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 업적주의 문화 비판 - 발전

 1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 업적주의 문화 비판 - 발전-1
 2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 업적주의 문화 비판 - 발전-2
 3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 업적주의 문화 비판 - 발전-3
 4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 업적주의 문화 비판 - 발전-4
 5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 업적주의 문화 비판 - 발전-5
 6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 업적주의 문화 비판 - 발전-6
 7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 업적주의 문화 비판 - 발전-7
 8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 업적주의 문화 비판 - 발전-8
 9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 업적주의 문화 비판 - 발전-9
 10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 업적주의 문화 비판 - 발전-10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 업적주의 문화 비판 - 발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
교육신학의 문화적 접근은 크게 3부로 나눠져 있는데 1부에서는 현존하는 한국교육 모델의 분석과 평가를 위해 한국 정치, 경제, 교육제도를 살폈다. 한국은 유교주의, 식민주의, 군사독재로 이어져 오면서 업적주의 문화를 이루고 있다. 2부는 현존하는 교육 모델의 비판적인 성찰이다 지난 1970년대부터 새천년에 이르기까지 기독교교육은 사회를 변혁하고 자신의 영성 공동체를 변화시키려고 애쓰는 흔적을 보였다. 1970년대는 해방신학, 민중 신학과 함께 의식화 교육모델이 민주화 과정에 영향을 끼쳤다. 1980년대는 업적주의와 학업 중심의 신앙교육에 대하여 신앙공동체와 영성 교육이 대안으로 제시되었고 1990년대는 한국사회가 민주화과정으로 들어가는 단계의 구조를 볼 수 있다. 3부에서는 대안적 기독교교육의 모델 제시를 위한 교육신학의 새로운 접근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새로운 교육신학의 구조를 위한 비판적이며 문화적인 접근의 시도이다. 이론의 제시가 아니라 교육현장에서의 교육적 프락시스가 요구된다.
현존하는 교육모델로 한국의 어제와 오늘의 교육제도를 돌이켜볼 때 우리는 유교주의 전통과 신민지 제도의 여향아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유교주의에서 본 임영택 교수님의 가족 이야기를 다뤄 보자면 1세대인 조부모님의 세대(1890년대)는 신분적 계급이 뚜렷한 시대이다. 양반, 중인, 상인, 천이의 계급이 있고 직업도 ‘사농공상’으로 구분되어있다. 가부장제도로 인해 가정에서는 여성보다는 남성 중심, 어린이보다는 어른 중심의 생활을 하였던 것을 볼 수 있고 2세대인 부모님의 세대(1920년대)는 일본의 식민지라는 환경 속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등이 있었다. 일본 식민지 행활, 8·15해방, 한국전쟁 등 역사적 큰 사건들을 통해 사회제도와 가치의 혼란이 야기 되었다. 신분과 직업의 귀천이 명시적으로 사라지고, 기독교가 여성을 교육시킴으로 여성들이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을 볼 수 있다. 4세대인 교수님 세대(1950년대)는 일본의 식민지(1921-1945), 한국전쟁의 피해(1950-1953), 사업의 파산(1954-1960), 산업혁명의 혼란(1960), 동생을 잃고 (1965), 외조모의 사망(1973)등의 고난을 겪으며 일어나기 위해 애쓰는 어머니를 보고 영향을 받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아버지의 부재의 인식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제도가 여성에게 고통을 주고 경제생활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론적으로 제1세대와 2세대를 걸친 제3세대의 오늘 이야기는 유교적 가부장제도와 분단 사회의 문화 속에 놓인 이야기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또 다음 세대의 이야기로 연결되고 이야기들은 또 다른 사회 문화적 구조를 형성할 것이다. 여기에 교육과 종교는 사람들에게 문화적 접근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경제는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고 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중동국가와 세계의 전쟁은 평화 유지의 다목적 군과 함께 경제적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지난 1960년대부터 32년간, 즉 제 3공화국부터 제 6공화국까지의 군사 독재 면모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형성된 시민 문화의 구조를 파악해야 한다. 한국의 군사정부의 초기 단계는 현대화라는 이름 아래 그 나름대로의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군사정부인 제3공화국은 경제발전 계획을 단계적으로 실행함으로 한국을 경제 발전 대국으로 개혁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러한 군사주의 체제에서 우리는 계급 조직을 발견한다. 정부 경영과 국방산업 사이의 관계는 하나로 지배된다. 그 동안 한국은 분단 상황에서 전쟁경제를 일관되게 지속하여 왔다. 전쟁은 최신 무기 공급의 시험장이고, 그 무기들의 성능에 따라 제조회사의 주가는 올라가게 된다. 이것이 전쟁경제이다. 한편 한국 경제는 1997년 11월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적 원조를 받게 되었다. IMF의 원인은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오랜 시간 군사정부의 통치와 경제 정책이 첫 번째 문민정부에서 노출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 관계로 한국은 경제를 통한 신식민주의 현상을 또 다시 경험하게 된다. 군사주의는 신 식민주의를 가져온다. 신식민주의의 근원 중에 하나는 국방 정책이다. 신 식민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전쟁을 통하여 확장되고 있다. 1945년 처음으로 일본 히로시마에 핵무기(원자폭탄)가 투하됨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다. 전쟁은 끝났지만 핵폭탄으로 인한 피해와 질병은 아직까지도 고통을 주고 있다. 핵폭탄이 투하되었을 때의 그 경이감을 한민족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비러 핵폭탄의 위력으로 인해 일본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 영향으로 북한의 핵실험은 자국의 안전과 보호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는 핵물질 수출의 가능성과 아울러 전쟁경제의 깊은 정책이 담겨 있다고 해석된다. 핵의 위기는 물리적인 환경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삶과 행위의 문제가 된다. 핵문제는 사회적 정의의 이슈와 더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도 연결된다. 신 식민주의와 군사주의에 대한 한국의 문제는 무엇인가? 이것은 광범위한 사회적 이슈이며, 어느 간략한 성명서로 우리의 다짐을 발표할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서 유교주의의 전통과 일본의 식민주의, 그리고 현대사에 이어지는 신 식민지적 군사주의와 경제는 이 나라에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군사주의 정권 시대에 교회가 무엇을 했는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통일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군사주의 시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발표한 1988년 “민적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에서 잘 나타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72년 남북 간에 최초로 합의된 7·4공동성명에 나타난 1)자주 2)평화 3)사상·이념·제도를 초월한 민족적 대단결의 3대 정신이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기본 원친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신 식민지적 군사주의는 제 3공화국으로부터 제 6공화국(1961-1992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제5공화국 신군부시절의 광주 항쟁(1980년 5월17일)은 이 땅에서 군사 독재에 항거하는 절정을 이룬다. 1970년대 이후 21세기를 맞이하기까지 한국의 교육제도는 무수한 진통과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도 갈등을 일으키는 교육 제도는 대학입시 제도이다. 한국의 교육 제도는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교육의 제도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진통을 겼어 왔다. 1970년대 이후부터 한국 교육 제도의 큰 이슈는 민주화이다. 민주화의 운동은 학교 교육 제도를 비판적으로 반성하고 개혁하려는 움직임이다. 여기서부터 한국 교육 제도의 반성이 시작되고 개혁과 실천이 계속된다. 우리는 민중교육의 신천을 탐구하기 이전에 그 실천의 주요 동기를 물어야 할 것이다. 왜 그들은 교육의 민주화 운동을 신천하려고 노력하였는가? 그것은 교육현장에서 미래를 고민하는 학생들의 실존적 물음에 대해 함께 고민하던 교사들에게 비롯된 것이다. 현행 교육 제도 가운데 가장 큰 이슈는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 제도이다. 이는 대학을 들어가는 관문이자 또한 사회 진출의 관문이 된다. 입시 준비를 위한 사교육비는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국민이 사교육비에 투자하는 돈이 공교육비의 3배가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이처럼 입시 준비에 투입되는 돈이 가정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와 함께 비판되어야 할 질문은 입시 제도에 따른 교육 제도이다. 민중교육자들이 본 대학입시 제도는 입시지옥이다. 학생들이 인생의 기초를 세우고 자아정체성을 위해 경험하여야 할 무수한 학습을 버리고 오직 입시만을 위해 쓰고, 풀고, 외우고, 연습하는 행위는 인생의 낭비이다. 배움의 모순이다. 교육은 학습 내용뿐만 아니라 학교 내의 관료주의적, 권위주의적 행정 체제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체제는 교육의 자율성과 학습의 변화에 대하여 억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교과서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에 대하여 개혁을 추구하기 위해 교사들의 두 가지 실천 활동이 요구된다. 하나는 교사 자신이 커리큘럼을 만드는, 커리큘럼 개발의 문제이다. 커리큘럼은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의사소통이다. 또 하나는 교과서를 통하여 사회를 통제하려는 제도에 대하여 교사들의 민주적으로 연대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사회 통제를 위한 커리큘럼은 대단히 기술적인 통제이다. 교사들은 이를 감지하고 비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초기 기독교 선교는 교육과 의료 사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교회의 학교 사업은 개화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문맹교육, 여성해방의 교육, 민족교육, 신앙교육을 주도하였다. 기독교 학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사회 문화를 창출하는 큰 제도로 시대의 가치를 주도하여 왔다. 기독교 학교는 교회교육과 또한 연결된다. 역사상 교회의 주일학교는 로버트 레이크스라는 평신도 인쇄업자로부터, 교회 아닌 사례에서 시작되었다. 주일학교는 신앙과 일반 지식을 전달함으로 개인의 변화와 사회의 개혁을 목적으로 시도되었다. 그런데 주일 학교 교육이 교회에 들어오면서 교회교육으로 둔갑하였다. 기독교교육은 교회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사회개혁을 등한시하고 교육을 교회 안에만 가두게 되는 병폐를 가져왔다. 따라서 기독교 교육(주일학교)은 교회교육과 사회의 기독교 학교 사업을 병행할 때, 올바른 기독교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학교는 한국의 선교 초기부터 사회를 이끄는 개혁의 세력이었다. 개화기의 학교 사업은 이 땅에 문화와 사회를 지도하였다. 기독교 학교는 한국 사회의 교육적 과제를 안고 함께 변화를 모색하여야 한다. 첫째로 기독교 학교의 존재 이유를 바르게 세우고 실천하여야 한다. 잘 가르치고 효율적인 경영도 필요하지만 학교 사업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 둘째로 개인의 사립학교는 건학 이념과 함께 투자와 경영이 이루어져야한다. 교회의 교우들은 헌금으로 기독교 학교의 제정에 참여해야한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학교의 분위기를 되살리는 일이다. 학생들은 신앙과 가치관을 기독교 학교에서 배운다고 말한다. 넷째 신앙심과 실력 있는 교사, 교수, 직원을 정지하게 채용하여야 한다. 교사에 있어서 중요한 소명감과 헌신성과 사랑과 희망을 주고 대화하는 자세를 포함하고 있음을 말한다. 다섯째 교목실의 신앙 프로그램은 교세 확장의 안목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교 전체
오늘 본 자료
더보기
  •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해당 정보 및 게시물의 저작권과 기타 법적 책임은 자료 등록자에게 있습니다. 위 정보 및 게시물 내용의 불법적 이용,무단 전재·배포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저작권침해, 명예훼손 등 분쟁요소 발견 시 고객센터에 신고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