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연구 주요 저작 강독 - 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 북조선의 현재,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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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북한연구 주요 저작 강독 - 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 북조선의 현재,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북조선, 유격대국가에서 정규군국가로
(1) 강독한 저작의 주요 내용 및 논지 요약
1. 북조선을 어떻게 해독할 것인가?
수수께끼인 이웃 나라 / 지적 노력의 빈곤 / 방문기의 한계
북조선에 대한 여러 평가가 있지만 최근에는특히 북조선에 대해 반감과 증오, 조소와 매도, 공포 등을 조장하는 책이 넘쳐나면서 ‘이 세상의 지옥’이라는 평가가 굳어졌다. 그러나 일본에게는 이웃의 나라로 인간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필요한 최소한의 일이나 일본의 지식사회는 북조선을 연구해야 할 학문적인 연구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데, 이는 바뀌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1980년부터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감동하여 한국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오다 북조선에 관해 알지 못한다면 한국에 관해서도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북조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북조선에 대해 씌어진 대표적인 책들은 방문기들로 마츠모토 쇼오지 등이 북조선을 방문하고 돌아와 쓴 글들이다. 그러나 북조선은 사회주의국가로서 대부분 당과 국가가 선전하는 내용들 위주로 연구하는데는 쓸모가 없다 하겠다.
역사적으로 생각한다 / 항일유격전쟁의 연구 / 조선전쟁의 연구
북조선을 알고 싶은 필자가 취한 방법은 ‘역사적으로 생각한다’로 이 방법은 눈앞의 북조선의 모습을 바라볼 뿐만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 놓고 봄으로써 표면적인 관찰을 심화시킬 수 있다. 과거를 알면 현재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미래의 추측에도 도움이 된다. 이를 위해 미국이 공개한 노획 북조선 문서 등 자료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기도 했는데, 당시 ‘조선전쟁의 기원’을 쓴 브루스 커밍스와도 친분을 나누었다. 또한 북조선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일성의 만주항일전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하여 1985년에는 논문 『김일성과 만주 항일무장투쟁』을 발표하기도 했다. 1989년에는 황정엽 선생의 초청으로 북조선을 방문하여 당시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준비하고 있던 북조선 역사가들과 토론하기도 했다. 이후 중국과 소련에서 만주 항일운동 관계자로 등 해시대 관련 중요한 자료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새로운 자료 공개 관련 중요한 초점 중 하나는 ‘조선전쟁’이었다. 현재 조선반도의 대립을 가져온 원천은 조선전쟁으로,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조선반도의 역사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자료들은 현재 북조선, 한국,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을 종합해야만 비로소 연구가 가능하다.
북조선의 현재 / 자료의 폭
필자는 1985년 ‘북의 친구에게, 남의 친구에게’라는 논문을 통해 ‘유격대국가’라는 시각을 처음 내놓았다. 이렇게 북조선 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으로는 머번 맥코맥이 제시한 5가지 모델이 있는데, 첫째가 ‘사회주의국가’ 모델 둘째가 ‘유교적·봉건적 왕조’ 모델 셋째가 ‘유격대국가’ 넷째가 ‘코포라티즘국가’ 모델 다섯째가 ‘전체주의 모델’이다. 이외에도 스즈키가 제시한 ‘수령제’ 모델, 이종석의 ‘혁명적 수령관’과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을 자료할 때 소련과 동유럽 체제에 관한 지식을 충분히 활용하고 비교사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며, 또한 지도자의 계열, 파벌, 인사이동에 주의하고 다양한 내부 정보를 힌트로 삼아 이용하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할 것이다. 현재 북조선과 관련된 연구자료들은 묘석명에서 인터넷 홈페이지까지 무수히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다.
2.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국가신화와 역사의 진실 / 김일성의 성장 / 지린시대의 김일성
북조선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북조선 사람들이 현재 살아가는 기준이자 사상과 도덕의 모든 것의 기준인 김일성의 만주항일전쟁 역사를 우선 알아야 한다.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12년 4월 15일 평양 교외의 대동군에서 태어났다. 1926년 김일성이 14세되던 해에 아버지 김형직이 죽자 학업을 중단하게 되는데, 당시 다니던 화성의숙 시절에 ‘ㅌ·ㄷ(타도제국주의동맹)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는 신화가 있다. 1927년에 김일성은 지린의 유원중학교에 입학했고, 마르크스주의 청년문학가인 샹유에란 중국인 선생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김일성은 조선공산청년회 등에 참가, 활동하며 체포·투옥되기도 했으며 조선혁명에 집착하는 조선공산당 일파인 서울-상해파에 접근하였으며, 필자는 동만 지방에서 중공에 입당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만주항일전쟁의 시작 / 조국광복회와 보천보전투 / 동북항일연군의 위기 / 소련령으로의 피난 / 88특별여단 / 귀국
1931년 9월 일본의 만주침략이 시작되면서, 중국공산당의 만주 조직 중 구국군에 참가하여 항일투쟁을 벌인다. 김일성은 1932년 봄 안투에서 구국군 유사령부대의 별동대로서 조선인 무장대를 조직하게 되는데, 바로 이 부대의 발족일인 4월 25일이 현재 조선인민군 창설기념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초기 1933년부터 반(反) 민생단 투쟁이 벌어지며 많은 조선인들이 구속되거나 처형되는 비극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때 김일성은 몇 차례 의심받았으나 살아남는다. 이후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 제2군 제3사의 사장에 임명되어 활동하게 되고, 1937년 보천보 공격을 통해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러나 이후 일제의 진압작전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고난의 행군’작전을 겪으며 결국 김일성은 휘하 부대를 모조리 데리고 소련령으로 들어가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이후 1942년 보로시로프에 가까운 남야영에서 김정일이 태어난다. 그해 8월 동북항일연군 부대는 적군(赤軍) 88특별저격여단에 편성되는데, 이는 항일연군이 소련 적군에 흡수된 모습으로 인원들은 소련군 군복을 입고 소련군 계급을 달게 된다. 이후 김일성은 동·남만에서 활동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유명해진다. 결국 일본 항복 후 소련군이 북조선에 주둔하게 되면서 김일성도 조선에 돌아오게 된다. 일본의 가혹한 토벌작전을 견뎌내고 살아남아 60명의 부하와 함께 조국 땅을 밟았다는 사실에 대해 필자는 김일성이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며 이것이 만주항일전쟁의 진실이라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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