzeiro )에서 크루자두 ( Cruzado ) 로 개편하여 1000대 1로 평가 절하를 단행
하였다. EH한 1년간의 물가동결, 임금동결, 국영 기업의 민영화, 정부 투자의
20% 축소 및 투자 우선순위의 재조정조치를 단행하면서 환율을 1달러당 13.88
크루자두로 1년 간 고정시켰다. 그로 인해 1986년 일부의 기업들이 투자를 축소
하였으나, 특이하게 브라질 경제는 양적성장을 이루었다. 그 결과 경제 성장률은
7~8%, 그리고 15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보였다.
86년 총선에서 민주 운동당이 상원 44석을 차지하였고, 11월 주지사 선거에서
도 23개중 22개 주에서 승리하였다. 1987년 신 헌법이 제정되어 대통령 직접 선
거제를 채택하고 87년 외채 이자 달러의 지불 유예를 선언하였으나, 정부와 국제
기관 단기 상업 차관과 이자는 계속 지불하기로 하였다.
네베스는 90년까지 대통령으로 집권하며 브라질의 경제발전의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Ⅲ. Fernando Collor de Mello, 1990-1992
Ⅲ-1.꼴로르의 선출배경
1990년 29년만에 직접선거에서 중도우파 신생 국가재건당(Partido Nacional Reconstrucao)의 꼴로르(Collor)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3월 15일 취임하였다. 그는 39세의 젊은 지도자로서 개혁신념에 가득찼던 그는 동북부 지역의 가난한 알라고아스주에서 주지사를 역임하며 명성을 날렸던 인물이다. 이미숙김원호, 「남미가 확 보인다」, 서울, 학민사, 2001년, p. 82
그와 선거에서 맞섣던 노동당 소속의 룰라(Luiz Inacio "Lula" da Silva)는 북동부 페르남부쿠 태생으로 초등학교 6년을 마치고 공장노동자 출신이었다. 선거에서 노동당이 내세운 주장은 모든 외채 상환의 중지, 토지개혁, 임금인상, 정치현대화, 물가동결, 그리고 국방부 재편과 민간인 국방장관 임명 등이었다. 이는 불우한 대중의 구미에는 맞았으나 지배계급인 엘리트 군인과, 중산층을 극도로 불안케 하는 공약이었다. 이에 반하여 인물이 잘나고, 집안이 번듯한 꼴로르는 정부의 부패와 비능률을 바로잡고 경제 발전과 현대화를 이룩한다는 평범한 공약을 내걸었다. 브라질의 정치풍토는 노동당이 내건 개혁을 받아들일 단계에 와 있지 않았으므로, 꼴로르가 43%의 지지를 받아 38%를 받은 룰라를 물리치고 당선되었다.
Ⅲ-2. 꼴로르 대통령의 정책
꼴로르 대통령은 착실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기 위한 근본적이고도 신속한 조치와 인플레 억제책을 거듭 국민에게 약속하고, 연방정부 축소, 공기업 민영화, 시장경제 도입을 추진했으나, 국회에서의 지지기반이 약하고 또한 그의 정책을 뒷받침해 주는 세력도 없어 상황은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일년도 안 되어서 실업자는 전례없이 늘고, 인플레이는 월 16%씩 뛰니(1992년에는 25%), 직장을 가지고 있는 임금 노동자들은 생활을 꾸려나가기가 힘들었다. 1990년 공산품 생산은 8%가 떨어졌다. 1991년 외채는 1,200억 불을 넘었고 경제성장은 1.2%에 불과했다. 경제상태가 이러하니 교육이나 국민보건 문제 등을 돌볼 여유도 없어서 브라질 사회가 와해 위기를 맞고 있엇다. 이 모든 것을 브라질의 경제학자인 파울로 라벨로 데 카스트로(Paulo Rabello de Castro)는 “콜로르는 경제 문제의 진단과 대책에 있어 완전히 무능력했기 때문에 실패한 것이다 이윤희, 「내일의 나라 브라질」, 서울, 범우사, 1996년, p. 243
”라고 평하고 있다.
Ⅲ-3.꼴로르 대통령의 하야(下野)
이처럼 어려운 상태에서 1992년 중반에 접어들자, 대통령의 부정사건이 터저 정계는 말할 나위도 없고 온 나라가 들끓게 되었다. 즉 대통력이 친구이자 그의 선거위원장이었던 파울로 세자르 파리아스(Paulo Cesar Farias)를 이권에 개입시켜 막대한 돈을 챙겨, 수천만 불을 대통령의 개인 비밀구좌에 예치한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대통령은 브라질 역사에서 대도(大盜)의 낙인이 찍히고, 콜로르를 단죄하라는 성난 목소리와 데모대가 도시의 거리를 메웠다. 마침내 1992년 9월 29일에 하원은 441대 29로 대통력의 직무수행을 정지시키고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브라질 최초로 탄핵받은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퇴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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