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교회사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 -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 생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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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야기 교회사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 -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 생애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야기 교회사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
※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은 누구인가?
첫 번째,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의 대표적인 책으로는 참회록, 혹은 고백록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신앙이 없이 방탕했던 시기와 마니교에 빠졌다가 기독교로 회심하기까지의 어거스틴의 참회 생활을 다루고 있다. 단순히 신앙고백의 차원을 넘어서서 책의 구성이 조직적이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두 번째,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의 본명은 라틴어로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이다. 뜻은 ‘좋은 징조의’ 또는 ‘덕망있는’이란 뜻을 담고 있다.
세 번째, 어거스틴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다양한 사상이 존재하였다. 이레니우스의 소아시아 신학, 아타나시우스의 알렉산드리아 신학, 라틴 신학 등 다양한 사상이 존재하였는데 어거스틴은 이러한 다양한 문화와 사상, 철학 등을 기독교 안에서 조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어거스틴은 중세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으며, 오늘날의 역사철학 문화사상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 사상은 교부신학과 중세철학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며 오늘날에도 기독교의 중요한 핵심교리로 전해지고 있다.
1.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의 생애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오늘날의 알제리에 해당하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인 북아프리카의 소도시 타가스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파트리키우스는 이교도였으나, 어머니 모니카는 그리스도인이었다. 어머니 모니카가 아우구스티누스를 교육했으나 어렸을 때 세례를 받지는 않았다. 370년 아버지는 16살의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수사학을 배우게 하기 위해 카르타고로 유학보냈다. 카르타고에서 그는 키케로의 글 호르텐시우스를 읽고 철학에 심취하게 된다. 그리하여 어거스틴은 카르타고에서 철학과 수사학을 공부하였고 마니교의 이성적이고 체계적인 교리에 매력을 느껴 8년 동안이나 마니교를 신봉하였다. 그러다가 386년에 이탈리아 밀라노의 정원 벤치에서 어린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듣게 되었다. 노랫말은 “ 네 옆에 있는 성경을 펼쳐 읽으라”라는 가사였다. 어거스틴은 성경을 펼쳐서 로마 13장 13절부터 14절 말씀을 읽고 자신의 마음 속에 확신의 빛을 읽었다. 내용은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곧 마니교 지도자들의 지적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을 알고 회의를 느껴 잠시 신 플라톤주의자가 되었다가, 마니교도 동료의 추천으로 타가스테, 카르타고, 로마, 밀라노 등에서 수사학과 철학을 가르쳤다. 그러다가 밀라노에서 그는 밀라노의 주교인 암브로시우스를 만났고 그의 설교에 감동하여 기독교로 회심을 하였다. 이후에 암브로스의 제자로 지냈으며 밀라노에서 387년 세례를 받았다. 388년에는 북아프리카로 돌아와 391년에 서품을 받았고 북아프리카의 해안에 있는 고대 항구 도시 중 하나인 히포의 감독이 되었다. 이 후 430년 게르만족의 칩입에 3년동안 저항하다가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의 특색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은 신학적으로 기독교의 교리가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정착되는 데 큰 기여를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양성론과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간이고 완전한 하나님이심을 주장하였다. 또한 신을 인격적이며 체험적으로 경험하는 대상으로 믿었으며, 관념적인 신앙을 거부하였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원죄를 갖고 태어남을 믿었으며 성례와 의식 등을 중요시하였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자들을 미리 정하셨다는 예정론을 믿었으며 온전한 금욕주의를 추구하였다. 당시 이단이었던 마니교, 도나투스파, 펠라기우스파 등을 반대하며 논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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