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고전 읽기 자기 분야에서 세종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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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회과학 고전 읽기 자기 분야에서 세종 바라보기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사회과학 고전 읽기
(자기 분야에서 세종 바라보기)
아직 전공할 과를 배정 받지 못해서 정해진 분야가 있지는 않지만 이 글에서 저는 제가 전공하고자 하는 사학과라는 것을 가정하여 역사학도의 입장에서 이 글을 쓰려고 합니다.
현재의 한국의 일반적인 사회 담론과 그리고 이 책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세종은 조선 시대 뿐 아니라 한반도 전 시대를 통틀어서 가장 큰 업적을 세운 지도자 중 하나로 추앙 받고 있다. 셋째 왕자라는 불리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능력을 인정받아 왕이 되었고 가장 큰 업적으로 인식되는 한글 창제, 또한 중국, 일본 사이에서 상황에 맞는 외교력 그리고 조선조 처음이자 마지막인 영토 확장발전의 업적을 이루었고 과학기술, 음악 등의 발전처럼 많은 업적을 이룬 왕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세종이라는 인물을 항상 긍정적인 입장에서 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그리고 세종의 많은 업적이 서술되어 있는 조선왕조실록 등 많은 역사서는 역사의 승리자 긍정 방향에 따르면 과장 된 것이 아닐까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세종을 그러한 업적으로만 긍정적으로 판단한다면 정도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현대 우리나라의 근대 산업화를 지도한 박정희 대통령이나 경제 호황을 이끈 전두환 대통령도 같은 급으로 훌륭하게 추앙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이들은 자신들의 업적 뒤에서 발생하였던 비민주성, 인권 탄압으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역사란 과거의 것을 현재 그 시대의 입장에서 재정립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역사학의 관점 입장에서 과거 세종의 존재에 대해 비판적으로 현재의 입장에서 재정립해 보고자 한다. 또한 역사는 과거시대의 총체적 모습을 살펴보고 그것을 현재와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특정한 분야 언급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세종을 평가하는데 있어 다양한 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조선 시대에 비해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조선시대의 계급 제, 군주제에서 이제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계급이 사라지고 만인이 법적으로 평등하며 자신의 의견을 자유로이 주장할 수 있는 사회에 이르렀으며 나라의 지도자도 국민 자신들의 손으로 뽑는 상황에 이르렀다. 또한 과거에 비해 다양한 국가가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그에 맞춰 다양한 국가 사람들이 한국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는 세종이 있었을 때에 비해 국민들의 다양한 비판적 여론의 힘 또는 다양한 매체의 의견, 의회에서의 견제 등 지도자의 통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방면에서 정보가 보다 개방화되어 시민단체와 같은 다양한 결사체들도 정치에 참여 하게 되어 보다 다양한 주체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첫째, 이런 입장에서 세종이 보여 주었던 치세 모습은 긍정적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 그는 태종 때 까지 이어지던 독단의 정치를 벗어나 국가적으로 중요한 중대사에 있어 의정부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조정 신료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했고 민간의 의견도 널리 청취했다라고 전해진다. 이러한 협의의 정치는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현 사회에 있어 의견 수렴에 있어 지도자가 보여 주어야 할 필수적인 자세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다양한 주체들이 자신들의 의견만을 내세우면 사회는 혼란스러워 질 수 있는 법, 다양한 주체들 간의 협의를 중시했던 세종이었지만 그는 또한 자신이 생각하기에 독단이 필요한 시점일 때는 확실하게 실현해 나갔다. 그 예로 지방 수령임기와 관련한 수령 6기 문제에 있어서 다양한 반대 의견이 있었다. 세종은 실록에서 보면 그들의 의견을 경청은 하였으나 자신이 생각한 대로 실행하였다. 또한 파저강 정벌에 있어서도 다양한 반대의견이 있었지만 이것을 실현해 나갔다. 이러한 점에서 세종은 민주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정치를 해 나간 지도자로 판단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존재한다. 세종이 많은 신하들의 의견 뿐 아니라 민간의 의견도 들었다라고 말하지만 그 의견에 그 당시 일반 백성들의 의견은 소외 되었다. 그때 당시 태종 이래로 백성들의 억울함이나 의견 조사를 위해 신문고를 설치 백성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였으나 실제로는 백성들의 의견을 듣는데 한계를 보였다. 세종도 이와 다르지 않아 민간의 의견을 듣는다고 해도 향촌에 있는 지방 유지들의 의견을 듣는 것에 그쳤을 것이다. 현재와 달리 소통 매체의 부재도 들 수 있겠지만 세종의 계급 제 내에서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현재 사회는 지구촌 사회라고 일컬어지는 다양한 국가와 국민들과의 조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 세종의 사회와 비교해 보았을 때 보다 외교적 능력이 요구되는 시대다. 세종이 당시 외교를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세종은 당시 명과 일본 그리고 여진 사이에서 각각에 알맞은 외교적 능력으로 명에는 사대정치, 일본과 여진에는 채찍과 당근을 제시하는 외교적 능력으로 조선 초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이민족의 침략을 최소화 하였고 이에 더해 조선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토 확장도 이루어 내는 실력을 보였다. 그러나 현재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은 신라 장보고 때부터 고려에 발전되었던 서역 또는 서양 사람들과의 무역을 통한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였던 모습을 이어나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외교를 통해 문화의 다양성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으로 보고 있다. 명으로부터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차적 문화일 뿐 한계가 있다. 직접 그 나라의 문화를 직접 받아들이고 소통을 통해 조선을 알려나갔다면 조선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 그로 인해 많은 문화가 들어와 조선사회에 보다 다양한 관점을 심어 주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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