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리트머스지, 중화반응 - 장로교 분열사를 통해 바라본 신학적 보혁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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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리트머스지, 중화반응 - 장로교 분열사를 통해 바라본 신학적 보혁문제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신학, 리트머스지, 중화반응(中和反應)
-장로교 분열사를 통해 바라본 신학적 보혁문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하면, 피차 멸망하고 말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갈라디아서 5장 13-15절, 표준새번역 개정판.
1.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교회가면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고, 맛난 간식을 준다는 옆집 아줌마의 손을 부여잡고 교회라는 곳을 갔다. 두 손을 모으고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나를 위해 죽었다는 말에 가슴 뭉클해졌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기억나는 것이 ‘대한예수교장로회 OO교회’. 그런데 친구도 교회를 다니는데 감리교회란다. 감리교는 뭐하는 곳일까? 왠지 이상할 것이라는 느낌.
중등부에 가서 전도사님에게 들었던 ‘장로교분열’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난 ‘통합’에 속한 학생이라는 것. 아 많은 장로교가 있지만 우리 편이 제일 좋은 것. 이후 연세대 신학과로 진학한 나를 걱정하시던 장로님이 던진 한마디. ‘거기는 신신학, 자유주의니까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 20살이 되어서야 장로교, 감리교 이외에도 많은 교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경계의 대상이던 난 장신대원에 진학했고, 영락교회에서 안수 받았다. 만나는 모든 이들이 호의의 눈빛을 건넨다. 족보에 오르고 반열에 오르니 좋긴 좋다. 게다가 백골부대에서 군목으로 활동했다. 물론 ‘신앙 전력화’라는 말에 염증을 느꼈지만 겉으로 보기에 신학적으로 사상적으로 완벽하게 검증됐다는 소리다.(국군의 날 기원은 서북청년출신이 주도한 백골부대가 38도선을 넘었던 날을 기념하여 재정되었다. 왜 조선광복군 창설일을 계승하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이 늘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006년 평양에 다녀오니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 (금강산도 아니고 평양이니 이해할 만은 하다) 일주일의 일정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돌아오니 날아든 문자. ‘군목까지 다녀오고 빨갱이 짓이냐?’ 발신번호미상의 짧은 글에 당혹감과 일종의 공포마저 느낀 가운데, 몇몇 사람의 얼굴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관계에 대한 의심과 확인’의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교회사를 기술해가는 과정 한국 개신교사 연구에 있어서 사관논의, 연구의 영역과 분류, 자료와 방법의 문제, 패러다임 전환의 과제에 대한 안내로 서정민, “한국 개신교사 연구의 경향과 과제”, 교회사연구 23집(2005):105-135가 있다.
에서 드러나게 되는 사관(史觀). 일종의 사가가 서있는 자리에서의 시점. 소위 ‘보혁(保革)’에 관한 논의의 초입으로 필자의 간략한 신력(信歷)을 적어보았다. 필자의 삶에서도 희미하게나마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신학에 있어서의 보혁문제. 보수인가 진보인가? 삶의 어느 부분을 잘라내어 보수다 진보이다를 논한다하더라도, 그 단층을 면밀히 살피면 빨강과 파랑은 양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혼재되어있을게다. 결국 ‘이념적 지형이라는 것이 딱딱 떨어지는 구획이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광범위한 스펙트럼 속의 어느 지점일 수밖에’ 김두식, “한국교회, 진보와 보수 어디만큼 와있나”, 기독교사상 566호(2006):24.
없는 얘기다. 신학적 지형이라는 것이 빨강과 파랑이라는 리트머스지의 색깔로 분간되는 이분법적인 논의가 아니라 프리즘을 통과하여 산발하는 다양한 빛의 조합 2006년 사학법개정과 국가보안법에 관한 논의로 불거졌던 한국교회와 신학의 문제에 있어 소위 ‘진보와 보수’에 관한 논의를 특집 ‘진보와 보수-네 이름을 묻는다’으로 다룬 기독교사상 566호를 보라. 그리고 각 글이 가지고 있는 미세한 온도차를 느껴보라. ‘한국교회, 진보와 보수-어디만큼 와있나’, ‘생활의 진보, 일상에서 깨어있기’, ‘동력을 잃은 진보, 퇴영하는 보수’, ‘기독교 진보진영, 접혀진 날개를 추스르고’
과 시간의 선상 위에 위치한다. 한편으로 제기하는 문제는 한국개신교의 역사에 언제 진보와 보수의 사상과 이념적 논의를 위한 공정한 장이 마련된 적이 있었냐는 말이다. 오히려 일방적 통제와 순응, 정죄와 사상적 거세라는 폭력적 방식이 주류를 이루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신학적 보혁의 문제에 있어 시간의 차이를 인정한다면 ‘정치사상적 좌표로 볼 때, 좌파 아닌 진보가 있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소간 우파인 동시에 진보라는 식으로 자신을 내세워야 정치적으로 생존이 가능했다’ 한종호, “동력을 잃은 진보, 퇴영하는 보수”, 기독교사상 566호(2006):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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